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黨 ‘수직적’ 관계 변화 없인 총선 패배…공화주의 정신 살려야 [Deep Read]
대통령을 꼭짓점으로 여당이 하부구조화한 형태의 국정 운영… 윤의 불통 논란 불러
공화주의 정신은 국민 위한 공공선 실현… 당·대는 수평적 협력하고 여야는 상호존중 필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여권에 큰 패배를 안겨줬다. 이는 곧 윤석열 정부와 집권여당이 변화해야 한다는 국민의 엄중한 경고이다. 변화와 혁신 없이 5개월여 앞으로 닥친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하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다.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의 국정 운영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대통령이 꼭짓점이 되고 여당과 행정부가 하부구조화한’ 형태로 국정이 굴러가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는 견제와 균형을 통해 공공선을 구현하는 공화주의 정신과 맞지 않는다. 대결과 갈등이 아닌, 설득과 타협으로 공공선을 이루는 데 국정 혁신의 답이 있다. 대통령실과 여당이 수평적 관계로 거듭나고, 여와 야는 상호 존중과 협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공화주의 정신
지난 1년 반 동안 여권은 국회에서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한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에 밀려 노동·교육·연금 개혁 등 주요 개혁과제를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 이제 내년 총선마저 패하면 윤석열 정부는 아무런 성과 없이 임기를 마칠 수밖에 없는 레임덕 상황을 마주할 수도 있다. 보선 참패라는 답안을 받은 국민의힘은 혁신위원회를 구성하고, 야당에 ‘협치’를 제안했다.
혁신이든 협치든 관건은 공화주의 정신을 얼마나 살리느냐에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는 유사하나 같은 뜻은 아니다. 민주주의 아래에서 권력은 주권자인 국민의 선거로 부여된다. 국민의 다수 지지로 권력을 획득한 집권자와 정당은 임기 동안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고, 행정관료는 집권자의 지시에 따라 정책을 집행한다.
이 같은 권력 게임으로서의 민주주의는 다원주의가 보장되고 사회적 가치에 대한 기본적 합의가 튼튼한 사회에서만 제대로 작동한다. 양극화와 갈등이 심한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자칫 편을 가르는 진영 정치에 휩쓸리기 쉽고 사회 분열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약점을 가진다.
공화주의는 정치의 근본적 목적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경쟁에 있지 않고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를 통합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다고 본다. 공화주의 관점에 따르면 권력의 남용을 막기 위한 삼권분립과 같은 견제와 균형이 매우 중요하다. 정당·정파 간 상호 차이를 존중하고 공존하기 위해 협치도 필요하다. 공화주의 정치의 최종적인 목적은 ‘국민을 위한 공공선’을 이루는 것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마키아벨리를 거쳐 현대까지 이어지는 오랜 전통의 정치이론에 근거한다.
◇수직과 대결
국민이 원하는 정치는 정쟁 아닌 경쟁, 갈등보다는 통합이다. 민주주의를 넘어 공화주의 구현을 원한다. 공화주의 구현을 위한 키워드는 ‘수평적 협력’과 ‘상호 존중’이다. 그렇다면 여권 내부는 ‘수평적 협력’이 이뤄지고 있을까. 여와 야는 ‘상호 존중’의 정신을 가질까.
먼저 여권의 수평적 협력 문제. 국민은 윤 대통령의 정부가 소통 노력이 부족하고 국정 운영 방식이 독선적이라고 느낀다. 윤 대통령이 권한의 집중을 막기 위해 청와대를 떠나 규모가 작은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이전했는데도, 이렇게 인식되는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이와 관련, 본인만의 원칙만 앞세워 타협을 거부하는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에 문제가 있다는 여론이 많다. 원칙주의와 강건함을 장점으로 한 ‘검사 윤석열’에게 박수를 쳤지만, 불통과 오만 이미지의 ‘대통령 윤석열’에게는 높은 점수를 주지 못하는 것이다.
대통령실-여당의 수직적 상하관계는 대통령의 불통·독선 이미지를 강화했다. 대통령을 꼭짓점으로 행정부와 여당이 하부구조화한 반(反)공화주의적 형태로 국정이 굴러간 것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것이다. 이것이 국정 지지도나 집권여당 지지도가 30% 초반대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강서구청장 보선에서 참패하게 한 원인이 됐다.
수직적 당·대 관계는 여권 내 유기적 역할분담과 효율적 소통을 막는다. 실제로 국가보조금을 둘러싼 이권 담합, 사교육 시장의 카르텔, 과학기술 분야 연구예산 축소 등 국가 대소사와 관련된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용산(대통령실)이 단독으로 주도하고 여의도(여당)가 끌려가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정부나 집권당이 무슨 역할을 했는지가 드러나지 않는다. 국민의 애로와 목소리가 반영될 틈이 보이지 않으면서 불통과 오만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무엇을 할 것인가
상호 존중 없이 쟁투만 일삼는 여야 관계도 심각하다. 지난해 3월 대선에서 0.73%포인트라는 근소 차이로 윤석열 정부가 탄생했다. 박빙의 승부는 한국 정치가 이미 두 개의 정치 진영으로 갈라진 현실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런 정치 지형에서 상호 존중과 관용이라는 민주주의의 가드레일을 지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더욱이 윤 정부는 집권 1년 반 동안 이전 문재인 정부의 실패한 정책에 대한 수정과 차별화를 추진했다. 지난 정부에서 무리하게 추진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망가진 형사사법 시스템과 탈원전 정책으로 파괴된 원전 생태계 복원을 위한 정책 등은 필요한 과업이었지만 진영 정치가 강화됐다. 민주당은 절대 과반 의석이라는 의회 권력을 이용해 윤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한 반대를 위한 반대에 집중했다. 여러 범죄 혐의로 수사를 받는 이재명 당 대표의 방탄을 위해 각종 무리수가 동원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를 타개하려면 대통령부터 바뀌어야 한다. 다양성 존중과 관용이라는 협치의 관점으로 야당을 대해야 한다. 이게 공화주의적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고, 여와 야가 ‘친구와 적’ 혹은 ‘소속과 배제’라는 이분법으로 대결을 일삼는 갈등의 정치를 근본적으로 극복하는 길이다.
여권 내부의 당·대 관계도 변화해야 한다. 대통령실이 국정 방향을 결정하면, 여당은 민생 현장에서 국민과 소통하며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식의 수평적 역할 분담이 이뤄져야 한다. 여당이 바라볼 곳은 대통령실이 아니라 국민이다. “국민은 늘 옳다”라는 윤 대통령의 최근 발언이 말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이렇게 여권 내부의 수평적 역할 분담에 따른 팀플레이가 이뤄질 때 비로소 국정 운영의 정상화를 바라볼 수 있다.
◇공공선을 향해
저출산·고령화 사회로의 진입, 성장 잠재력의 위축 등으로 국민의 삶은 어렵다. 지금 대한민국에 최고의 공공선은 민생·안녕·복지의 보장이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국회, 여와 야가 공화주의 정신으로 돌아가 상호 존중과 수평적 협력을 실행해야 할 때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용어설명
‘협치’의 본래 의미는 공공 업무를 관리하기 위해 정치·경제·행정적 권한을 행사하는 국정 관리 체계. 최근엔 여야가 양보·타협해 정치현안과 국정과제를 처리하는 협력정치란 의미로도 쓰임.
‘공화주의’는 공공선에 대한 헌신 속에서 개인의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정치 이데올로기. 어원인 ‘republic’을 ‘공중의 것’으로 이해할 경우 그 의미가 선명하게 다가옴.
■ 세줄 요약
공화주의 정신 : 공화주의는 민주주의와 비슷하나 좀 달라. 공화주의의 목적은 ‘국민을 위한 공공선’을 이루는 것.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마키아벨리를 거쳐 현대로 이어지는 오랜 전통의 정치이론에 근거함.
수직과 대결 : 하지만 여권 내부는 ‘대통령이 꼭짓점이 되고 여당과 행정부가 하부구조화한’ 형태로 국정이 굴러감. 여야는 상호 존중 없이 쟁투와 갈등을 일삼는 관계로 전락. 둘 모두 공화주의 정신에 맞지 않아.
무엇을 할 것인가 : 공화주의 정신을 구현하려면 대통령부터 바뀌어야. 대통령실과 여당은 수평적 협력에 의한 역할 분담이 이뤄지고, 여야는 다양성 존중과 협치라는 관점으로 상호 관용하며 국정을 이끌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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