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조의 아트홀릭] "60년 만에 찾아온 마지막 기회"
■ 글 : 정승조 아나운서 ■
얼마 전 일본에서 돌아와 국내 최초로 공개된 작품이 화제다. 바로 평생 가족을 그린 한국 대표 작가 장욱진의 1955년 작 '가족'이다. 행방을 알 수 없었던 이 작품이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60년'.
정승조의 아트홀릭은 높은 미술사적 가치를 지닌 이 작품 발굴의 일등 공신이자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장욱진 회고전'의 전시 기획자인 '배원정 학예연구사'를 만나 1955년 작 가족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전시에 대해 물어보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Q1. 아트홀릭 독자들께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 근무하고 있는 학예연구사 배원정입니다. 정승조의 아트홀릭에 지면으로나마 인사드리게 돼서 반갑습니다.
Q2. '가장 진지한 고백 : 장욱진 회고전'을 직접 기획하셨죠. 어떤 전시인가요.
이번 전시는 장욱진 화가가 1920년대 학창 시절부터 1990년 작고할 때까지 60여년간 꾸준하게 펼쳐 온 유화, 먹그림, 매직펜 그림, 판화, 표지화와 삽화, 도자기 그림 270여점을 한 자리에서 조망해 볼 수 있는 전시입니다.
장욱진 화가는 그의 수필집 '강가의 아틀리에' 서문에서 밝혔듯이 참된 것을 위해 뼈를 깎는 소모까지 마다하지 않는 ‘진솔한 자기 고백’으로 창작에 전념했고, 그림 그리는 시간 대부분을 방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수공업 장인(Artisan)처럼 그리셨습니다. “나는 정직하게 살아왔노라.”라고 당당하게 외치며, 누구보다 자유로운 발상과 방법으로 화가로서의 본분에 자신을 충실히 소모시킨 것입니다. 일찍이 그는 “그림처럼 정확한 내가 없다. 난 그림에 나를 고백하고 나를 다 드러내고 나를 발산한다. 그리고 그림처럼 정확한 놈이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떠난 지 30여년이 흘렀지만, 그의 그림은 지금도 여전히 세상을 향해 정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의 고백을 진지하게 볼 수 있는 전시입니다.
Q3. 그렇군요. 장욱진에 주목하는 이유가 있을 텐데요.
장욱진 화가는 한국 근현대 화단에서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유영국 등과 함께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2세대 서양화가이자, 1세대 모더니스트입니다.
그가 주로 활동하던 시기는 앵포르멜, 단색조 회화, 민중미술 등 거대 담론이 오가며 100호 이상의 큰 그림들이 유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상대적으로 소박한 까치나 가족이란 주제를 일관되게 그렸던 장욱진의 10호 미만 작품들은 “여자들이 좋아하는 작고 예쁜 그림”으로 치부되며 온전한 평가가 이뤄지지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는 한국미술의 현대화를 꾀하며 김환기, 이중섭과는 또 다른 한국적 모더니즘을 창출하고 한국 미술사의 새로운 장을 연 화가입니다. 재료를 가리지 않는 자유로움과 하나의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는 창작 태도를 보여주며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했죠.
서양화를 기반으로 동양적 정신과 형태를 가미해 이 둘이 무리 없이 융합과 일체(一體)를 이루는 경우는 장욱진 외에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는 한국 현대미술이 비단 몇몇 사조들에 의해서만 움직인 것이 아님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죠.
장욱진처럼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한국미술사에 우뚝 서는 독자적 양식을 보여준 화가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통해 “장욱진 그림이 하나의 장르다”라고까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4. 60년 만에 국내에 공개된 장욱진 최초의 가족도인 '가족(1955)'. 이번 전시에서 단연 화제입니다. 어떤 작품인가요.
1955년 작 장욱진의 '가족'은 화가가 무척이나 아껴 항상 머리맡에 걸어 두었다는 그림으로 사연이 참 많습니다. 공주사대 교수를 역임한 제자 이남규가 명륜동 집에 걸려 있던 이 작품에 반해 양복 안에 몰래 감추었다가 장욱진이 “아직 정도 안 떨어졌는데 가져가다니.”란 소리를 듣고 다시 돌려주었다는 일화도 전하죠.
화면 속 한가운데 자리 잡은 집 안에 네 명의 가족이 앞을 바라보고 있고, 집 좌우로 나무가, 주변으로 두 마리의 새가 날아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대상이 군더더기 없이 짜임새 있게 배치된 '가족'은 장욱진의 조형 감각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에요. 무엇보다 그의 가족도 가운데 어머니와 아이들이 함께 있는 도상이 아닌, 아버지와 아이들만 함께 그려진 유일한 사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습니다. 아마도 전쟁 직후 가족을 지켜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의식이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요.
평생 가족의 이미지를 그린 장욱진 가족도의 전범(典範)이 되는 그림이자, 최초의 정식 가족도라는 측면에서 미술사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Q5. 60년 전 이전으로 가보죠. 장욱진의 1955년 작 '가족'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겁니까.
이 그림은 1964년 반도화랑에서 개최되었던 장욱진의 첫 번째 개인전에 출품되었다가 그가 처음으로 돈을 받고 판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림을 산 인물은 당시 한일경제협력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시오자와 사다오(塩澤定雄, 1911-2003)라는 그림 애호가였습니다. 장욱진은 무척 아끼던 작품이라 팔 생각이 없었지만 반도호텔에 머물며 그림을 사고 싶다고 두 번, 세 번 찾아오는 사다오 씨의 정성에 감동해 전시 마지막 날 마음을 바꾸었다고 해요.
당시는 그림을 사고파는 게 흔치 않던 시절이라 장욱진 화가의 부인이신 이순경 여사님은 시오자와 사다오 씨의 명함을 받아 두었습니다. 장 선생님은 전시회가 끝날 무렵 찾아온 조각가 최종태 선생님과 함께 그림값의 얼마를 헐어 술을 사 마시고, 나머지는 남겨 막내딸에게 바이올린을 사주었다고 합니다.
Q6. 그렇군요. 그럼 60년간 행방이 묘연했던 작품을 어떻게 발견한 건가요.
장욱진의 '가족'은 지난 60년 동안, 누구도 본 적 없고, 오직 가족들과 가까운 지인 몇몇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던 작품입니다. 마치 신화나 전설처럼, 구전(口傳)으로만 전해 오던 그림이었던 것이죠. 어쩌면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장욱진 회고전이 일본인에게 팔렸다는 그림을 찾아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소장가의 아들 시오자와 슌이치 씨에게 연락이 닿았지만 정작 슌이치 씨도 작품의 행방을 모르고 있던 상황이였습니다. 작품이 있을 시오자와 사다오 씨의 아틀리에는 수풀이 무성해 낫으로 길을 만들며 들어가야 했습니다. 전기가 끊어진 어두컴컴한 2층 다락방에는 먼지가 수북했고요. 운송 회사 핸들러들이 작품을 찾는 동안, 분명 100호짜리 큰 그림 뒤에 장욱진의 작은 그림이 포개져 있거나, 다락방 모서리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놓여 있을 거란 상상을 하며 주변을 살폈습니다.
그러던 중 다락방 한쪽에 있는 낡은 벽장에 눈길이 갔습니다. 문도 제대로 열리지 않는 낡은 벽장이었습니다. 벽장문을 겨우 반만 열고, 몸을 비집고 들어가 핸드폰 조명등을 켰는데, 잔뜩 먼지를 뒤집어 쓴 물건들 사이로 저 안쪽 깊숙이 비스듬히 꽂혀 있는 작은 액자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설마 하며 손에 잡힌 그 액자를 벽장 밖으로 꺼내자 바로 그토록 애타게 찾던 장욱진의 1955년 작 '가족'이였던 것이죠.
Q7. 작품을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들여오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전시 준비과정에서 4개월간 계속 서신을 보내며 간청했음에도 답이 없던 시오자와 슌이치 씨로부터 회신을 겨우 받긴 했지만, 집에도, 돌아가신 아버지의 아틀리에에도 그런 그림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을 때 막막한 심정이었습니다. 작품을 팔아버린 것일까? 선물로 준 것일까? 알 수 없었기에 그만 포기할까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슌이치 씨에게 작품의 현존 여부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임을 설득하고, 직접 부친의 아틀리에에서 장욱진의 '가족'을 찾아보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그러자 슌이치 씨는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의 신분을 일본 외무성(外務省) 즉 대한민국 외교부와 같은 곳에서 보장해 줄 것을 요청해 왔습니다. 흉흉한 사건이 많은 시절이니 이해가 가기도 했지만, 매우 당황스러운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또 이 작품이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이 될 수 있도록 간곡히 청하는 두 시간 반 동안 소장가의 마음이 5~6번 바뀌어 그때도 많이 긴장하고 초조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결국 이 작품이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이 되는 것에 동의하신 후로는 작품의 가격에 관계없이 흔쾌히 구매계약서에 서명을 해주셨습니다.
Q8. 각고의 노력 끝에 장욱진 최초의 가족도인 '가족(1955)'은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작품의 보존 처리 작업이 있었다고요.
작품 표면에 먼지와 오염물들이 붙어있던 상태였고, 특히 집 창문 부분에는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물감층의 박락이 가장 심해 보였습니다.
수장고로 입고된 후 작품은 먼저 훈증 처리를 거친 후 들뜬 물감층을 안정화 시키고 작품에 보이는 곰팡이와 먼지 등을 클리닝 했습니다. 액자와 작품을 분리하고 난 후에 보이는 벌레의 사체 등도 추후 전시를 마친 후 추가 연구를 위해 보존해 놓고요. 한 달 남짓 동안 범대건 학예연구사와 조인애 연구원의 집중 응급 보존 처리 과정을 마친 '가족'은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Q9. 덕분에 장욱진 최초의 가족도를 60년 만에 고국에서 특히 그의 회고전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네요. 분위기를 바꿔 다른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장욱진 회고전은 챙겨 볼 만한 작품이 많습니다. 배원정 학예사의 원-픽(ONE-PICK) 작품은 무엇인가요.
장욱진이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 그린 '밤과 노인'(1990)이란 작품입니다.
왼쪽 상단에는 흰 도포를 입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노인 혹은 도인으로 보이는 인물이 있는데, 장욱진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화면 오른쪽에는 화가가 사랑했던, 그리고 그의 일부로 표현되던 집, 까치, 나무, 아이가 있는데, 아이는 마치 그림 속 빈집에 들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한 듯 깜짝 놀란 표정으로 방방 뛰며 동네 사람들에게 할아버지의 부고를 알리는 듯 해요. 상대적으로 하늘 저편에 공중 부양하며 날아가는 듯한 노인의 표정은 세속에 초탈한 듯하고 만사를 관조하는 모습입니다. 자신이 사랑한 것은 저 아래에 있지만, 삶과 죽음은 다른 것이 아니기에 나의 마음은 평화롭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 1951년 '자화상'과 함께 감상하면 그 감동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모더니스트 젊은 신사의 모습으로 형광 오렌지빛의 황톳길을 거닐던 장욱진의 당당했던 모습이 이 그림에서는 74세의 노인이 되어 그가 사랑했던 집과 나무, 까치를 남겨두고 긴 시간을 이어주듯한 평생을 묵묵히 걸어왔던 구부러진 길을 뒤로 한 채 달과 함께 유유자적 떠나는 모습입니다. 여기서도 그는 마찬가지로 당당한 모습인데, 마치 “나는 평생을 그렇게 살았노라”라고 그림으로 말하는 듯해 마음에 더 큰 울림을 줍니다.
Q11. '가장 진지한 고백 : 장욱진 회고전'을 잘 감상하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요.
장욱진 화가의 그림은 얼마만큼 이해하고, 들여다보느냐에 따라 감상자가 느끼는 감동의 편차가 큰 편입니다.
미술사가 관찰에 지식을 조합하여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것이라면, 장욱진의 그림은 그러한 미술 감상법에 가장 적절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서 다루어진 소재가 극히 제한되면서도 이를 평생에 걸쳐 그렸기에 주제 의식과 시기에 따른 변화상이 일관성 있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보고 싶은 대로 그냥 보고 있는 것’과 ‘지식을 가지고 관찰해서 보는 것’은 크게 다릅니다. 무엇보다 그가 그림 한 점을 그릴 때마다 점 하나, 선 하나에도 지나칠 만큼 엄격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장욱진의 작품을 감상하는 태도가 조금은 더 진지해져도 되지 않을까요?
60여 년 화업(畫業) 인생 동안 일상적이고도 친근한, 그러면서도 제한된 몇 가지 소재들을 지겨우리만치 반복했음에도 어떻게 단 한 점도 똑같은 그림이 전해지지 않을지 화가의 발상과 방법, 철학적 사유 체계 등을 생각하며, 한 점 한 점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음미하다 보면 각자가 가져가는 감동과 깨달음은 모두 새로운 이야기들일 것입니다. 이를 나누고 공유하며 우리의 일상이 조금은 더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Q12. 아트홀릭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전시는 내년 2월 12일 설 명절까지 계속됩니다.
장욱진 화가의 대표작 270여점을 모처럼 한자리에서 감상하실 수 있는 자리인 만큼, 한 번 방문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방문해 주셔서 장욱진 화가가 그림을 통해 보여주는 진지한 고백들을 감상하며 장욱진 그림이 갖고 있는 매력에 흠뻑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가장 진지한 고백 : 장욱진 회고전'의 관람 예약은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 관람료는 덕수궁 입장료(1천 원)를 포함해 총 3천 원. 장소는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 월요일 휴관.
(사진 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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