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구불 ‘느림보 국도’의 끝에서 깊은 계곡 ‘오지의 여유’를 만나다[박경일기자의 여행]

박경일 기자 2023. 10. 2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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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일기자의 여행 - 31번 국도따라 즐기는 영월 가을 길
매봉산 밑 ‘아시내 계곡 캠핑장’
오지 콘셉트 카페 인기끌며 각광
‘자연속 치유 공간’ 하이힐링원
37개 프로그램 年 1만명 이용
폐광 후 쇠락한 상동 광산마을
화재로 화제된 천주교 상동교회
그을음 남겨둔 기도의 벽 ‘뭉클’
‘밭멍’하기 좋은 농촌 스테이도
위 사진은 강원 영월의 장산 능선을 따라 설치된 풍력발전기. 운무가 넘실거리는 장산 아래 칠랑이계곡을 끼고 영월에서 태백을 잇는 31번 국도가 지나간다. 아래는 옥동천 상류 칠랑이계곡.

영월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 31번 국도…여행하기 좋은 길

‘여행하기 좋은 길’이 있다. 31번 국도가 그런 길이다. 31번 국도는 부산 기장군 일광읍에서 시작해 북한 땅인 원산 근처 강원 안변군까지 이어지는 총연장 750㎞의 길이었다. 분단 이전의 얘기다. 지금은 강원 양구군 동면의 월운저수지쯤에서 북진하다가 길이 끊어진다. 부산 일광에서 여기 양구까지가 627.6㎞다. 이 길이만으로도 31번 국도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긴 국도’다.

31번 국도가 ‘여행하기 좋은 길’인 이유는 바다부터 산까지 구간마다 다채로운 풍경을 가로질러서다. 남쪽의 31번 국도에는 바다가 있다. 부산 기장에서 울산을 지나 포항에 이르는 31번 국도 구간은, 바다를 끼고 달리는 해안도로다. 포항을 지난 31번 국도는 경북 내륙으로 파고드는데, 거기서부터 강원도에 들어서면서 험준한 백두대간 산악지대를 관통한다.

그중에서 ‘가을에 여행하기 좋은 길’로 31번 국도 영월 구간을 꺼내보았다. 길의 방향은 북에서 남으로. 평창에서 영월을 지나 상동과 태백으로 이어지는 ‘L자’ 모양의 길이다. 그 길 위에 깊은 오지도 있고, 번성했던 시절 얘기만 애처롭게 남아 쇠락해가는 곳도 있으며, 몸과 마음을 다 내려놓고 편안하게 이완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옥동천과 칠랑이골의 물길을 따라 달리는 이 길이 가을에 좋은 건, 행락객이 없어서다. 다른 계절에는 더 그렇지만, 가을에도 번잡하지 않고 고요하다. 구태여 멈추지 않고 속도를 늦춰서 그냥 스치듯 지나가도 좋은 길이다.

# 늦춘 속도의 여유…매력적 ‘뒷길’

수도권에서 영월이나 태백에 간다면 필시 타게 되는 도로가 38번 국도다. 31번 국도와 38번 국도는 영월읍에서 잠깐 겹쳐졌다가 석항에서 갈라진다. 석항에서 갈라진 이후 두 국도는 느낌이 사뭇 달라진다. 38번 국도는 넓고, 곧고, 무엇보다 빠르다. 상대적으로 31번 국도는 좁고, 굽고, 느리다. 비유하자면 38번 국도가 영월과 태백을 잇는 ‘앞길’이고, 31번 국도는 똑같은 구간을 잇는 ‘뒷길’인 셈이다.

석항에서 갈라진 38번 국도는 민둥산 앞을 거쳐 사북과 고한을 지나 두문동재 터널을 통과해 빠르게 태백으로 간다. 민둥산도, 하이원리조트도, 태백역과 태백시청도 모두 이 길로 간다. 38번 국도는 굽은 길을 직선화하면서 땅을 돋우거나 곳곳에 교각을 세워 놓은 길이어서 건널목도, 교차로도 없는 구간이 많다. 그저 목적지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고속도로를 방불케 하는 길이다. 속도를 내게 되는 건 그 길이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31번 국도의 분위기는 다르다. 길 험하기로 악명높았던 수라리재를 그 아래 뚫은 터널로 빠르게 건너가긴 하지만, 속도를 내는 건 딱 그 정도까지다. 터널을 나와 산솔면에서 상동을 지나 칠랑이계곡으로, 거기서 다시 화방재 너머 태백까지 이어진 길은 단정하되 유연한 곡선이다.

이 길 위에서는 늦춘 속도의 여유가 느껴진다. 속도를 늦추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구간에 차량 통행이 워낙 적어 뒤따르는 차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지만, 아늑한 풍경과 분위기도 한몫한다. 다음은 느린 길에서 만난 풍경과 이야기다.

# 풍경 하나…가장 깊은 오지 캠핑장

우리나라에서 가장 외딴 오지에 있는 캠핑장은 여기가 아닐까. 31번 국도가 지나가는 영월군 상동읍 천평리. 마을을 끼고 흐르는 옥동천 물길 건너 매봉산 아래 계곡 최상류에 캠핑장이 있다. ‘아시내계곡 오지캠핑장’이다. 캠핑장은 ‘대체 여기까지 누가 오나’ 싶을 정도로 혀가 내둘러지는, 깊고 깊은 오지에 있다.

캠핑장은 31번 국도가 지나는 마을의 물 건너편에 있다. 내덕2리 마을회관과 상동휴게소를 지나 좌회전하면 옥동천을 건너는 작은 다리가 주채교다. 이 다리 건너 물길을 끼고 실낱같은 길을 따라 1.7㎞쯤 가면 아시내계곡이 옥동천과 합류하는 지점에 닿게 된다. 여기서부터 승용차로는 접근 불가.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가파르고 거친 비포장도로가 시작된다. 길이 어찌나 가파르고 험한지 등에 식은땀이 날 정도다. 산길을 타고 길 끝까지 올라가면 계곡을 끼고 거짓말처럼 숲에 둘러싸인 민가와 캠핑장이 나타난다.

“벌을 치고 오미자나 심겠다고 들어왔다가 주변 사람들의 응원으로 캠핑장까지 만들게 됐습니다. 멀고 불편한 이곳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건 산 아래 세상의 삶이 팍팍해지고 있다는 얘기겠지요.”

배정태(65) 씨가 도시생활을 접고 아시내계곡에 들어온 건 지난 2009년.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 헤매던 그는 ‘운명처럼’ 이곳을 찾아냈다. 본래 화전민 13가구가 살던 곳이었다는데, 울진·삼척 공비사건으로 오지의 화전민이 소개되면서 딱 1가구가 남아있었다. 그 집을 사서 오지 생활을 시작한 배 씨는 오지의 무료한 일상을 달래려 ‘오지로 가는 길’이란 인터넷카페를 열었는데 뜻밖에 그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인터넷 카페에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회원을 중심으로 아시내계곡을 찾는 발걸음이 잦아졌다. 알음알음 찾아온 회원들은 숙소가 없으니 마당이며 계곡에다 텐트를 쳤고, 그게 지금의 캠핑장이 됐다. 작정하고 만든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캠핑장이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고서야 여기 캠핑장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누가 이런 접근성 최악의 공간에 캠핑장을 열 생각을 했겠는가 말이다.

아시내계곡 캠핑장은 다른 캠핑장과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이 깊은 산중까지 찾아온 이들이 비슷한 취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동지적 연대’를 한다는 것이다. 서로에게 너그럽지만, 그렇다고 간섭하지도 않는다. 이웃 사이트와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도, 한번 의기투합하면 끈끈하게 교유한다. 지금 아시내계곡은 숲 냄새를 맡고 청량한 대기 속에서 별 보기 딱 좋은 계절을 지나고 있다.

# 심신을 내려놓는 곳…하이힐링원

31번 국도가 지나가는 영월군 상동에 ‘하이힐링원’이 있다. 인터넷과 미디어 중독을 비롯한 행위중독을 치유하고자 설립한 강원랜드 산하 공헌재단인 산림힐링재단이 운영하는 이른바 ‘웰니스’ 공간이다. 웰니스(Wellness)란 웰빙(Well-being)과 행복(Happiness), 건강(Fitness)의 합성어. 이름처럼 이곳은 깊은 오지의 산중에서 자연과 호흡하며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곳이다.

하이힐링원은 코로나 직전이던 지난 2019년 11월 문을 열었다. 개관 직후에는 주로 사회공헌프로그램에 주력했다. 재단의 지원을 받아 아동과 청소년, 취약계층 가족 등을 대상으로 1박 2일 동안 숙박과 식사, 교육프로그램을 무료로 진행했다. 이후 기업 등 단체를 대상으로 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스트레스 해소, 심신 안정, 삶의 만족도 향상 등에 포커스를 맞추고 구성한 프로그램이다.

하이힐링원의 특징은 체험 프로그램을 모듈화해 원하는 체험을 자유롭게 선택해 구성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 쿠킹클래스, 캠핑, 트레킹, 요가, 공예 등 37가지의 프로그램을 메뉴판처럼 보여주면 고객들이 원하는 체험으로 자신의 일정을 자유롭게 구성한다. 해발 500m, 66만여㎡(약 20만 평)에 달하는 천혜의 자연환경에다 충실한 프로그램까지 더해지면서 하이힐링원의 연간 이용객은 1만1000명에 달한다.

하이힐링원이 최근 가족 등 개별 이용객 대상으로도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기반의 여행사 ‘프립(www.frip.co.kr)’을 통해 매 주말에 이용할 수 있는 1박 2일 힐링 여행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영월의 복합문화공간 ‘젊은달 와이파크’ 관람과 하이힐링원 숙박, 체험프로그램 이용 등을 결합한 상품이다. 하이힐링원에서는 별자리 보기와 불멍 등의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숙박과 체험, 세끼 식사를 제공하고도 비용은 1인당 10만9000원이다. 다양한 체험도 훌륭하지만, 숙소와 식사의 질도 빠지지 않는다.

체험프로그램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하이힐링원을 둘러볼 수 있다. ‘어울림(林)’이라 이름 붙인 하이힐링원 숲을 산책하거나 개방감 뛰어난 커피숍에서 차를 마실 수 있다. 물드는 단풍을 감상하며 마시는 차 한잔만으로도 가을의 오후를 근사하게 보낼 수 있다.

# 한때 우리나라를 먹여 살렸던 상동

31번 국도 영월 구간 끝에 상동이 있다. 상동에는 광업소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이던 1923년 중석(텅스텐) 탄광이 개발된 이후 1952년 대한중석 상동광업소가 들어서면서 넘쳐나는 돈으로 흥청거리던 곳이었다. 대한중석은 당시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정도’라는 엄청난 규모의 중석이 매장된 광산이었다. 실제로 1960년 대한중석의 수출액이 국가 전체 수출액의 절반을 훨씬 넘었을 정도였다.

광산 규모만 컸던 건 아니다. 광부들의 수입도 두둑했다. 그 무렵 상동의 술집이며 유흥업소들이 밤마다 일을 끝낸 광부들로 흥청거렸다. 지금은 그때 얘기가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쇠락했다.

1992년 광산이 문을 닫은 뒤 상동은 급속도로 쇠락했다. 다닥다닥 붙여 지어졌던 광부의 집들이 기우뚱 기울었고, 절반 이상이 비어 마을 전체가 유령도시처럼 느껴질 정도다. 낡고 쇠락해 미관을 해치는 주택들을 상당수 헐어냈다는 데도 그렇다. 쇠락한 폐광 마을은 시간이 딱 멈춰버린 공간인 듯하다. 마치 ‘시간여행’을 떠나온 듯 느껴진다는 얘기다.

대한중석이 있었던 마을은 구래리다. 31번 국도 영월 구간 곳곳에는 자장법사의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구래리라는 마을 이름도 자장법사의 전설에서 유래했다. 당나라에서 8년간의 고행을 마친 뒤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돌아온 자장법사가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할 곳을 찾다가 이곳 상동을 아홉 번이나 다녀갔다고 해서 마을 이름이 ‘구래(九來)’가 됐단다.

구래리 마을 깊은 곳에 대한중석 광산 입구의 꼴두바위(고두암)가 있다. 불쑥 솟아있는 거대하고 기괴한 바위다. 흙 한 줌 없어 보이는 기이한 바위벼랑에 소나무가 뿌리를 내렸다. 바위에는 아이를 못 낳는 며느리가 100일 기도를 하다가 한을 품고 죽었다는 전설도 있고, 송강 정철이 강원 감사로 부임했을 당시 ‘몇백 년 후 세상 사람들의 숭배를 받을 바위’라고 예언했다는 얘기도 있다. 예언의 결과가 중석 광산의 발견이란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꼴두바위 아래 태백산 산신각이 있다. 제각(祭閣)에 모신 태백산 산신은 물어볼 것도 없이 단종이다. 영월에서 단종은 자장법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주 등장한다. 억울한 죽음을 기리는 민심이다.

# 타고 남은 벽체가 전하는 이야기

구래리에는 뜻하지 않은 화재로 주목받아 유적지가 된 천주교 상동교회가 있다. 상동교회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황지성당이 관할하는 공소로 시작했다. 본당으로 승격된 1952년에 초대 주임 이영섭 신부는 아치형 지붕에 아연 강판을 씌운 ‘콘세트(막사)’ 모양의 성당을 완공했다. 성당은 어두운 광산촌에 신앙의 씨앗을 뿌리며 600명이 넘는 신자를 가진 본당으로 발전했지만 폐광 이후 신도가 줄면서 1993년 다시 공소로 격하됐다. 그렇게 상동성당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혔다.

쇠락한 광산마을의 다 쓰러져가던 상동공소에 세상의 관심이 쏟아지게 된 건 화재 때문이었다. 2021년 1월 1일. 천주의 성모마리아 대축일에 1층 사제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공소는 전소 됐고 종탑과 외부 벽체만 남았다. 제단이 무너지고 제대와 십자가까지 잿더미가 됐음에도,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선 벽체는 이곳을 찾은 이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누구는 검게 그을린 벽체에서 예수님의 몸을 보았고, 누구는 ‘하느님이 화재를 통해 소명을 말한다’고 했다.

공소 복원 작업이 이뤄진 건 순전히 잿더미 속에서 서 있던 벽체가 이끌어 낸 영감 때문이었다. 공소는 지난 8월에 복원됐다. 작은 공소는 기도와 신앙의 순례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복원된 공소는 지붕이 없다. 하늘을 지붕 삼고 산을 벽으로 삼아 기도하는 ‘지붕 없는 성전 기도의 벽’의 형태다. 외벽은 화재 당시 그을린 흔적을 그대로 남겼고, 전면부 외벽은 화재 전 모습으로 복원해서 불나기 전과 후의 역사를 성당 안에 모두 담았다.

사제관으로 쓰였던 1층에는 성당 건축부터 화재 직전까지의 성당 모습과 초대 주임 이영섭 신부의 유품, 화재 더미 속에서 수거한 성물을 전시해두었다.

믿음이 있다면 감격이 있을 것이고, 믿음이 없다 해도 불에 그을린 벽체 앞에 서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생계를 위해 광산의 어두운 굴속으로 들어가야 했던 이들과 빈번한 사고로 마음 졸이며 살았던 식구들의 기도가, 그리고 이 깊은 산중으로 들어와 그들과 희로애락을 같이 했던 성직자의 마음이 느껴져서다.

영월 상동의 농업공동체 ‘밭멍’이 가꾸는 밭.
영월 솔고개 소나무.

# 밭을 멍하니 보는 ‘밭멍스테이’

영월군 상동읍 내덕리. 31번 국도가 지나는 도로변에 ‘밭멍스테이’가 있다. 도로 아래 허름한 농가주택 2층을 꾸며 만든 숙소다. 숙소라고는 하지만, 더블 침대가 놓인 방이 딱 하나뿐이다.

‘밭멍’이란 밭을 멍하니 본다는 뜻이다. 모닥불을 지펴서 우두커니 바라보는 걸 ‘불멍’이라고 하고, 강이나 바다의 물결과 파도를 멍하니 바라보는 게 ‘물멍’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옥동천의 물소리를 듣고 창밖으로 초롱초롱 별이 뜨는 고요한 시골 숙소다. 비유하자면 밭멍스테이에서의 하룻밤은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포레스트’의 느낌과 비슷하다. 밭멍스테이의 시간은 한적하고 더없이 평화롭다.

밭멍은 숙소의 이름이면서 청년들이 만든 농업공동체의 명칭이기도 하다. 밭멍을 이끌고 있는 김지현·지영 자매에 따르면 밭멍스테이는 ‘시골복합문화공간’이다. 밭멍스테이는 이들 자매가 실현하는 지속가능한 농업, 그러니까 ‘퍼머컬처’를 기반으로 한 농업을 실현하는 과정을 경험하게 해준다. 퍼머컬처란 영속적이라는 의미의 ‘퍼머넌트(Permanent)’와 농업이란 뜻의 ‘애그리컬처(Agriculture)’를 결합한 단어. 농약과 비료, 퇴비의 끊임없는 투입과 힘든 노동을 멈추고 우아한 미감의 키친 가드닝과 함께 건강한 먹거리를 수확하자는 게 퍼머컬처 기반의 농업이다.

동생 지영 씨가 차근차근 설명해줬지만, 온통 잡풀이 무성한 밭 앞에서 이들의 농업방식을 이해하는 건 쉽지 않았다. 농업이라면서 수확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얘기에 좀처럼 공감할 수 없었다. 밭을 공간으로 해석한 뒤 공간 전체를 기획하면서 작물을 대비가 되는 색깔별로 심는 식의 농사는 생소했다. 유기농과 무농약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밭을 갈거나 김도 매지 않아 작물과 꽃과 잡초가 온통 뒤엉켜 자라는 밭에서는 당혹스럽기도 했다. “그게 장난이지, 무슨 농사야…하하하.” 이웃 밭에서 밭멍 위치를 물었을 때 손사래를 치던 늙은 농부의 반응이 이해가 됐다.

지난해는 그나마 토마토며 상추며 가지, 오이까지 거둬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심었는데, 올해는 일손부족으로 그마저도 손이 덜 가는 화초 위주로 심었다고 했다. 그래도 이곳에서 젊은이들이 농촌의 매력을 느끼고, 자연을 지키고 사는 올바른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면, 새로운 농업에 대한 기대를 품을 수 있다면 가치는 충분해 보였다. 무엇보다 밭멍을 하면서 보내는 하룻밤이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과연 ‘디자인’으로 지속 가능한 농업을 구현하고, 농촌을 구원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 국내 최장 국도는?

31번 국도가 두 번째로 긴 국도라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국도는 어딜까. 답은 ‘77번 국도’다. 남해와 서해의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77번 국도의 길이는 자그마치 1239.4㎞다. 31번 국도의 2배에 육박하니 시쳇말로 ‘넘사벽’이다. 서해나 남해에서 근사한 해안 드라이브 길을 달렸다면 십중팔구 그 길은 ‘77번 국도’다. 전남 영광의 백수해안도로도, 해남 땅끝마을에서 완도로 넘어가는 도로도, 전남 여수에서 섬을 징검다리처럼 딛고 고흥으로 건너가는 해안도로 모두 77번 국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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