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이태원에 왜 갔느냐'가 아니라 '왜 못 돌아왔는지'를 기억해 주세요
돌이켜보면 비극이 있기 전에는 늘 위험을 알리는 신호가 있었습니다. 2022년 10월 29일 토요일 밤 대한민국 수도 서울 번화가 한복판에서 159명의 청년들이 목숨을 잃은 날도 그랬습니다. 압사 우려가 있다는 신고가 빗발쳤지만 대응은 안일했습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제대로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시 계절이 바뀌어 1주기를 앞두고 있지만, 독립된 조사 기구조차 아직 꾸리지 못했습니다.
희생자 또래인 형제자매들이 겪은 ‘참사 그 이후’
손재주 좋았던 웹디자이너 동생의 죽음... “참사 한 달 지나 다른 유족의 삶에 관심”
Q. 이주영 씨는 어떤 동생이었나요.
A. 원래 회사를 다녔어요. 웹디자인 회사였는데, 본인이 나와서 공부를 해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마침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거든요. 민트랑 초코 해서 민초단인데 둘을 모티브로 본인이 디자인을 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웹사이트도 만들고 고양이 관련 박람회가 열리면 부스 만들어서 판매하는 작업도 하더라고요.
Q. 원래 주영 씨가 어릴 때부터 미술을 잘했어요?
A. 만들고 이런 거를 잘했던 것 같아요. 요리나 이런 것도 곧잘 하더라고요. 손으로 하는 재주가 있어서.
Q. 지난 1년이 가족들에게는 어떤 시간이었나요.
A. 어떻게 보면 시간이 되게 느리게 간 것 같기도 하고 (1주기가) 엄청 빨리 온 것 같기도 해요. 처음 한 달은 거의 정신을 빼놓고 산 수준이었던 것 같고, 한 달 지나서 조금씩 주변을 둘러보게 됐던 것 같아요. 가족끼리 억누르는 것만 해도 굉장히 힘이 많이 들었거든요.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나서 보니까 저희 가족 말고 다른 가족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가 궁금해진 거예요. 모임이 있다고 들어서 연락을 하게 됐고, 여기까지 오게 되긴 했네요.
이진우 씨가 유가족협의회에서 활동을 하며 기준으로 삼고 있는 건 ‘여기서 내가 제일 힘들고 아픈 사람은 아니다’라는 생각입니다.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보듬는 것에 멈추지 않고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을 하면서 다른 종류의 아픔에도 눈을 돌리게 됐습니다.
Q. 이런 질문이 참 송구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부모님은 지금 어떻게 이 시기를 보내고 계신지요. 아버님과 어머님도 같이 유가족협의회 활동을 하셨나요?
A. 돌이켜보면 어머니가 오히려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어머니가 더 먼저 무너질 줄 알았거든요. 근데 어머니가 오히려 강인하게 집의 기둥이 됐다고 할까.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엄마가 여기 딱 지키고 있을 테니까 동생 위해서 아빠랑 너랑 활동 잘하고 와. 집에 돌아오면 다시 우리끼리 시간을 보내자’. 이런 느낌.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저희 가족이 1년을 버티면서 크게 안 무너지고 올 수 있었던 건 엄마의 역할이 굉장히 크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이진우 씨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에서 ‘만능 일꾼’으로 통합니다. 간단한 사무나 회계 업무부터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취합하고, 형제자매 모임의 주축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Q. 직장생활과 활동을 병행하는 게 힘들지 않았나요? 책에는 ‘5개의 가면’을 쓴 것 같다는 표현도 나오는데 그럼에도 활동을 이어간 이유는 뭔가요.
참사 1주기가 다 되도록 ‘제대로 된 설명’ 없는 정부
A. 제가 너무 낙천적으로 생각했던 걸 수도 있는데 저는 공공의 역할을 하는 기관이 충분한 설명을 해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설명을 절대 하지 않더라고요. 단 한 번도 정부가 공식적으로 왜 이런 상황이 펼쳐졌는지, 이런 상황에서 각각의 희생자들이 어떤 식으로 병원에 이송됐는지, 어떻게 사망했는지 원인부터 결과까지 일련의 과정에 대한 설명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요. 그리고나서는 늘 ‘언론을 통해 얘기 나오지 않았느냐’, ‘경찰 조사가 되고 있지 않냐’고 하는데 그게 저희한테 제대로 된 설명은 아니거든요. 아직도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지난 19일 유엔의 제5차 자유권규약 심의에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경찰의 특별수사본부 수사 및 국정 조사 등 대대적 조사와 수사를 통해 대부분의 진상을 규명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시민사회와 법조계 생각은 다릅니다. 1주기를 맞이할 때까지 숱한 과제들이 미완의 상태로 방기돼 있다는 겁니다. 시민사회단체는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제 보고회를 열고 30개의 주요 과제와 173개의 세부 과제를 발표했습니다. 지금까지 이뤄진 정부 조사만으로는 다음에 있을지 모를 참사에 대비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Q. 이태원 유가족들에게 시청 앞 분향소가 갖는 의미가 특별하다고 들었습니다.
A. 녹사평 분향소에는 희생자들의 영정과 위패를 세웠다는 의미가 있었는데, 일부 보수 시민단체에서 끊임없이 와서 부모님들한테 ‘자식들 시체 팔아서 돈 얼마나 벌려고 지금 여기 나와서 이러고 있느냐’, 토씨 그대로 이렇게 얘기를 많이 했었어요. 그래서 가족들도 당시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었는데 시청 분향소가 만들어지고 더 많은 시민들을 만나면서 진심으로 추모해 주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 가족들이 좀 더 힘을 차릴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제희원 기자 jess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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