가자지구에 퍼붓는 폭탄은 어디서 왔나?…“미국도 대량학살의 공모자”

정원식 기자 2023. 10. 2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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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북쪽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25일(현지시간) 기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인한 가자지구 누적 사망자는 6500명을 넘어섰다. 이스라엘이 지상전을 앞두고 사상 최대 규모의 공습을 퍼부으면서 지난 23일 이후 사흘 동안에만 약 1900명이 사망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는 1982년 레바논 전쟁 이후 최악의 피해다.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이 이어지면서 미국이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를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어마어마한 양의 미사일을 퍼부을 수 있는 것은 상당 부분 미국의 원조로 가능했기 때문이다.

미국 원조 업고 군사대국으로 성장한 이스라엘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지원은 중단할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해왔다. 앞서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지난 12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국방장관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해 미국이 이스라엘에 제공하는 무기에 조건을 부과하느냐’는 질문에 “어떤 조건도 달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하마스의 공격 이후 신속하게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지원에 나섰다. 항모전단 2개를 지중해로 이동시키는 동시에 GPS 항법 시스템으로 목표물을 추적·파괴하는 소구경 폭탄 1000발을 지원했다. 지난 10일 미국산 고성능 탄약이 실린 비행기가 이스라엘에 도착했고, 뒤이어 지난 14일에는 A-10 공격기가 증강 배치됐다. F-16, F-15, F-35등 주력 전투기들도 배치될 예정이다. 지난 19일에는 미국산 장갑차량들도 도착했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비축하고 있던 155㎜ 포탄 중 지난해 연말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고 남은 물량도 이스라엘에 보낼 계획이다. 이에 더해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0일 우크라이나(600억달러)와 이스라엘(140억달러)에 대한 군사원조 등을 목적으로 1000억달러 규모의 예산을 의회에 요청했다.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은 600일 넘게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비교해도 인상적이다. 국무부 정치·군사국에서 의회 및 대외업무 책임자로 근무하다 “이스라엘에 대한 맹목적 군사 지원”에 반발해 최근 사임한 조시 폴은 지난 23일 워싱턴포스트(WP) 기고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집속탄을 보낼 때는 국무부 내에서 많은 논쟁이 있었으나 이스라엘 지원에서는 그렇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스라엘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의 원조를 가장 많이 받은 나라다. 이스라엘은 1946~2022년 사이에 약 2636억달러의 미국 원조를 받았다. 이는 두 번째로 미국 원조를 많이 받은 이집트(1519억달러)의 약 1.7배에 이른다. 원조의 대부분은 군사용도로 사용된다. 2022년 미국은 이스라엘에 33억달러 이상의 지원을 약속했는데 그 중 99.7%는 이스라엘군에 전달됐다고 USA팩트는 지적했다. 미국은 올해도 이스라엘에 일반 군사지원(33억달러)과 미사일 방어 지원(5억달러)을 합해 모두 38억달러의 군사원조를 제공했다.

미국의 이스라엘 군사원조는 주변 아랍국들에 대해 이스라엘의 QME(질적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은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인 1999년부터 10년 단위로 군사원조를 지원해왔다. 1999~2008년에는 213억달러, 2009~2018년에는 300억달러를 지원했고 2019~2028년에는 330억달러가 잡혀 있다. 이스라엘은 미국산 최신 무기를 중동에서 가장 먼저, 가장 최신 버전으로 제공받는 특혜를 누렸다. 예컨대 이스라엘은 F-15 전투기를 사우디아라비아보다 6년 더 빠른 1976년에 제공받았다.

미국은 중대한 인권위반 행위를 범한 해외군사조직 등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지원을 금지하는 ‘리히법’ 등에 따라 미국의 무기 수출을 통제하고 있으나 이스라엘이 이 법에 따라 제재를 받은 적은 없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미국의 원조를 통해 이스라엘은 최신 무기로 무장한 군사강국으로 성장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2017~2021년 5년간 무기수출액 기준 세계 10위를 기록했다.

“이스라엘 제어 못하면 미국도 대량학살 공모자”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전폭적 지원의 배경에는 중동 지역에서의 미국의 전략적 이해가 깔려 있다. 미국은 애초 이스라엘과 거리를 뒀으나 1967년 3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주변 아랍국들을 6일 만에 제압하자 중동에서 소련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데 도움을 줄 유력한 파트너로 여기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으로 인해 중동 지역에 투사할 무력이 없는 상태였다. 2001년 9·11 이후 이스라엘의 전략적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중동에서 미국의 또다른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미국의 여론이 악화되면서다. 사우디는 9·11 테러를 주도한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의 모국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전폭적 지지는 바이든 대통령의 신념과도 무관하지 않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정계에서 대표적인 친이스라엘 정치인으로 꼽힌다. AP통신은 “민주당 일각에서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바이든의 지지는 오랜 세월 동안 흔들림이 없었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8일 이스라엘을 방문해 “이스라엘 국가는 전 세계 유대인들에게 안전한 곳이 되기 위해 탄생했다. 그것이 이스라엘이 탄생한 이유”라면서 “이스라엘은 다시 유대인들에게 안전한 곳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나는 시오니스트(유대 민족주의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의 무조건적인 이스라엘 지원은 내년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역풍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로이터통신은 경합주의 아랍계와 무슬림 주민들이 가자지구의 민간인 피해를 방치하는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반감으로 투표장으로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제어하지 못하면 “인종학살의 공모자”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미국 인권단체 ‘헌법권리센터’(CCR)에서 활동하는 변호사 3300명은 지난 18일 성명을 내고 “미국은 대량학살을 방지해야 할 의무를 지키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봉쇄·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는 미국의 행위는 국제법상 범죄 공모 수준에 육박한다”고 밝혔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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