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상궂은 모습의 조선시대 사찰 수호신 사천왕상···‘보물’됐다
“역사적·예술적으로 중요한 작품들”
전국 사찰에 있는 조선시대의 주요 사천왕상(四天王像) 8건이 보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사찰 입구 천왕문에서 부처님의 가르침과 불국토를 수호하는 ‘보은 법주사 소조사천왕상’ ‘구례 화엄사 소조사천왕상’ 등 17세기의 사천왕상 8건을 보물로 지정했다”고 26일 밝혔다.
사천왕상은 불교에서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상상 속의 산 수미산(須彌山) 중턱에 살면서 동서남북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이자 호법신이다. 악귀 등을 쫓기위해 눈을 부릅뜨고 입을 벌린 험악한 표정, 갑옷을 입은 거대한 체구, 악귀 등을 짓밟고 있는 발, 보검이나 여의주·탑·비파 등을 손에 든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불교 건축적으로 일주문을 지나 부처를 모시고 있는 대웅전으로 가기 위해서 꼭 지나야 하는 천왕문 양쪽에 배치된다. 사천왕상은 흙(소조)이나 나무(목조) 등을 재료로 한 불교미술로, 동서남북 방위에 따라 각각 지국천왕·광목천왕·증장천왕·다문천왕이란 명칭을 지닌다.
문화재청은 “사천왕상은 임진왜란·병자호란 등 전란 이후 사찰의 재건 과정에서 불교의 부흥이라는 소명을 담아 17세기부터 18세기 전반까지 집중 조성됐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며 “이후에는 불화 등의 형태로 그려졌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한 사천왕상들의 지정기준과 관련, “17세기 중엽 이전 작품으로 전란 이후 재건불사 및 불교 중흥과 관련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작품, 17세기 후반 작품으로 그 구성이 완전하고, 전하는 과정에서 변형·왜곡이 적으며, 시대성 또는 작가의 유파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으로 동일 유파의 작품 중 가장 확실하고 대표성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보물로 지정된 ‘보은 법주사 소조사천왕상’은 양식적 특징과 목재의 연대 분석 결과 17세기 중반 작품으로 추정된다. 5.7m에 이르는 최대 크기의 사천왕상이자 현재 전해지는 사천왕상들 가운데 매우 드문 입상으로 조형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다. 특히 사천왕상의 발 밑에 청나라·조선의 관리를 두고 있어 병자호란의 치욕을 극복하고 조선의 탐관오리들에게 종교적 훈계와 교훈을 주고자 한 최초의 조각이라는 점에서 사회사적 의의도 있다.
‘구례 화엄사 소조사천왕상’과 ‘여수 흥국사 소천왕상’은 전체적으로 중량감이 넘치는 조형 감각, 사각형의 주름진 큰 얼굴, 넓고 두껍게 표현된 콧방울 등 17세기 전반의 양식을 보인다. 두 점 모두 의자에 걸터 앉은 모습이다.
‘김천 직지사 소조사천왕상’은 조선 후기 사천왕상으로는 드물게 발원문이 발견됐다. 발원문에 따르면, 1665년 완주 송광사를 근거로 활동하던 조각승 단응 등의 유파가 조성한 것으로 확인된다. 특히 함께 발견된 방위가 적힌 묵서는 그동안 논란이 있던 사천왕상들의 각 방위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함으로써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다.
‘고흥 능가사 목조사천왕상’은 1666년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개성적인 신체 비례, 곧은 자세에 정면을 향한 무표정의 얼굴 등으로 소조상에서 목조상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특히 가늘고 야윈 형태적 특징은 당시 궁핍한 백성들의 삶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어 사회사적 연구 대상으로 주목된다.
‘영광 불갑사 목조사천왕상’은 원래 전북 소요산 연기사에서 17세기 후반 제작된 것으로, 연기사가 폐사되면서 1876년 불갑사로 옮겨졌다. 나무 조각들을 접목해 전체적인 형태를 만들고 머리카락을 비롯한 일부 세부장식은 흙으로 정교하게 제작해 소조상에서 목조상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적 작품이다. 목조사천왕상이 보물로 지정되면서 이미 보물로 지정돼 있던 ‘영광 불갑사 불복장 전적’ 중 사천왕상에서 나온 복장 전적은 사천왕상과 함께 지정·관리하기 위해 기존 보물에서 지정을 해제했다.
‘홍천 수타사 소조사천왕상’은 1676년 승려 여담이 조성했다. 강원도에 현전하는 17세기의 유일한 사천왕상이며, 규모는 작지만 여러 요소들이 세밀하게 표현돼 국내 사천왕상들 가운데 세부 표현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공주 마곡사 소조사천왕상’은 1683년 조성됐다. 17세기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되는 소조기법으로 제작된 이 사천왕상은 당시 사천왕 도상 및 조각 유파의 활동 범위와 동향, 불상의 제작 방식과 제작 순서 등 다양한 방면에서 학술적 가치가 있다.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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