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생태계 무너졌다]③업비트 눈치보는 업계…"상생 도모해야"

최용순 2023. 10.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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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업체·재단·협회 모두 '업비트 바라기'

"업비트가 오픈 API 접근을 막으면 어떡하죠? 국내 이용자가 다 몰려 있는 업비트와 연결이 안되면 할 게 없습니다."

이달 11일부터 업비트가 개정된 오픈 API 약관을 적용하면서 한 중소 가상자산업체는 업비트 접근이 차단될까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번 개정은 고객이 PC 도난 등으로 피해가 발생했을 때 거래소의 면책조항을 구체화한 것으로, 업비트의 시세 등 일반적인 정보를 확인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한마디로 기우(杞憂)였다. 

지난해 6월 국회에서 열린 '디지털자산산업 발전방향' 포럼에서 전문가들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한국블록체인기업진흥협회

업비트만 바라보는 구조

앞서 사례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만큼 블록체인·가상자산 업계는 사업기회를 찾기 위해 시장지배적 사업자 업비트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코인을 발행하는 프로젝트 재단들도 업비트만 바라보는 형국이다. 유통량 이슈로 최근 국정감사에서 뭇매를 맞은 수이코인(SUI)은 국내 원화 거래소에 모두 상장됐지만 업비트하고만 협의 상장을 한 정황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수이의 유통량 계획서를 공개한 곳은 업비트가 유일해 협의상장 가능성이 높다"며 "다른 거래소는 수이와 협의없이 독자적으로 거래를 지원하는 단독상장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업비트는 "거래지원 관련 코멘트가 어렵다"고 밝혔다.

재단들이 국내 거래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업비트하고만 카운터파트가 된다면 다른 거래소와 정보 불균형이 발생하고 투자자들의 혼란과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

국내 5대 가상자산거래소가 회원으로 있는 디지털자산거래소공동협의체(닥사·DAXA)도 업비트 위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닥사 회비는 일반회비와 특별회비로 나뉘는데 특별회비는 거래소의 매출과 비례한다. 곧 매출비중이 압도적으로 큰 업비트가 가장 많은 회비를 납부하는 구조다. 이러한 이유로 가장자산업계는 수이 유통량 문제 등 업비트와 관련한 이슈에 대해 닥사가 눈치를 본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이에 대해 닥사는 "1사 1의결권 구조로 그럴 수가 없다"고 해명했다.

시장 다양성은 어디로?

지금은 중소업체, 재단, 협회 등 모든 업계가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업비트만 바라보는 게 현실이다. 이용자 후생 감소, 지위 남용 등 표면화한 독과점 폐해는 없더라도 한 업체의 독주로 산업의 균형이 깨지면 가상자산 생태계 조성이 점점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대 교수는 "독과점이 발생한 상황에서는 모든 프로젝트의 정보가 업비트에 집중되고 마음만 먹으면 그 정보를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을 수 있다"며 "프로젝트가 한 거래소의 요구에 맞춰야하는 상황이 되면 시장 다양성이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1위가 다른 업체들과 협업구조를 만들지 않고 모든 사업을 수직 계열화 땐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국내 대기업 대부분은 1,2차 협력업체와 협업을 통해 산업의 파이와 경쟁력을 키우고 부가가치를 확대한다. 하지만 현재 가상자산업계는 상생체계가 없거나 일부 편가르기식 협업체계에 치중돼 있다. 업비트만 해도 지금까지 트래블룰 솔루션, 공시 등 주요 시스템을 계열사를 통해 자체 구축했다.

"협업으로 지속가능한 생태계 복원해야"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가상자산의 제도화 움직임에 맞춰 국내에서도 거래소뿐 아니라 커스터디, 공시, 트래블룰, 과세 등 여러 부문에서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등장해 글로벌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업체 간 상생 구조를 만들어 산업으로 면모를 갖춰야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채상미 이화여대 교수는 "정부가 디지털자산에 대해 제도적 입법을 하고 지속적으로 활성화될 것으로 예측을 한다면 규제를 적용하면서도 거래소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야하는데, 한 두 곳만 남으면 플랫폼처럼 독과점이 된다"며 "독과점이 됐을 때 시장 성장이 멈추고 기술 발전도 어려워 건전한 시장으로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최화인 초이스뮤온오프 대표는 "국내 거래소가 기술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나 육성에 전혀 관심이 없고 수수료 수익과 투자 측면에서만 관심을 갖는 문제는 개선돼야 한다"며 "보안이나 편의성 면에서 다른 대안이 있더라도 독점 거래소가 제시하는 안이 시장의 표준안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업계에 오래 몸담은 한 관계자는 "대형업체의 배타적 생존 속 한계기업으로 전락한 중소업체가 혼재한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이미 무너지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거래소와 관련업체들의 소통과 협업을 통해 함께 성장하며 경쟁력을 갖춘 산업으로 발전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용순 (cys@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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