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저버릴 수 없어”… 맞서 싸우면서도 중재자로 나선 인도네시아[뜨거운 바다, 인도태평양]

김경준 2023. 10. 2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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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경제와 안보 사이 딜레마
편집자주
인도태평양은 전 세계 인구의 65%, 국내총생산(GDP)의 60%를 차지한다. 이 드넓은 바다가 달아오르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앞장선 중국 견제에 각국이 동참하면서 치열한 외교전과 일촉즉발의 군사행동이 한창이다. 윤석열 정부도 인도태평양 전략을 외교 독트린으로 내세워 대열에 가세했다. 한국일보는 대만 미국 일본 호주 인도네시아 현장을 찾아 저마다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살펴보고 4회에 걸쳐 연재한다.
9월17일 자카르타 중심부에 차로 10여 분 거리에 위치한 인도네시아 함대 사령부 건물 정문 앙옆에 미사일이 전시돼 있다. 인근에 해병대 사령부와 해군 제3기지 본부도 자리잡고 있다. 자카르타=김경준 기자

지난달 20일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중심부에서 차로 20여 분 거리인 할림역. 자카르타~반둥 고속열차 시범운행이 한창이었다. 2016년 착수한 140㎞ 구간 사업이다. 동남아시아 최초의 고속철이기도 하다. 차로 3시간 걸리던 이동시간을 40여 분으로 줄였다.

탑승을 앞둔 시민들은 포토존에서 기념 촬영을 하며 한껏 들떠 있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정부의 속은 타들어간다. 고속철 시대의 막을 올렸지만, 어디까지나 중국의 대규모 자본과 기술 지원 덕에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9월20일 자카르타~반둥 고속열차 시범운행에 승차하러 할림역을 찾은 시민들이 역사에 마련된 포토존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자카르타=김경준 기자

"대만은 중국 일부" 中 편든 인니… 자본에 종속된 외교

총 사업비는 113조 루피아(약 9조6,000억 원). 이 중 중국에 빌린 돈은 75%로, 인도네시아가 중국에 갚아야 할 돈은 원금만 85조 루피아(약 7조2,500억 원)에 달한다. 코로나19 여파로 공사비가 당초 예상보다 두 배 늘었다. 중국은 추가 대출 당시 담보를 요구했는데, 인도네시아는 이를 보증하기 위해 정부 예산을 투입하기로 고심 끝에 결정했다. 빚더미에 오른 셈이다.

중국의 막강한 경제력 앞에 인도네시아도 어떻게든 호응할 수밖에 없었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17일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서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며 인도네시아는 중국 정부가 국가적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양국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중국이 원하는 내용이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중국의 손을 뿌리치기 어려운 처지다. 중국처럼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국가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분쟁 지역 모두 내 땅" 중국 지도 발표에 격화하는 남중국해

하지만 인도네시아가 마냥 중국에 호락호락한 것만은 아니다. 해군력 증강에 주력하는 동시에 중국과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국가들과 '반중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베트남이 대표적이다. 배타적경제수역(EEZ) 범위를 놓고 올 초 협상을 타결해 인도네시아 EEZ에 속한 나투나제도 인근 대륙붕 개발 프로젝트에 협력하기로 했다. 중국이 영해라고 주장해 온 곳에서 보란 듯이 중국에 대응해 공조하는 모양새다.

아세안 국가들은 남중국해에서 여러 섬의 영유권을 놓고 중국과 오랜 분쟁을 겪고 있다. 스프래틀리군도(중국명 난사군도)에서는 필리핀·베트남·말레이시아가, 파라셀군도(시사군도)에서는 베트남이 중국과 으르렁대고 있다. 인도네시아도 나투나제도를 둘러싼 중국과의 신경전이 상당하다. 중국이 8월 공개한 표준지도에 남중국해 분쟁지역을 모두 자국 영토로 표기하면서 중국과 아세안의 갈등은 격화하고 있다.

필리핀은 최근 해안 경비대를 동원해 중국이 스카버러 암초 주변에 설치한 부표 장벽을 강제철거했다. 지난해에는 스프래틀리군도 섬 3곳에 군사기지도 설치했다. 베트남은 지난달 초 정상 조업 중이던 자국 어선을 향해 중국 선박이 물대포를 쏜 것에 대해 강력 반발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개별 국가 대응은 승산 없어… 중재자 자처한 아세안

다만 아세안 전체가 중국에 맞서는 구도는 아니다. 국가마다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달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세안정상회의에서 의장국 인도네시아는 남중국해 이슈를 아예 의제로 올리지 않았다. 리나 알렉산드라 인도네시아 국제전략연구소(CSIS) 국제부장은 "필리핀은 미국과, 캄보디아·라오스는 중국과 가깝고 아세안 나머지 7개국은 상황에 따라 입장이 달라진다"고 평가했다. 캄보디아는 영토 안에 중국의 비밀 해군기지를 용인할 정도로 중국과의 관계가 두텁다.

전문가들은 아세안 차원의 공동대응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엔젤 다마얀티 인도네시아기독교대학(UKI) 교수는 "아세안은 군사동맹이 아니기 때문에 영토 분쟁은 당사국 간의 문제로 봐 왔다"며 "하지만 중국의 위협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세안의 협력이란 점에는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아세안은 중국과의 분쟁이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2018년 '남중국해 행동강령(COC)'을 제정하기로 했지만 아직 답보상태다. 향후 3년 안에 COC를 만들어 중국과 합의하기로 뜻을 모은 정도다.

9월18일 인도네시아 외교부 청사 건물에서 만난 야얀 물야나 인도네시아 외교정책전략청장은 "중국과 경쟁과 협력의 균형을 맞추려고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자카르타=김경준 기자

이처럼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아세안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중국과 협력하지만 필요에 따라 거부하고, 때로는 무력충돌도 감수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는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미중 어느 한쪽에 서지 않는 대신 중재자 역할을 맡아 존재감을 최대한 부각해야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야얀 물야나 인도네시아 외교부 산하 외교정책전략청장은 "지난해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아세안의 노력으로 시진핑 주석과 조 바이든 대통령이 만났고, 다음달엔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도 다시 만날 예정"이라며 "우리의 역할은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회차순으로 읽어보세요

  1. ① 남태평양 섬나라를 지켜라... 중국과 최전선에서 맞선 호주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02323060000370)
  2. ② 태평양도서국을 향한 구애... "한국만의 차별화된 전략 있어야“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02315490003037)
  3. ③ “중국 저버릴 수 없어”… 맞서 싸우면서도 중재자로 나선 인도네시아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02305420002836)
  4. ④ 인도 "중국 중심 세력 재편, 인도태평양 불안정 초래할 것"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02410200004079)

 

※이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자카르타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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