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준·송은이, 32년 우정과 신뢰의 결과물 '오픈 더 도어' [인터뷰]
아이즈 ize 김나라 기자
"얘는 커서 뭐 먹고살려나, 어떡하려고…"
서로가 서로의 앞날을 걱정했던 서울예대 복학생과 신입생. 듣기만 해도 설레는 풋풋한 새내기, 청춘을 공유한 이들은 걱정과 달리 32년 뒤 충무로의 '이야기꾼'이자 연출가, 각광받는 콘텐츠 제작사의 대표가 되었다. 그리고 무려 32년간 이어진 두 사람의 우정은 영화 '오픈 더 도어'로 결실을 맺으며, 만인의 귀감이 되고 있다.
나홀로족이 대세인 '혼코노미'(혼자+이코노미(경제·Economy) 시대에서 뒷방으로 밀려난 우정을 상기시킨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장항준 감독과 방송인 겸 대표 송은이다. 송은이는 미디어랩시소, 컨텐츠랩 비보를 운영 중이며 장항준 감독과 손잡고 처음으로 영화 제작에 도전했다. 두 사람은 그 협업작 '오픈 더 도어'가 개봉하는 25일 오전 서울 마포구 컨텐츠랩 비보 사옥에서 공동 인터뷰를 진행했다.
먼저 장항준 감독은 "지금으로부터 32년 전 서울예대에서 저는 복학생, 송은이는 신입생으로 만났다. 송은이는 학교 다닐 때 돈을 아예 안 들고 다녀서 제가 자주 밥을 사줬다. 그런 두 사람이 감독, 제작자가 되어 일적으로 만났다는 게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라고 입을 떼며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송은이 대표는 "놀랍지만 진짜다. 당시 제가 감독님에게 많이 얻어먹었다"라고 거들며 현실 절친 케미를 뽐냈다.
이내 장항준 감독은 "한국 영화 시장이 현재 위기에 빠진 상황으로 좋지가 않지만, '오픈 더 도어'가 개봉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지점이 있다. 모험이라 보실 수 있는데 제겐 도전이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송은이 대표 또한 "우리 영화가 개봉하다니 저 역시도 믿어지지 않는다. 콘텐츠 회사를 만든지 8년 만에 처음으로 영화를 제작했다. 팟캐스트에서 예능을 제작하고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했지만 영화 제작은 다른 꿈을 이룬 듯한 느낌이라 설렌다. 지금 개봉 자체가 불투명한 때이기에, '오픈 더 도어'를 선보이는 것만으로 상당히 기분 좋다"라고 감격스러운 마음을 표했다.
'오픈 더 도어'는 미국 뉴저지 한인 세탁소 살인 사건 이후 7년, 비밀의 문을 열어버린 한 가족의 숨겨진 진실을 그린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물. 1993년 미국 교민 사회에서 벌어진 실제 살인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 장항준 감독이 애초 단편영화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가 송은이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장편으로 확대되었다.
특히 '오픈 더 도어'는 영화 '기억의 밤' '리바운드' 등 기존 장항준 감독의 연출 색깔과는 또 다른 매력이 묻어나며 신선함과 개성 뚜렷한 스릴러 한 편이 나왔다. 제작비 7억 원의 저예산 영화인 만큼 상업 영화와 결을 달리하는 실험 정신이 돋보인다.
장항준 감독은 "어떤 감독이든 다 똑같을 거 같다. 관계자들의 간섭, 투자금을 뽑아내야 한다는 부담감 말이다. 안 그러면 난 패배자가 되고, 다른 감독들과 비교가 되는 격전장에 놓이는데 이번 '오픈 더 도어'의 경우는 온전히 이야기에 집중해서 흥행 강박을 많이 버리게 되었다. 만약 상업적인 틀로 갔다면 범인이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또 귀결되는 반전을 만들었어야 했을 거다. 근데 '오픈 더 도어'는 '역순' 전개로 가며 새롭게 구성할 수 있었다. 우리 영화는 누가 범인이고 어떻게 했고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보다 우리 이웃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에 관해 말한다. 그래서 메시지의 본질 구현엔 거액의 상업 영화로 만드는 것보다 독립 영화가 적합했다"라고 연출 의도를 짚었다.
그는 "대개 대형 상업 영화에선 우리 삶과 동떨어진 인물들을 다루지 않나. 재벌, 슈퍼히어로, 전쟁영웅 등의 삶을 얘기하는데 한 번 정도는 현실적인 고민과 갈등, 위험에 놓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모티프가 되었던 실제 사건을 접했을 때 이들이 왜 이런 선택을 해서 파멸하게 되었는가에 궁금증이 생겼다. 그 중심엔 한국 교민 사회의 특수성, 폐쇄적이고 끈끈한 유대감이 분명 존재했고. 한인 가정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함이 있다는 생각에 다뤄보고 싶었다. 미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 과정 속에서 잃은 것도, 얻은 것도 있을 거다. 왜 미국에 정착하고 왜 돈을 벌려 했는지, 비단 이 사건뿐만 아니라 목적성을 잃은 사람들에 대해 다뤄보려 했다"라는 설명도 전했다.
송은이 대표는 "모티프가 된 사건도 제 인생관에 비춰 봤을 때 충격 그 자체였다. 하지만 감독님 말씀대로 '오픈 더 도어'는 그 충격적인 현상, 살인 과정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서 끌렸다. 이 이야기를 통해 많은 생각을 갖는 저를 발견하며 제작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거다. '이들이 왜 그렇게까지 됐지? 왜 파국이 되었지? 그럼 어디에서 멈출 수 있었나. 멈출 수 있었다면 뭐가 필요했나' 하는 궁금증이 꼬리를 물더라. 이런 나를 보면서 과거 장항준 감독님에게 '좋은 영화란 무엇이냐' 물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감독님이 '생각할 걸 많이 주는 영화가 좋은 영화다'라는 답을 줬던 게 기억나더라. 제 인생영화들도 오히려 작은 영화들인 것처럼 그런 작품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참여했다. 가족 이야기에 집중했던 게 저는 더 제작을 해보고 싶다고 느낀 포인트였다"라고 제작을 결심한 계기를 밝혔다.
그러면서 송은이 대표는 "무엇보다 연출자가 장항준 감독님이라 끌렸다. 영화계에 친한 감독님, PD님들이 있지만 그분들과의 작업은 상상 못할 일이라면 장항준 감독님과는 예측이 되고 상상이 됐다"라고 깊은 신뢰감을 드러냈다.
이에 장항준 감독은 "대학교 때 만난 인연이 32년 동안 온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가족끼리도 안 보는 사람이 생기지 않나. 끊임없이 쌓아올 수 있던 우정의 동력은 저나 (송)은이나 서로 변하지 않았다는 거였다. 은이는 큰 회사의 대표가 되었지만 변한 게 하나도 없다. 그때랑 키도 똑같고(웃음). 그런 게 저희 관계를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했던 거 같다. 똑같다는 건 그만큼 나름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우리 둘 다 예전부터 크게 욕심이 없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늘 그랬다"라고 전했다.
송은이는 "감독님이 제게 항상 '은이는 똑같아' 그러는데 제가 느낀 감독님도 그렇다. 오빠는 대학교 때도 영화감독을 꿈꿨고 혼자 아웃사이더처럼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랬던 오빠가 진짜로 감독의 꿈을 이뤘고 그 어렵다는 영화계에서 꾸준히 작품을 하며 사랑받는 연출자가 되었다"라고 높이 샀다.
공교롭게도 '오픈 더 도어'는 일본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10년 만의 복귀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맞붙은 바. 같은 날 개봉한 가운데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65%라는 압도적인 예매율 수치로 무섭게 질주 중이다.
이에 관한 심경을 묻는 말에 장항준 감독은 "경쟁 구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님의 팬 중 한 명이기도 하고. 그리고 색깔이 다른 영화들이 한 시장에 존재하는 게 바로 문화의 힘이라고 본다. 천편일률적이지 않아서, 다양성 측면에서 오히려 환영한다. 우리의 시장을 뺏어간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영화는 누가 만들든 좋으면 된다는 생각이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님의 신작과 함께 개봉하게 되어 영광이다"라고 덤덤하게 바라봤다.
송은이 대표는 "저도 감독님과 같은 생각이다"라면서 "개봉이 되고 며칠이 지나면 '송은이는 어떻게 살 것인가'가 결정되지 않겠나"라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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