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테크]삼성-애플 1조 특허 분쟁, 이 사람 때문에 벌어졌다

최인준 기자 2023. 10. 26.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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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특허의 아버지’ 美 프로그래머 마틴 괴츠
처음으로 소프트웨어로 특허를 받은 마틴 괴츠./마틴 괴츠 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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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삼성전자와 애플이 스마트폰 기술을 두고 세기의 특허 전쟁을 벌였습니다. 미국 법원 1차 판결에서 삼성은 1조 원이 넘는 거액의 손해배상액을 애플에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후 일부 특허의 무효 등으로 배상액이 줄었지만, 스마트폰에 적용되는 소프트웨어 기술의 파급력을 새삼 깨닫게 해준 사건이었습니다. 애플이 삼성을 상대로 특허 침해를 주장한 것은 디자인권 외에도 ‘바운스 백’(화면 스크롤 시 경계 부분에서 반대로 튕기는 기능), ‘핀치 투 줌’(두 손가락을 벌려 화면을 확대하는 기능)과 같은 소프트웨어 특허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미국을 비롯해 주요 선진국에서는 최근 소프트웨어 저작권을 침해한 기업,개인에 대해 가차 없는 철퇴를 내립니다. 1990년대까지 만해도 ‘프로그램이 어떻게 물건이냐’는 인식으로 소프트웨어 특허가 인정받지 못한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낄만한 차이입니다. 소프트웨어를 하드웨어 제품과 동일하게 특허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프로그램 개발자가 있습니다. ‘서드파티 소프트웨어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틴 괴츠(Martin Goetz)입니다. 미국 출신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그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소프트웨어로 특허를 받아 소프트웨어가 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산업으로 발전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인물입니다.

괴츠는 안타깝게도 지난 10일 미국 메사추세츠주 브라이턴의 자택에서 향년 93세로 별세했습니다. 유족에 따르면 그의 사인은 백혈병이라고 합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그의 일대기를 조명하며 “전세계 컴퓨터 산업의 언성 이노베이터(Unsung Innovator·숨은 혁신가)가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습니다.

◇‘끼워넣는 제품’에서 로열티 받는 기술로

괴츠는 20대이던 1950년대 중반 프로그래머인 지인들과 의기투합해 소프트웨어 회사 ‘어플라이드 데이터 리서치’를 세웠습니다. 초반에는 고객사를 위한 맞춤형 프로그래밍 컨설팅이 주 업무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여러 기업에서 모두 호환돼 널리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1964년 미국에서 열린 소프트웨어 지적 재산권 문제에 대한 컨퍼런스에 참석한 것이 괴츠에게 사업 전환의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많은 기업들은 지금의 서버와 같은 메인프레임(데이터 처리용 대형 컴퓨터)을 활용해 회사 데이터를 분류, 저장했습니다. 문제는 데이터를 읽고, 저장하는 매체가 아날로그식 자기(磁氣) 테이프였다는 점입니다. 지금의 디지털 방식과 비교하면 데이터를 정렬하는 데 효율성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괴츠는 보다 효율적인 데이터 정렬 절차를 통해 읽기, 쓰기 작업의 횟수를 줄이고 테이프가 되감기는 대기 시간을 줄여 프로그램 실행 시간을 크게 절약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데이터 정렬 알고리즘을 이듬해 4월 미 특허청에 특허 출원했고, 3년 뒤인 1968년 4월 23 일 미국 특허 제3,380,029호로 허가 받았습니다. 당시 컴퓨터 전문매체 ‘컴퓨터월드’에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첫 번째 특허가 발행되었으며 완전한 의미는 알려지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기사로 보도됐습니다. 소프트웨어가 다른 기술처럼 특허로 인정받는 것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약했던 것입니다.

마틴 괴츠가 받은 소프트웨어 특허 내용. 괴츠는 IBM이 무단으로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3년의 공방 끝에 처음으로 소프트웨어에 대한 특허권을 인정받았다/미 특허청

◇'특허 괴물’ IBM에 승리

괴츠는 이 특허를 통해 컴퓨터를 구입할 때 함께 제공되는 ‘번들(bundle)’ 제품에 불과했던 소프트웨어를 법의 보호 대상으로 격상시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물론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시 자신이 개발한 소프트웨어가 특허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인지를 두고 미국 특허청과 3년간 공방을 벌였습니다. 오랜 싸움 끝에 특허 취득에 성공한 이후에는 업계에서 그와 소프트웨어의 위상은 달라졌습니다. 특허 등록을 한 이듬해인 1969년 4월 괴츠는 IBM이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하드웨어에 결합한 상품을 내놓자 특허를 침해했다며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1970년 8월 법원으로부터 IBM이 가격 분리에 동의하도록 하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당시 가장 많은 컴퓨터 기술을 보유한 ‘특허 괴물’을 상대로 승소한 것입니다.

마틴 괴츠가 소프트웨어로 특허를 받은 1968년 미 컴퓨터 전문매체 '컴퓨터월드'에 실린 기사. '소프트웨어로 첫 특허이지만 아무도 그 의미를 모른다'고 보도했다./컴퓨터월드

컴퓨터의 한 부속품에 불과했던 소프트웨어는 이후 거대한 글로벌 산업으로 발전했습니다. 노트북PC보다 더 대중화된 IT기기로 자리잡은 스마트폰도 결국 모바일 앱이라는 소프트웨어가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괴츠의 소프트웨어 특허가 현재 스마트폰 산업의 밑거름이 된 셈입니다. 미 캘리포니아법대의 로빈 펠드만 교수는 “우리가 오늘날 풍족한 스마트폰 앱 스토어와 소프트웨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괴츠의 비전과 과학적 혁신, 끈질긴 집념의 덕택”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HBO맥스, 파라마운트플러스 등 주요 글로벌 미디어기업들이 운영하는 OTT 앱이 스마트폰 화면에 떠있는 모습. /어도비 스톡

괴츠는 1985년 어플라이드데어터리서치를 미국 통신회사인 아메리텍에 2억1500만 달러(약 2900억원)로 매각하고 회사의 수석 부사장 겸 최고기술책임자(CTO)가 돼 3년 동안 재직했습니다. 1988년에는 소프트웨어 기업 실로지의 최고경영자(CEO)로 자리를 옮겨고, 이후 투자자와 여러 소프트웨어 회사의 컨설턴트로 활동해왔습니다. 2007년 메인프레임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 헌액되면서 ‘서드파티 소프트웨어의 아버지’로 칭송받게 됩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생전에 괴츠는 ‘컴퓨터가 해야 할 일을 지시하는 프로그램도 컴퓨터 기기 자체만큼이나 특허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아무도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던 시대에 소프트웨어의 발전 가능성을 알아본 혜안이 돋보입니다.

처음으로 소프트웨어로 특허를 받은 마틴 괴츠/탐스 하드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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