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피스킨 비상] “예방률 80% 백신 1~2년 집중 관리하면 박멸”...유입경로 찾고 한국형 방역 개발이 숙제
최초 사례 보고 후 6일 만에 전국적 확산
예방률 80% 백신, 적절한 방역 기술도 마련해야
충남 서산에 있는 한우 농장에서 이달 20일 ‘럼피스킨병’ 발병 사례가 보고 된 이후 확산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럼피스킨병의 습격에 축산농가들은 당황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미리 비축해둔 백신 54만회분을 이용해 확산 방지에 나섰지만 전문가들은 사태가 장기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럼피스킨병 조기 퇴치를 위해서는 백신 접종과 함께 관련 연구를 통해 국내 사정에 맞는 방역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한상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국내에서 럼피스킨병 감염 사례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럼피스킨병에 걸린 소는 42도에 달하는 고열에 시달리고 침을 흘리거나 피부에 결절이 생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럼피스킨병은 ‘폭스바이러스과(Poxviridae)’에 속하는 럼피스킨병바이러스(LSDV)에 감염돼 발생한다. 럼피스킨병바이러스는 유전 정보를 디옥시리보핵산(DNA)에 저장하고 소와 물소에만 감염된다. 1929년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중동과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질병이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활발한 연구가 이뤄져 왔다. 덕분에 백신이 개발돼 즉각적인 대응도 가능한 상황이다. 국내에서도 2021년부터 동남아를 중심으로 럼피스킨병이 유행하자 예방 차원에서 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하고 백신을 비축해 둔 상황이다.
조호성 전북대 수의학과 교수는 “국내에 준비된 럼피스킨병 백신은 약독화 생백신으로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사용해 효과가 가장 좋은 방식”이라며 “감염 예방률은 80~95% 수준으로 매우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다만 백신 접종만으로는 현재 유행 상황을 통제하기에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백신의 예방률이 100%가 아닌 만큼 적절한 방역 대책이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처럼 백신은 감염을 완전히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감염률을 낮춰주는 효과”라며 “접종 이후 면역력이 생기려면 10일가량이 필요해 효과를 보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교수도 “백신의 이론적 예방 효과는 100%여야 하지만 실제로 항체를 만드는 데는 개체마다 차이가 있어 효과가 다소 떨어진다”며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접종과 함께 얼마나 적절한 방역 수단을 사용하는지”라고 말했다.
과학계에서는 백신 접종만으로 럼피스킨병을 박멸하려면 1~2년은 꾸준한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조 교수는 “예방률 80%의 백신을 접종하고 2년이 지나면 럼피스킨병을 박멸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한국은 이보다 짧은 1년 이내에 박멸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럼피스킨병이 공기 전파가 아닌 흡혈 곤충을 통해 전파되는 만큼 전파 범위가 넓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 비축한 백신 규모는 럼피스킨병 초기 발병 시 해당 지역의 축우 농가에 접종할 수 있는 수준이다. 지금처럼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인 감염 사례가 확인되는 경우 통제 효과가 다소 떨어진다.
전문가들은 백신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럼피스킨병에 적합한 방역 기술과 절차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조 교수는 “국내 특성에 맞는 방역 방법을 찾는 연구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며 “국내 지형, 축산산업 특성에 맞는 방역이 얼마나 빠르게 럼피스킨병을 퇴치할 수 있는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럼피스킨병의 유입 경로를 놓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공기나 철새를 통해서는 전파가 되지 않기 때문에 중국에서 오염 축산물을 통해 전파됐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에서 유입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조호성 교수는 “북한과 가까운 양구에서 발병했는데 양구는 다른 발병 지역과는 거리가 먼 곳이라 예상 밖의 발병”이라며 “서해안 라인에서 발생하는 발병도 북한의 영향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럼피스킨병을 단순히 가축 감염병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다학제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신상엽 한국의학연구소(KMI) 수석상임연구위원은 “럼피스킨병이 사람에게 전파되지 않는다는 과학적인 연구가 이미 있으나 앞으로 어떤 변이가 일어날지 대비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며 “유행 예측을 위해 코로나19에서 중요하게 사용한 하수 감시 시스템을 개발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를 위해서는 수의학계뿐 아니라 의학계, 과학계 전문가가 모두 참여하는 ‘원 헬스(One Health)’ 관점의 접근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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