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속 ‘찐친 케미’…‘남성 카르텔’이 주는 불균형한 위화감 [플랫]

플랫팀 기자 2023. 10. 2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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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처음 방영했던 JTBC <패키지로 세계일주-뭉쳐야 뜬다>(이하 <뭉뜬>)의 제목은 지금 보면 미래를 예견하는 듯하다. 아직 미완이던 안정환은 현재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예능인이 되었고, 이미 검증된 MC였던 김성주는 <냉장고를 부탁해>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이어져온 안정환과의 조합으로 몇 개의 예능과 MBC에서의 월드컵 및 아시안게임 중계, 그리고 탈모약 광고까지 함께했다. 공황장애로 방송을 떠났던 정형돈과 불미스러운 일로 출연이 한동안 금지됐던 김용만은 이후 방송계에 성공적으로 연착륙하며 프로그램을 차츰 늘려갔다. 뜨기도 떴고 무엇보다 그들은 정말로 뭉쳐서 떴다. 해당 프로그램의 스핀오프 개념으로 시작된 2019년 조기축구 예능인 JTBC <뭉쳐야 찬다>(이하 <뭉찬>) 이후 이들 네 명의 조합은 <뭉찬> 새 시즌과 종목을 바꾼 <뭉쳐야 쏜다>에선 정형돈만 빠진 세 명 그대로를 유지했으며, 2021년 아예 넷이서 연예 기획사 뭉친 프로젝트(이하 ‘뭉프’)를 설립한 뒤엔 JTBC를 넘어 MBC every1 <시골경찰 리턴즈>, 카타르 월드컵 특집 프로그램인 MBC <안정환의 히든카타르>, SPOTV2 <노매너 스포츠 동네당구>에서도 함께하는 중이다. 독식까진 아니지만, 네 명의 중년 남성끼리 똘똘 뭉쳐 승승장구하는 모습에선 어떤 불균형한 위화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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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도 유재석을 중심으로 한 ‘유라인’, 이경규를 중심으로 한 ‘규라인’에 대한 풍문이 돌았다. 또한 여전히 그 둘을 비롯해 영향력 있는 S급 예능 MC들이 본인과 잘 맞는 출연자들을 선호한다는 건 비밀조차 아니다. 그럼에도 ‘뭉프’ 멤버들은 기존의 ‘라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본인들의 친분을 떳떳이 드러낸다. 떳떳하다 못해 과시적이다.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의 시대 이후 출연자 간 케미스트리는 언제나 중요한 문제였지만, ‘뭉프’는 이것을 이미 완성된 개인 간 친분으로 대체한다. 서로 조심스럽게 관계를 형성하고 캐릭터를 발견 또는 인위적으로 부여하는 단계는 건너뛰고 이미 모두가 아는 조합의 멤버가 포맷만 바꿔 등장하는 식이다. 그런 면에서 <뭉뜬>의 제목은 다시 한번 자기 예언적인데, 이후 방송에서의 그들은 정말 패키지처럼 등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가능한 건 이들 멤버가 스포츠 스타, 아나운서, 개그맨 출신 예능인이라는 각기 다른 배경과 개성을 지닌 동시에 다들 단독 혹은 최소 2인 체제로 방송 진행이 가능한 수준의 전문 MC 역량을 지닌 덕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패키지는 강력한 상품이다. 잘 짜인 패키지여행 상품이 그러하듯 자유 여행의 의외성과 유연함은 부족할지언정 매 순간 안정적이며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되 일정 이상 보장된 재미를 제공한다. 이것이 패키지상품 대 자유 여행처럼 시청자가 자신에게 맞는 어느 한쪽을 선택해 즐길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뭉프’ 이후 출연자 간 완성된 관계성을 패키지로 묶어 제공하는 것이 예능의 기본사양이 되는 중이다. 새로운 얼굴도 가끔 시장에 진입하지만, 이미 자리 잡은 이와의 친분을 전제로 한다. 공교롭게 이것을 매우 잘 보여주는 사례도 ‘뭉프’ 멤버와 연관되어 있다.

JTBC <뭉쳐야뜬다> . MBC <안정환의 히든카타르>
‘뭉쳐야 뜬다’ 출연진들, 유사 프로 승승장구 힘입어 기획사까지 설립
친한 연예인만 캐스팅하는 트렌드…노골적으로 출연진 친분 드러내
남성 중심 진입·연결…송은이·김숙 ‘여성 케미’엔 ‘식상하다’ 치부

안정환이 메인 MC 역할을 하는 MBC <안 싸우면 다행이야>(이하 <안다행>)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이미 친분이 있는 두 명 이상이 채집과 낚시로 무인도에서의 고된 시간을 버티며 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담아낸다. 관계를 맺는 과정은 생략된다. 안정환 역시 최근 회차에서의 추성훈이나, 예전 에피소드에서 함께한 최용수, 현주엽 등과의 친분을 당연하듯 드러낸다. 싸우는 것과 뭉치는 것, 서로 다른 듯싶지만 싸우기 위해선 뭉쳐야 한다. 갈등을 위해서조차 친분으로 묶인 패키지가 필요하다. 물론 안정환, 최용수 조합이 안정환, 김용만 조합처럼 예능에 익숙하거나 친숙하진 않지만, 이미 숙달된 예능인인 안정환과의 관계성 안에서 최용수는 어렵지 않게 자신의 캐릭터를 시청자에게 납득시킬 수 있었다. <안다행>의 김명진 PD는 언론 인터뷰에서 “ ‘찐친’(진짜 친한 친구)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진정성”을 인기 요인으로 설명하기도 했는데, 최소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찐친 케미’라는 키워드를 예능 관련 기사에서 수없이 확인할 수 있다. 지난 6월 스포츠동아는 ‘예능서 뭉친 연예계 찐친들 “보기 편안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안다행>과 1976년생 동갑내기 친구들이 모인 KBS2 <택배는 몽골몽골> 등을 소개했다. 최근 CJ ENM의 구원투수로 나선 나영석 PD의 tvN 새 예능 <콩콩팥팥>이 서로 친한 이광수, 도경수, 김기방, 김우빈을 멤버로 농사에 도전한다는 건 그래서 징후적이다. 역시 ‘찐친 케미’라는 키워드로 수식 중인 <콩콩팥팥>은 첫 방송 만에 목표치인 시청률 3%를 기록하며 이러한 조합의 안정성을 증명했다. 제작진도 편안하고 시청자도 편안하다. 그럼 된 걸까. ‘뭉프’가 옳고 시대를 선도한 걸까.

tvN <콩콩팥팥>

리스크에 대한 보수적 접근이냐 아니냐의 문제라면 차라리 편할 것이다. 진짜 문제는 방송에서 ‘찐친’으로서의 관계성이 출연자의 필수 자원이 될수록 시장이 왜곡된다는 것이다. <콩콩팥팥>의 이광수는 SBS <런닝맨>에, ‘뭉프’의 정형돈은 MBC <무한도전>에, 안정환은 MBC <아빠! 어디 가?>에 별다른 연고 없이 모험적으로 섭외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젠 주요 출연자와의 ‘찐친’이 아니라면 방송 안에서 관계를 형성할 기회조차 얻기 힘들다. 친분은 불특정 다수를 배제할 권력이 된다. 좀 더 정확히 말해 권력이 있는 쪽의 친분만이 권력이 된다. <안다행>을 비롯해 ‘찐친 케미’를 강조하는 프로그램 출연자의 다수가 남성들인 건 우연이 아니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은 더 기울어지며 이미 크게 기울어 있던 젠더 권력의 불평등은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것을 ‘뭉프’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이런 흐름의 상징적 변곡점에 자리한 건 사실이다. 그들은 카르텔까진 아니지만, 그들이 패키지를 구성하고 확장할 수 있는 배경엔 남성 카르텔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뭉프’ 멤버들이 여러 프로그램을 함께하면서도 당당하고 다들 위화감 없이 받아들이는 반면, 과거 <송은이 김숙의 영화보장> 제작보고회에서 둘 조합이 식상하다는 기자 질문을 받고 송은이가 해명해야 했던 불평등한 기준 때문만은 아니다. 당구와 조기축구 등을 통해 ‘뭉프’가 수행하는 친분의 형태는 비슷한 나이대와 취향의 남성 커뮤니티 축소판에 가깝다. 자연스럽게 남성들의 진입과 연결만이 쉬워진다.

그 자체 남초 예능인 <뭉쳐야 찬다>에 출연한 허재는 너무 쉽게 예능 원석으로 과대평가됐고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자연스럽게 현주엽과의 패키지를 구성해 그의 예능 안착을 도왔다. 박항서 감독과 김남일이 안정환과 tvN <손둥동굴>을 촬영하는 건 어떤가. 역시 <뭉쳐야 찬다>에 용병으로 등장했던 김병현은 이후 MBC <편애중계>에서 안정환과 재회했으며,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만들어진 TV조선 <조선체육회>에서 허재, 이천수와 고정 멤버로 조우했다. 심지어 이들은 과거의 불미스러운 사건조차 ‘성질머리 1등’이라는 캐릭터로 미화되기까지 했다(김병현은 나머지 둘만큼의 물의를 빚은 적이 없지만). 그러니 요즘 유행하는 ‘스포테이너’라는 말은 기만적이다. 남성 운동선수 출신의 방송 진출이 쉬워졌을 뿐이다. ‘찐친 케미’ 역시 남자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는 것을 중립적 표현으로 가린 것에 가깝다. 뭉쳐야 뜨는 건 사실이다. 그들만 그렇게 쉽게 뭉쳤고 쉽게 떴다.

▼ 위근우 칼럼니스트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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