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자급화' 정부 역할 촉구한 복지위…자급화 문턱 낮아질까
국가예방접종 백신 22종 중 순수 국내 제조 7종 불과…10종은 수입 품목 의존
국가필수예방접종(NIP) 백신 국산화를 위한 정부 노력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현재 30% 수준에 불과한 필수예방접종 백신 자급화를 위해 개발 단계의 가이드라인 완화 및 명시, 정부 차원의 연구개발(R&D) 예산 확대 등이 절실하다는 제언이다. 미비한 가이드라인과 지원 개발 시도 조차 망설이던 업계는 정부 기조가 변화를 맞을 경우 보다 많은 개발사들의 도전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 중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기윤 의원(국민의힘)은 지난 25일 복지위 종합감사에서 백신 개발을 위한 다국가 임상 시 내국인 피험자 비중 10% 가이드라인 하향 조정 및 국가필수예방접종 백신 연구개발(R&D) 예산의 대폭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강 의원은 조규홍 복지부 장관에게 각각 "국가필수예방접종 백신 자급화율은 30%에 그치지만 막대한 투자비, 낮은 수익성으로 인해 기업들이 (개발을)주저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그나마 일부 기업들이 필수 백신 개발에 도전하고 있는데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가 과감히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국가필수예방접종에 해당하는 백신은 총 22종이다. 하지만 이 중 B형 간염과 파상풍, 인플루엔자, 장티푸스 등 7종 만이 순수 국내 제조 백신을 사용하고 있다. 전체의 31.8%에 불과한 수준이다. 원액을 수입해 국내에서 완제하는 품목은 5종,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품목은 10종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산 제품이 공급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그 피해가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해 백일해 백신의 경우 3개월 이상 품귀현상을 겪으며 접종 대상자와 보호자들이 애를 태운 바 있다. 또 제한된 대상으로부터 공급되는 백신 특성상 잦은 가격 인상도 문제로 떠오른 상태다.
절실한 국산 백신 개발 필요성에도 업계 입장은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가뜩이나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적지 않은 투자 규모와 기간, 낮은 수익성으로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현실성이 부족한 탓이다. 이에 정부의 지원사격이 절실하지만 복지부 산하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의 내년 예산은 오히려 57% 삭감(67억6200만원→38억6000만원)됐다. 복지부 제약산업 육성지원 예산이 446억원에서 359억원으로 감액된 탓이다. 이에 국산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공헌했다고 평가받는 한국임상시험 참여포털의 운영이 어려워질 전망이다.
강 의원은 "대한믹국이 경제 10위권 안에 드는 국가인데 코로나19를 겪으며 대통령이 백신을 구걸하러 다니고 창피한 일을 많이 당했다"며 "백신 주권 국가로서의 직위를 확보하려면 관련 R&D 예산도 대폭으로 늘려야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조규홍 장관은 "내년 예산에 한국형 'ARPA-H라고 하는 사업을 새로 도입해 백신 주권 확보를 잘 지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된다. 차질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답했다.
ARPA-H는 미국 바이든 정부가 창설한 의료고등연구계획국이다. 보건의료 분야 난제 해결과 바이오기술 주도권 유지 및 보건안보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바이오헬스 연구를 전담하는 특별기구로 지난해 3월 국립보건원(NIH) 산하에 신설됐다. 설립에만 10억달러가 투입됐으며 올해 15억달러 예산을 배정한 뒤 내년 25억달러(약 3조4000억원)까지 예산 확대를 추진 중에 있다.
백신 개발 과정에 대한 명확한 기준 마련과 완화 필요성도 언급됐다. 강 의원은 "백신 개발 다국가 임상에서 국내는 내국인 참여율을 10%로 권고하고 있다"며 "다른 나란에 비하면 굉장히 높은 수준으로 이를 5% 정도만 낮춰도 개발 기간이 2~3년으로 단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10%의 내국인 참여율은 의무가 아닌 권고사항으로 개발사가 통계학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면 참여 비율은 유연하게 조정 가능하다는 것이 당국 입장이다. 다만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탓에 적극적 개발 참여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오유경 식약처장은 "업계의 이야기를 들어 규정을 완화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답했다.
업계는 정치권 목소리가 규제당국의 움직임으로 이어질 경우, 외산 백신의 독점 구도가 허물어지는 시기를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 중이다. LG화학이 국내 최초로 개발 중인 영아용 6가 백신이 대표적 사례다. LG화학은 하반기 들어 정제 백일해 기반 6가 혼합백신 'APV006'의 국내 임상 1상 첫 시험자를 등록했다.
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소아마비, 뇌수막염, B형간염 등 6개 감염병을 예방하는 'DTaP' 백신이다. 현재 외산에 의존 중인 필수접종을 다수 아우를 수 있는 품목으로 국내 상용화 목표 시점은 2030년이다. 6가 혼합백신은 현재 국내에서 사노피 '헥사심'이 유일하게 허가를 받은 상태다. 단기간 내 국가예방접종사업 포함이 유력한 만큼, 국산화에 대한 필요성이 높다.
6가 백신이 자급화에 성공할 경우 사회·경제적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된다. 이의경·권순홍 성균관대학교 약학 대학 교수가 주도한 '한국에서의 5가 혼합백신과 B형간염 대비 6가 혼합백신이 갖는 총 사회적 비용 추산' 연구에 따르면 6가 DTaP 혼합백신을 도입할 경우, 영아 1인당 4만7155원이 절감돼 총 120억원의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6가 백신 도입만으로 산출된 절감 규모로, 자급화 시 보다 큰 효과가 기대된다. 해당 연구는 국제 저널 학술지 'MDPI Vaccines' 5월호에 게재된 바 있다.
정기종 기자 azoth4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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