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피스킨 비상] 관심 소홀 틈타 아프리카에서 아시아로 점프...백신도 제한적, 장기전 대비해야
곤충 통해 전염돼 방역 쉽지 않아
백신 맞아도 80~95% 수준… 100% 막을 순 없어
최소 1~2년은 지켜봐야… 축우농가 방역 수준 높여야
럼피스킨(lumpy skin)병이 국내에서 발병한 지 일주일 만에 전국으로 확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럼피스킨병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는 26일 오전 기준으로 국내 확진 사례가 38건이라고 밝혔다. 20일 첫 발생 사례가 보고되고 일주일 만이다. 발생 지역도 충남과 경기, 인천, 충북, 강원, 전북 등 전국으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방역당국과 농가는 이름도 생소한 가축전염병의 확산에 당황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럼피스킨병의 국내 상륙은 시간 문제였다고 입을 모은다. 치료법이 없고 파리나 모기 같은 흡혈 곤충을 통해 전염되는 특성상 감염을 막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중요한 건 전염병의 확산을 막고 지금이라도 관련 연구에 지원을 늘려서 장기전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프리카에서 아시아로… 한국도 2년 전부터 대비
럼피스킨병(LSD)은 소에게 영향을 주는 바이러스성 질병이다. 파리나 모기, 진드기 같은 흡혈곤충을 통해 전염되는데 이 병에 걸린 소는 발열과 함께 심각한 피부 결절이 나타난다. 회음부나 유방, 목 주위에 특히 결절이 많이 나타나는데 구강점막에 결절이 생기면 소가 잘 먹지 못하고 침을 질질 흘리게 된다. 폐사율이 10% 정도로 낮은 편이지만 임신한 소는 유산하고 젖소는 우유 생산량이 줄어든다. 럼피스킨병이 발병하면 축산물의 국제 교역이 중단되는 것도 타격이다.
럼피스킨병은 원래 아프리카에서만 나타난 토착 질병이었다. 1929년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처음 발견됐는데 이후 수십 년 동안 아프리카에서만 발병 사례가 확인됐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유럽에서 발병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2013년 이스라엘을 기점으로 빠르게 유럽과 아시아 지역으로 확산됐다. 아프리카에서만 주로 발생했던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2007년 유럽의 조지아에서 발병한 이후 유럽과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된 것과 비슷한 패턴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한국도 럼피스킨병 안전 지대가 아니라고 강조해왔다.
한국우병학회는 지난해 6월 대전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럼피스킨병을 별도 세션으로 마련해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당시 학술대회에서 발표자로 나선 검역본부 신연경 수의연구관은 “수의사에게도 럼피스킨병은 이름만 들어본 질병”이라며 국내 유입을 조기에 차단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한상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도 “럼피스킨병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발병 사례가 많았고 최근에는 러시아에서 감염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며 “최근 몇 년 간 주변국에서 발병 사례가 많았기 때문에 학계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유 교수에 따르면, 아시아 지역의 럼피스킨병 발병 건수는 2019년 28건에서 2021년 1088건으로 급증했다.
한국은 2021년부터 전문가 협의체를 만들고 럼피스킨병에 대비했다. 럼피스킨병이 발병하자 마자 방역당국이 백신 접종에 나선 것도 전문가 협의체의 제안으로 54만회분의 백신 물량을 미리 비축해뒀기 때문이다. 조호성 전북대 수의학과 교수는 “국내에서는 럼피스킨병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지 않았지만 유럽이나 미국에선 관련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졌고 백신도 이미 나와 있는 상황”이라며 “협의체 활동을 통해 미리 백신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기에 대응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백신 만병통치약 아냐… 장기전 대비해야
방역당국은 럼피스킨병 확산을 막기 위해 다음달 초까지 전국 소 사육 농장을 대상으로 백신을 접종할 계획이다. 유럽연합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된 ‘럼피백스’ 제품을 사용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백신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유한상 교수는 “백신을 접종한다고 바로 면역이 생기는 건 아니기 때문에 효과를 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며 “백신도 100% 예방을 담보하는 게 아니라 코로나 백신처럼 감염 확률을 낮춰주는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럼피스킨병 백신은 80~95% 정도의 감염을 막아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호성 교수는 “해외 연구 사례를 보면 80% 예방률의 백신을 접종하고 2년이 지나면 병이 박멸됐다고 본다”며 “한국은 방역 수준이 높고 국토가 작은 편이라 단기간에 끝날 가능성이 있지만 적어도 1~2년은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희망적인 부분도 많다. 럼피스킨병은 디옥시리보핵산(DNA) 바이러스여서 리보핵산(RNA) 바이러스보다 변이가 적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의 전쟁이 길어진 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RNA 바이러스여서 변이가 엄청 빨랐고, 이에 맞춰서 백신도 계속해서 바꿔야 했기 때문이다. 반면 폭스바이러스의 일종인 럼피스킨병은 DNA 바이러스여서 변이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지 않다.
럼피스킨병의 야생 숙주인 물소(버팔로)가 국내에 없는 것도 다행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전국에 서식하는 멧돼지가 야생 숙주 역할을 한 탓에 방역이 어려웠다. 하지만 국내에는 물소가 없기 때문에 농장 간 감염만 통제하면 럼피스킨병의 확산을 조기에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방역 R&D 예산 확보해야
국내 축우농가의 방역 수준이 양돈농가에 비해 열악한 건 한계로 지적된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을 겪은 양돈농가는 방역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지만, 큰 전염병을 겪지 않은 축우농가는 방역 수준이 상대적으로 허술하다. 조호성 교수는 “구제역과 달리 럼피스킨병은 곤충으로 전파가 이뤄지기 때문에 방역이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며 “내년도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의 영향으로 방역과 관련된 연구 예산도 많이 삭감된 상황이라 더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럼피스킨병이 사람에게 전파되지 않지만 변이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신상엽 한국의학연구소(KMI) 수석상임연구위원은 “럼피스킨병은 변이가 쉽게 일어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라며 “럼피스킨병에 걸린 소를 살처분하는 게 환경에 어떤 영향을 줄 지에 대해서도 아직 연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 수석상임연구위원은 “럼피스킨병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줄 지를 좀 더 자세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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