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은 지켜야 한다, 제우스와 세멜레[박희숙의 명화로 보는 신화](41)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인이나 친구와 헤어질 때나 통화가 끝났을 때, 마지막 말이 정해져 있다. “다음에 밥 한번 먹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밥 한번 먹자는 말은 지켜야 할 약속이 아니라 그냥 인사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처럼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되는 약속도 있지만, 대부분의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 신뢰 때문이다.
그리스신화에서 제우스신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랑했던 여인의 죽음을 보아야만 했다. 제우스는 올림포스 신전의 지도자로서 공정하게 일을 처리했다. 티탄족과 싸움에서 승리를 이끌게 도와주었던 신들에게 상을, 자신과 끝까지 싸운 티탄족에는 반대로 벌을 주었다.
제우스가 승리를 이끌 수 있도록 도운 스틱스 여신도 마찬가지였다. 제우스는 스틱스 여신에 대고 맹세하면 누구라도 절대적으로 그 약속을 어기지 못하는 명예를 스틱스 여신에게 선사했다. 그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신도 마찬가지였다. 제우스 역시 그 약속을 지켰다.
제우스는 테바이의 왕 카드모스의 딸인 세멜레의 아름다움에 반했다.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한 제우스는 세멜레를 유혹해 사랑하고, 마침내 세멜레가 임신한다. 이 사실을 안 헤라는 질투에 눈에 멀어 세멜레를 벌주기로 한다. 헤라는 세멜레의 어릴 적 유모 베로에로 변신해 그를 찾아간다.
헤라는 세멜레에게 제우스의 정체를 아는 방법이 있다고 꼬드긴다. “제우스에게 ‘하늘에서 입는 옷을 입고 지상으로 내려와 달라’고 해보세요” 하고 부추긴다.
헤라가 돌아가자 세멜레는 제우스가 의심스러웠다. 헤라가 충고한 대로 제우스에게 부탁한다. 제우스는 세멜레와 사랑을 나누면서 어떤 부탁이든 들어주기로 약속을 한 터였다.
제우스는 헤라의 의도를 알고 있었지만 세멜레에게 한 약속을 지켜야 했으므로 신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세멜레는 제우스의 번개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 재로 변하고 만다. 그러자 제우스는 황급히 세멜레의 자궁에 있던 아이를 꺼내 자신의 허벅지에 집어넣어 생명을 구한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가 바쿠스다.
제우스가 세멜레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 귀스타브 모로(1826~1898)의 ‘제우스와 세멜레’다.
화면 중앙 옥좌에 앉아 있는 제우스의 모습은 하늘의 왕임을 나타낸다. 하단에 엎드린 인간들은 제우스가 인간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을 암시한다. 제우스 머리의 붉은 광채는 그가 신이라는 것을 나타내며, 독수리 날개는 옥좌에 앉아 있는 남자가 제우스임을 뜻한다.
모로의 이 작품에서 세멜레의 흰색 몸은 제우스의 번개에 맞아 죽는다는 것을 드러내며, 세멜레가 허벅지에 앉아 있는 것은 그의 아이를 꺼내 제우스가 허벅지에서 키운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약속은 크든 작든 파기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키기 위해 하는 것이다. 약속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박희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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