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근 칼럼] 극단 시대의 비극

김재근 선임기자 2023. 10. 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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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1월 4일 텔아비브 시청 앞 광장에서 3발의 총성이 울렸다.

방금 전까지 10만명의 시민들과 함께 "평화의 노래를 부르며 그날을 향해 나아가자"고 노래를 불렀던 이츠하크 라빈 총리였다.

이스라엘의 전쟁영웅이자 평화주의자가 극우 유대인 이갈 아미르의 총격으로 사망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스라엘은 라빈 총리가 피살됐고, 그 뒤로 극우파가 집권하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요르단강 서안 및 가자지구 통치와 동예루살렘 영유권을 보장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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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세력 주도, 이-하마스 전쟁
갈등을 먹고 사는 '적대적 공생'
라빈과 살라딘 추구한 가치 실종
김재근 선임기자

1995년 11월 4일 텔아비브 시청 앞 광장에서 3발의 총성이 울렸다. 총을 맞은 73세의 노정치인은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숨졌다. 방금 전까지 10만명의 시민들과 함께 "평화의 노래를 부르며 그날을 향해 나아가자"고 노래를 불렀던 이츠하크 라빈 총리였다. 이스라엘의 전쟁영웅이자 평화주의자가 극우 유대인 이갈 아미르의 총격으로 사망한 것이다.

라빈의 피살은 요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읽어낼 수 있는 중요한 코드이다.

잘 알다시피 라빈은 이스라엘 건국과 전쟁의 영웅이다. 이스라엘 독립전쟁에 참전하여 정전협정 대표의 한 명으로 참여했다. 1967년 6일전쟁 때는 이집트 시나이반도와 시리아의 골란고원을 빼앗고, 서안지구에서 요르단을 밀어내고 동예루살렘을 차지했다.

전쟁영웅 라빈은 정치를 하면서 평화주의자로 변신했다. 처음 총리가 됐을 때는 자신이 점령한 시나이반도에서 이스라엘군을 철수했고, 두 번째 총리 때는 팔레스타인과 역사적인 '오슬로협정'을 맺었다.

오슬로협정은 이-팔이 서로 상대를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공존의 가능성을 연 역사적 사건이었다. 양측은 1993년 9월 팔레스타인의 자치, 예루살렘의 관리와 정착촌 문제 등을 담은 문서에 서명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수십년 동안 계속된 이-팔 분쟁 해결의 주춧돌을 놓은 것이다. 이 공로로 그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아라파트 의장, 이스라엘 외무장관 시몬 페레스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오슬로협정은 지켜지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스라엘은 라빈 총리가 피살됐고, 그 뒤로 극우파가 집권하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요르단강 서안 및 가자지구 통치와 동예루살렘 영유권을 보장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도 역시 하마스같은 세력이 등장하여, 대화와 타협을 배격하고 자살폭탄테러 등 반인륜적인 행위를 저질렀다.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서로 공격과 보복을 반복함으로써 각자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적대적 공생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지난 9일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안갯속이다. 양쪽 사망자가 6000명, 부상자는 2만명을 넘어섰다. 지상전이 벌어지기도 전에 과거 1-3차 중동전쟁 때보다 훨씬 많은 민간인이 죽고 다쳤다.

이번 전쟁은 양쪽의 극단 세력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는 대화나 타협을 배신이라고 보는 극우파 리쿠드당의 당수이다. 그가 연립정부의 안보장관으로 임명한 이타마르 벤 그비르는 '유대인의 힘' 소속으로 너무 극단적이어서 군 면제까지 받은 인물이다. 벤 그비르는 동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인 알아크사 모스크를 수 차례 기습 방문했고, 하마스는 이러한 행위에 격분하여 전쟁을 일으키며 작전명을 '알아크사의 홍수'라고 내걸었다.

작금 이-팔을 비롯 중동과 미국, 유럽, 대한민국 등 지구촌 곳곳에서 극단주의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극단은 중도나 온건에 비해 훨씬 선명하고, 모든 문제를 금방 시원하게 해결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는 독재와 독선, 갈등과 대립, 공멸이라는 이라는 비극의 씨가 도사리고 있다. 이에 비해 중도와 온건은 그 열매가 맺기까지 오랜 세월 자제, 관용이라는 거름을 뿌리고 무한히 노력하고 인내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전쟁영웅 라빈이 '평화의 전사'가 되겠다고 한 게 기억난다. 대화와 타협, 공존이 총칼을 들고 피 흘리는 전쟁보다 훨씬 어렵고 힘든 것임을 알았기에 평화의 '사도'가 아닌 '전사(戰士)'라고 자처한 것이다.

1187년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슬람의 왕 살라딘은 십자군 전쟁에 참전한 기독교도의 안전한 귀국과 예루살렘 순례를 보장하여 평화를 가져오게 했다. 라빈과 살라딘이 추구했던 관용과 타협, 평화와 공존의 정신이 절실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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