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위하준, 덜어내니 보이는 '나다운 것'
"젊은 배우들 중심 누아르에 끌려 도전"
"불같은 카리스마 보다 냉철함에 집중"
"투톱 지창욱 에너지 가득…강박 덜어"
[서울=뉴시스]추승현 기자 = 디즈니+ 오리지널 '최악의 악'에서 배우 위하준(32)은 굳이 힘주지 않는다. 누아르 장르, 조직의 보스라는 무게감에 짓눌리는 모습도 아니다. 거친 남자들의 세계에서는 진한 눈빛으로, 첫사랑 앞에서는 순정 가득한 눈빛을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묵직해진다. 이것저것 살을 붙이기 보다 캐릭터 알맹이에 집중한 결과다.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1990년대 강남 연합 조직의 보스가 되면서 한·중·일 마약 거래의 중심이 된 기철의 흥망성쇠를 모두 표현해야 했다.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잠입 수사하는 경찰 준모(지창욱)와 긴장감도 계속 가져가야 했다. 현장에선 막내였지만 지창욱과 투톱 주연으로 작품을 이끌어야 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중압감을 줘야 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렵더라고요. 기철이 복잡 미묘한 감정을 갖고 있어서 더 쉽지 않았죠."
조폭과 경찰, 그리고 언더커버. 기시감이 드는 소재인 건 맞다. 위하준도 처음에는 뻔한 이야기처럼 보일까 봐 고민했다. 하지만 감정에 집중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어릴 때부터 누아르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요. 그런데 젊은 배우들이 이끈 누아르 작품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만의 다른 색깔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도전했어요. 조금 더 충동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들끼리 살인이나 악행을 저지르는 걸 애들 장난처럼 하는데 엄청 나쁜 일이잖아요. 최악의 상황으로 가면서 그 인물들이 놓인 감정의 변화가 보이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고요. 씁쓸한 느낌이 새로웠어요."
기철은 악인이다. 조직원들에게만 존경받는 보스일 뿐, 마약 카르텔의 중심이고 사람 목숨 앞에서도 무자비하다. 하지만 그에게도 일찍 가장이 되면서 닥치는 대로 돈을 벌어야 했던 사정, 그 과정에서 죽은 절친 태호(정재광)에 대한 죄책감 등의 서사가 붙는다. "갈수록 불쌍한 부분이 있어요. 상처를 극복하고자 한 게 왜 이거였을까 안타까웠어요. 하지만 악행을 묵인하고 지시한다는 것 자체가 누구보다도 악인이잖아요. 정당화되는 건 잘못된 거죠. 마약에 대한 경각심도 필요해요. 처벌이 너무 약해요. 전 기철을 인간으로서 이해하고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공감하려고 한 게 있지만, 그가 벌인 일에 대한 건 심판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시청자들도 기철을 악인으로 봤으면 해요."
"연기로는 사람 정기철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어요. 보스로서의 카리스마를 보여주기 위해서 거칠고 불같이 하기보다는 냉철하고 냉혈한 사람인 것처럼 연기했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게끔 하는 게 무게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인간적인 모습이 보일 때는 첫사랑 의정(임세미)이 생각하는 순수하고 솔직한 사람으로 연기하려고 했고요."
여러 감정이 오가는 기철을 연기하기 위해 외적인 설정도 철저했다.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지만 보스의 중압감을 위해 5kg를 증량했다가, 피폐해지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다시 9kg를 감량했다. 피부 톤도 훨씬 어둡게 표현하고 주근깨 분장도 했다. 날카로운 인상을 위해 눈썹 모양까지 신경 썼다.
액션 연기는 비교적 수월했다. 대신 액션에 처절한 감정이 폭발하는 것을 녹여내기 위해 힘썼다. "저는 시골에서 자랐어요. 전라남도 완도라 흔한 태권도 도장도 없었어요. 산에서 뛰고 타이어 밟고 공중에서 돌면서 놀았죠. 친구들과 때리는 척하는 장난 같은 게 액션 연기였더라고요. 이렇게까지 도움 될 줄 몰랐어요. 수련하면서 더 늘었고요."
위하준에게 자신감을 더 불어넣어 준 건 현장 곳곳에 있는 사람들이다. 작품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어둡지만 현장 분위기는 밝은 에너지로 가득 찼다. 누아르의 진수를 보여준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2) '신세계'(2013) 등 조감독을 지낸 한동욱 감독이 중심에 있었다. '신세계' 제작진이었던 스태프들도 한몫했다.
상대역인 지창욱은 선배로서 형으로서 큰 도움을 줬다. 위하준은 지장욱에 대해 "기가 막혔다"고 감탄했다. "형이 굉장히 긍정적이에요. 무엇보다 액션을 싫어하는데도 늘 항상 웃고 장난쳐요. 저를 귀여워해주는 형은 처음이었어요. 제가 현장에서 늘 진지하고 생각에 빠져있고 그런 편이었는데 형이 현장에서 사람들에게 주는 에너지를 보고 바뀌었어요. 형은 '뭐 별거 있어? 그냥 해. 할 수 있어. 하면 되지'라고 해요. 그 안에서 연기 열정을 나눴고, 사람으로서 마인드를 배웠어요. 이젠 제가 친구들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겁먹지 말라고 해요."
위하준은 '최악의 악'을 두고 "가장 나답게 임한 작품"이라고 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2021) 이후 탄력을 받아 tvN 드라마 '배드 앤 크레이지'(2021) '작은 아씨들'(2022) 등 히트작을 남겼지만 스스로 채찍질만 했다고 털어놨다. "보물 같은 시간이었어요. 항상 촬영하면 압박감부터 들고 잘해야겠다는 강박과 스트레스가 컸거든요. 좋은 사람들 옆에서 영향을 받다 보니까 내려놓는 방법을 알았어요. 앞으로 배우로서 활동할 수 있는 큰 좋은 영향과 에너지를 준 작품이라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다양한 색깔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는 차기작으로 멜로드라마를 선택했다.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로 인연을 맺은 안판석 감독의 신작 '졸업'에서 배우 정려원과 로맨스 연기를 펼친다. '최악의 악'에서 임세미와의 키스신이 데뷔 후 처음일 정도로 멜로물이 적었다. "지금 제대로 된 사랑 이야기를 찍고 있어요. 팬들도 너무 원했거든요. 제대로 된 멜로를 한 번 할 때가 됐다 싶었는데 재밌어요. 그동안은 캐릭터가 정제돼있어서 표현하는 데 있어서 제한 두는 게 많았는데, 이번엔 현실 멜로여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하면서 일상 연기를 해요."
"멜로를 하면 멜로 장인이 되고, 악역을 하면 악랄하게 하고 싶어요. 액션도 정말 잘하는 배우였으면 좋겠고요. 일단 인간적인 배우가 되고 싶어요. '실제로 보면 따뜻한 에너지가 있구나'라고 할 수 있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chuchu@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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