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식민지배 정당화하는 ‘월간조선의 건국절 주장’
[왜냐면] 유민 | 광복회 대외협력국장
‘대한민국은 언제 건국되었나’라는 월간조선 편집장의 글은 건국 시점을 독자에게 묻는 형식이지만 실상은 ‘1948년 8월15일 건국은 상식’라고 종지부를 찍는다. 다른 건국절 주창자들과 마찬가지로 1948년 이전 임시정부는 존재 가치가 없고 대한민국은 1948년에야 건국됐다는 논지다. 일제 강점기의 대한민국을 인정하지 않으니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모양새요, 독립운동 역사 지우기가 아닐 수 없다.
또한‘나라’와 ‘정부’ 개념마저 혼동해 독자들을 어리둥절케 한다. 개념 혼동은 그렇다 치더라도 헌법 전문에 나온 임시정부 법통마저 “실체가 없다”며 외면하고 있다.
‘나라로서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논리는 정말 심각한 사안이다. 멀쩡한 국가를 폭력으로 빼앗겼는데 ‘(그 나라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생각 자체가 식민지적이 아닐 수 없다. 스스로 나라가 없었다고 하니 그렇다면 ‘일본 신민’을 자처하는 말이 아닌가!
서슬 퍼런 해방 이전에도 나라는 있었다. 나라는 있으되 주권을 강압적으로 빼앗긴 것이다. 대한제국은 존재했고 3.1운동 뒤 민주공화제를 채택한 민국이 있었다. 한반도라는 ‘영토’가 있었고 이 영토에는 2천만명 넘는 우리 ‘국민’이 존재했다. 몬테비데오 협약을 들이대도 영토와 국민이 존재했던 것이다.
1948년 8월15일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이다. 역사적인 자료 어디를 봐도 건국은 찾을 수 없다. 정부 수립 시 내각 지도자 누구도 ‘건국’을 운운하지 않았다. 당시 1948년 행사도 ‘정부 수립을 경축’했고, 이승만 정부가 발간한 우표도 ‘정부 수립 기념’이다. 건국절을 주장하면 역사 왜곡이요, 초대 지도자들의 뜻마저 왜곡하는 셈이다.
건국절 주창자들이 김일성처럼 우상화하고 싶은 사람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마저 ‘건국’을 꺼낸 적이 없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가치를 두고 그 수반으로서 충실했다. 오히려 그는 1948년 5월 제헌의회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임시정부에서 찾았다. “오늘 여기에서 열리는 국회는 국민대회의 계승이요, 이 국회에서 되는 정부는 기미년에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 임시정부의 계승이다.” 같은 해 7월 제헌절 행사에서도 이 대통령은 국회의장으로서 “1948년에 수립하는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재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건국’이라 하고 그를 건국 대통령으로 내세운다면 그것은 이 대통령을 욕보이는 격이다.
‘나라는 있었는데 일제가 우리의 주권을 빼앗았다’는 인식은 1948년 12월 제헌국회 당시 이인 법무부 장관도 마찬가지였다. 국적법을 심의하던 의원들이 그에게 물었다. “장관, 국적법이 통과되기 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들의 국적은 어디인가요?” 이 장관은 한 점 주저 없이 단호했다. 그는 “당연히 한국이다. 일본 강점기에 나라는 있었다. 정부가 없었을 뿐이다. 나라가 있는데 정부가 없는 경우는 많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승만부터 초대 내각 구성원 모두 “나라는 있었다. 단지 일제가 강점해서 주권 행사를 못 했을 뿐”이라며 나라의 존재를 분명히 했다.
편집장은 1941년 임시정부가 공표한 ‘건국강령’을 들어 임시정부가 강령에 나온 ‘제1 복국’ 단계로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건국강령은 주권을 되찾은 대한민국의 비전을 선포한 글이지 임시정부가 해야 할 일을 다룬 글이 아니었다. 1941년 건국강령을 공표하기에 앞서 1919년 임시정부는 임시헌장인 임시헌법을 정했다. 임시헌법이 오늘날 헌법의 모태가 됐다. 바로 여기서 민주공화국(1장)이 나왔고, 국회(10장)도 출현했다.
편집장은 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제적 승인을 받지 못했고 실효적으로 통제하지도 못했다고 비판한다. 이 또한 사실과 거리가 멀다. 임시정부는 조소앙 등 많은 임정 인사들의 노력으로 국제적 승인을 얻어냈다. 새로운 정부가 세워져 가던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폴란드·리투아니아·프랑스도 임시정부를 승인했다. 국내 정부 시스템과 연계한 기관을 두면서 실효적 지배도 했다.
‘카이로 선언’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약속한, 한국에 관한 한 세계사적인 터닝포인트(전환점)였다. 1943년 11월27일,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 처칠 영국 총리, 장제스 중화민국 총통이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 모였다. 100여 개가 넘는 나라가 식민지로 전락했던 당시, 연합국 수뇌들은 오직 한국만을 독립 보장한다고 선언했다. 왜 그랬을까?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일본이 폭력적으로 약탈했고, 독립운동 선열들은 가족, 재산, 목숨까지 내놓으며 줄기차게 독립운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건국절을 더 이상 떠올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1948년 건국절을 주장하면 일본의 식민 지배를 다시 한 번 정당화해주는 것이다. ‘신종 매국’이다. 1965년 한일 양국은 기본협약을 맺었다. 기본조약 제2조에는 ‘1948년 이전에 맺은 조약은 이미 무효’라는 조항이 있다. 지금 일본은 “한국은 1948년 건국했고 그 이전에 나라가 없었으므로 을사늑약과 강제 병탄은 1948년까지는 합법”이라고 한다. 일본의 불법 침탈을 또 정당화시켜주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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