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유상철 위한 선물' 이강인도 그곳에서 골을 넣었다

CBS노컷뉴스 이우섭 기자 2023. 10. 2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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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득점한 故 유상철 감독(왼쪽)과 2023년 같은 장소에서 득점한 이강인.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연합뉴스


1998 프랑스 월드컵은 한국 축구의 시련과 희망을 동시에 본 대회였다.

대회 도중 사령탑이 경질되는 등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당시 주장 완장을 찬 고(故) 유상철 전 인천 감독은 소중한 승점 1점을 얻은 골을 성공시켰다. 아직도 모든 포지션에서 빈틈없이 맡은 역할을 해내는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축구 팬이 많지만 유상철은 지난 2021년 췌장암 투병 후 하늘로 떠났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지난 10월 18일이 고인의 52번째 생일날이다. 그즈음, 어린 시절부터 유 감독의 지도를 받은 '슛돌이 제자' 이강인(파리 생제르맹·PSG)은 25년 전 스승이 자국에 희망을 심어준 그 장소에서 의미 있는 골을 터뜨렸다.

환호하는 이강인. 연합뉴스


한국 축구 '에이스'로 거듭나고 있는 이강인이 새 둥지에서 첫 골을 신고했다.

이강인은 26일(한국 시각) 프랑스 파리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열린 2023-2024시즌 UCL 조별 리그 F조 3차전 AC밀란과 경기에 후반 26분 우스만 뎀벨레와 교체돼 19분 동안 경기장을 누볐다. 골과 함께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PSG의 3번째 득점은 팀의 특급 신성들이 만들어 냈다. 후반 44분 팀 내 최고 유망주로 평가받는 2006년생 미드필더 워렌 자이르-에메리가 하프라인부터 돌파하며 우측을 뚫어냈고, 2001년생 공격수 곤살로 하무스가 슈팅 모션을 취하며 공을 뒤로 흘려보냈다. 뒤에서 대기하던 이강인이 정확한 왼발 슛으로 AC밀란의 수문장 잔루이지 돈나룸마를 뚫어냈다.

이강인의 UCL 데뷔골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파르크 데 프랭스는 순식간에 이강인을 연호하는 함성으로 뒤덮였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이강인이 이날 골을 넣은 장소, 파르크 데 프랭스는 한국 축구와도 깊은 사연이 있는 장소다. 시간은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시아 최종 예선에서 최고의 경기력으로 본선까지 무난히 진출한 한국 대표팀. '사상 첫 16강 진출'이라는 목표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환호하는 하석주. 연합뉴스


본선 F조에 속한 대표팀은 좋은 기세로 1차전 멕시코전에 나섰다. 전반 27분부터 '왼발의 달인' 하석주가 프리킥 골을 꽂아 넣은 것.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하석주는 득점 직후 상대 선수에게 무리한 백태클을 시도해 레드카드를 받고 경기장에서 쫓겨났다. 이후 힘을 잃은 대표팀은 내리 3점을 내주며 1 대 3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2차전은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한 경기였다. 네덜란드를 만난 대표팀은 힘을 써볼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두들겨 맞았다. 결과는 0 대 5 대패. 경기 후 지휘봉을 잡고 있던 차범근 감독이 월드컵 본선 도중에 전격 경질됐고, 대표팀은 사령탑 없이 3차전을 치르게 됐다.

이임생의 붕대 투혼. 국제축구연맹 홈페이지 캡처


1998년 6월 25일. 뒤숭숭한 분위기 속 대표팀은 3차전 벨기에전을 치르기 위해 결전의 장소,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파르크 데 프랭스에 입성했다.

전반 7분부터 상대 공격수 루크 닐리스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힘들게 경기를 시작했지만, 한국 선수들은 죽을힘을 다해 경기장을 뛰었다. 특히 수비수 이임생이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도 보여준 붕대 투혼은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환호하는 유상철. 당시 중계화면 캡처


후반 25분. 페널티 박스 좌측에서 하석주의 정확한 왼발 프리킥이 파 포스트에 자리 잡고 있던 유상철에게 향했다. 유상철은 미끄러지며 오른발로 공을 골대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 득점으로 한국은 대회에서 유일한 승점을 얻어낼 수 있었다.

높았던 기대와 달리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한 1, 2차전, 대회 도중 감독이 경질되는 등 대형 위기를 맞았던 한국 대표팀에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준 장소가 바로 이곳 파르크 데 프랭스인 것이다.

연합뉴스


이 대회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득점까지 기록하며 한국 축구의 희망을 보여준 유 전 감독은 지난 2021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한국 축구의 대들보였다. 1998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올스타, 2002 FIFA 월드컵 올스타, 2003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챔피언십 MVP 등을 휩쓸었다.

유 감독이 살아 있었다면 지난 18일이 52번째 생일이었을 터였다. 일본의 한 매체는 유상철 감독의 생일이던 지난 18일 "1971년 태어난 한국인 유상철은 일본 J리그에서도 활약한 아시아 최고의 멀티 플레이어"였다며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오늘이 52번째 생일"이라고 추억했다.

손흥민과 이강인이 프리킥을 준비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유 감독은 투병 중이던 지난 2020년 12월, 그의 투병기를 담은 유튜브 컨텐츠 '유비컨티뉴'에서 "건강하게 일주일을 보낼 수 있다면 뭘 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강인이가 하고 있는 경기를 직접 현장에서 보고 싶다. 강인이가 어떻게 훈련받는지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보고 싶다"는 답을 남긴다.

축구 선수 유상철이 그곳에서 남긴 짙은 감동의 향수는 늘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 자신의 활약상을 다시 한번 돌아볼 겸, 언젠가 추억의 장소를 다시 찾는다면 소원대로 제자가 플레이하는 모습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CBS노컷뉴스 이우섭 기자 woosubwaysandwiches@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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