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희일비 않는 로봇…‘믿음’으로 ‘레거시’ 바꿔나갈 것”

임지선 2023. 10. 26.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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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파워피플][인공지능 파워피플] ④배순민 KT AI2XL연구소장
[인공지능 파워피플]④ 이름: 배순민 소속: 케이티(KT) AI2XL연구소장(상무), 대통령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에이아이-데이터 분과위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데이터분쟁조정위원, 산업통상자원부 산업디지털전환위원, 에이아이(AI)미래포럼 공동의장,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겸직교수 나이: 1980년생(42살) 학력: 경기과학고, 카이스트 컴퓨터과학 전공,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전기전자컴퓨터공학 석·박사
어떤 이에게 인공지능은 혹독한 겨울을 이기고 기어이 핀 한송이 꽃이겠으나 누군가에게는 벼락처럼 떨어진 이름이다. 2022년 11월, 누구나 인공지능의 답을 들을 수 있는 ‘챗지피티(ChatGPT)’가 출시된 뒤 세상은 격변했다. 국내 빅테크 기업들이 각자의 인공지능 기술 최대치를 공개하기로 한 2023년 하반기, 한겨레는 ‘인공지능 파워피플’ 인터뷰를 시작한다. 가장 주목할말한 인공지능 전문가들을 만나고 그들이 다음 인물을 지목하는 방식으로 이어달리기(릴레이) 할 예정이다. ①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 이노베이션센터장 ② 오순영 KB금융지주 금융AI센터장 ③ 최재식 카이스트 김재철AI대학원 교수 ④ 배순민 KT AI2XL연구소장

그가 ‘로봇’이라 불린 지는 오래됐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박사를 마치고 2010년 삼성테크윈 로봇사업부에 합류한 직후부터 ‘배순민 로봇설’이 있었다”고, 배순민(42) 케이티(KT) 에이아이투엑셀(AI2XL)연구소장은 웃지 않고 말했다. 크게 상심하지도 않고, 크게 기뻐하지도 않아서다. 어떤 일이든 계획을 세울 때 “최소 70%는 실패할 거라 생각”하다 보니 일희일비 하지 않게 돼 ‘로봇설’이 나왔다고 했다.

통신사들도 ‘인공지능 기업’으로 불러달라고 하는 시대다. 2021년 국내 대표 통신사 케이티(KT)의 최연소 임원으로 합류한 그는, 이달 말 자체 개발 초거대 인공지능 ‘믿음’ 발표에 나선다. 최근 무대에 설 일이 많아진 ‘인공지능 리더’들이 서로 ‘로봇’이라 놀리곤 하는데, 배 소장은 요즘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에이아이(AI)이노베이션센터장, 오순영 케이비(KB)금융지주 금융에이아이(AI)센터장과 함께 ‘로봇 3남매’로 불린다고 한다.

대학(카이스트) 시절 수업 듣는 것을 좋아해, 졸업에 필요한 130학점을 채우고도 계속 수업을 들어 160학점이나 들었다. 영어·일본어·중국어·스페인어·프랑스어·독일어를 구사하고, 축구·농구·테니스·스케이트·탁구를 즐긴다. 별명은 로봇이지만, 사실 엠비티아이(MBTI·성격유형)는 ‘엔프피(ENFP·활동가형)’라 케이티 이직 초기 화장실에서 본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문구에서 받은 감동을 기억한다.

10년째 페이스북 프로필에 ‘인공지능 기술을 의미있는 서비스로 전환하고자 한다(aim to transform AI technology into meaningful services)’는 말을 적어놓은 사람. ‘인공지능 파워피플’의 앞선 초대손님이었던 최재식 카이스트 김재철에이아이(AI)대학원 교수와 하정우 센터장이 연이어 추천한 배순민 소장을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케이티융합기술원에서 만났다.

배순민 소장이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케이티융합기술원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한겨레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케이티 제공

―학력과 경력이 화려하다. 실패를 모를 것 같다.

“그렇지 않다. 사실 난 어떤 과제든 계획을 세울 때 실패를 아예 감안하고 세운다. 그러니까 성공할 거라고 예상하지 않는다. ‘막연한 긍정’과가 아니다. 나는 최소 70%는 실패할 거라고 생각한다. 30%의 성공이 마지노선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보니 중요하지 않은 것은 흘려보내고, 중요한 일에만 집중하는 쪽으로 살아왔다.”

―‘배순민 로봇설’이 있다.

“제가 감정 기복이 없다. 엄청 좋아할 일인데 반응이 이게 다냐, 이런 순간이 많다. 일희일비하지 않는 성격인데, 중학생 딸과 초등학생 아들까지 나와 비슷하다. 주변에서 진짜 괜찮으시냐 물을 정도로 심각한 일이 있어도 제가 반응이 없으니까,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박사를 마치고 2010년 삼성테크윈 로봇사업부에 합류한 직후부터 ‘배순민 로봇설’이 있었다. 요즘에는 인공지능 업계 동료로 친하게 지내는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에이아이(AI)이노베이션센터장, 오순영 케이비(KB)금융지주 금융에이아이(AI)센터장과 함께 ‘로봇 3남매’로 불린다. 서로 발표하는 모습이 로봇 같다고 놀리곤 한다.”

―어떤 학생이었나?

“수업 듣는 걸 너무 좋아했다. 카이스트 학부 시절, 졸업 요건이 130학점인데 160학점을 듣고 졸업했다. 조기졸업 하기 싫고 수업을 더 듣고 싶어서 4학년 때까지 부전공 신청을 해가며 3개 전공을 했다. 전산, 산업경영, 응용수학이다. 수업을 많이 듣다보니 학점 따기가 힘드었는데, 신기하게도 중간고사를 망치면 기말고사를 잘 봤고, 프로젝트가 망했을 땐 시험을 잘 봤다. 생각해보면 내가 모든 걸 잘한 적은 없는데, 다행히 학점이 잘 나왔다.”

―가장 인상 깊게 들은 수업은?

“한 수업을 듣고 박사과정까지 하겠다고 결정했다. 컴퓨터 그래픽스 수업이었다. 내가 원래 어릴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다. 하얀 도화지 위에 투명한 물을 흐르는 것처럼 그려야 하는 것이 특이하고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도화지는 하얗고, 2차원(2D)이고, 정적인데, 거기에 투명한 물이 3차원(3D)으로 흘러야 하는 거다. 당시 컴퓨터 그래픽스 수업은 전공 필수가 아니었는데, 너무 재밌어서 들었다. 항상 궁금했던 문제에 대해 배우며 이 공부를 하러 유학을 가겠다고 결심했다.”

―예체능 좋아했나?

“수학·과학보다 예체능을 더 잘하던 아이였다. 미술 외에도 체육을 좋아해서 꾸준히 팀 스포츠를 했다. 중학교 때는 농구를 좋아해서 꿈이 ‘덩크슛’이었고, 고등학교 때는 테니스 동아리 활동을 했다. 대학원(MIT) 때는 축구 동아리와 아이스댄스 공연을 하는 스케이팅 동아리에 들어갔다. 첫 회사였던 삼성 시절에는 인공지능 분야 팀원들이 모두 운동을 잘해, 같이 족구·탁구·풋살을 하며 지냈다. 운동하며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평소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스포츠 덕분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골을 넣으면 너무 좋지만, 다른 사람이 잘했을 때도 박수 칠 줄 알아야 한다. 지는 법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

―페이스북 프로필에 ‘인공지능 기술을 의미있는 서비스로 전환하고자 한다(aim to transform AI technology into meaningful services)’고 써져 있더라.

“그렇게 써놓은 지 10년이 지났다. 기술이 의미있는 서비스가 되는 것을 보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 공상과학 그림 그리기 대회에 나가 상을 많이 받았다. 당시 과학이 세상 최고 학문이라는 환상이 있었다. 자동차가 하늘을 날고, 해저 도시가 있고, 자기부양을 하는 동그란 차가 집 사이 연결 통로를 날아다니고…. 머리 속 생각이 이동하고 외국어를 몰라도 대화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 생각했다.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 많다.”

―외국어 공부도 좋아한다 들었다.

“어릴 적 꿈이 외교관이었을 정도로 여행과 외국어 공부를 좋아했다. 현재 인공지능 업계에서 거대언어모델(LLM·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생성하도록 훈련된 인공지능)이 굉장히 유행인데, 나 역시 언어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어 외에 영어,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좋아한다. 고등학교(경기과학고) 시절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갔고 대학 시절에는 캐나다, 대학원 시절에는 프랑스로 교환 학생을 갔다. 멕시코 등 국외로 단기 선교도 많이 다녔다.”

―컴퓨터를 전공했지만 미술·체육·언어에 대해서도 남다른 흥미를 갖고 있는 게 인공지능 같다.

“‘커넥팅 더 닷즈’(connecting the dots·경험을 연결하라)라는 말이 있다. 심지어 자신의 실패나 실수, 잘못된 선택들조차 의미가 있다. 연결을 어떻게 시키느냐에 따라 다른 그림이 된다.”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4학년 때 유학 준비를 안하다가 별도의 시험 성적이 없어도 지원할 수 있는 학교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라고 하기에 자연어처리 연구소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떨어진 다음 응용수학을 부전공하며 다시 제대로 준비해서 컴퓨터 그래픽스랩으로 지원해 합격했다. 석사와 박사 과정을 밟았다.”

―한국에 돌아온 뒤 삼성·네이버를 거쳐 케이티에 합류했다.

“제조업(삼성테크윈), 정보기술(IT) 기업(네이버)을 거쳐 서비스 기업(KT)에 왔다. 원래는 이직을 안하는 걸로 유명했다. 2010년 삼성테크윈에 입사해 이후 한화테크윈까지 8년 가까이 다녔다. 기술 업계에서 7~8년이면 꽤 길기에 저를 ‘망부석’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2017년 네이버의 클로바 에이아이(AI)리더로 일하다 2021년 케이티(KT)로 왔다.

삼성테크윈 로봇사업부 시절에는 현실적인 열매를 맺기보다는 미래지향적인 일을 한다는 점에서 답답함이 조금 있었다. 2016년 ‘알파고’가 나오고, 2017년 음성인식 기술(보이스 인터페이스) 사용이 늘었는데, 어느 날 택시 기사님이 내비게이션에 음성으로 주소를 말하는 것을 보며 저 분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네이버에서는 어떻게 하면 인공지능이 단일 기술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시스템적으로 받아들여져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갈증이 있었다. 케이티가 스마트 시티(첨단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도시의 모든 인프라를 연결한 도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매우 솔깃했다.”

지난해 11월 케이티가 연 기자간담회에서 배순민 소장이 초거대 인공지능 ‘믿음’의 개발 상황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케이티 제공

―이직해보니 어떤가?

“처음 케이티에 왔을 때, 권위적일 것이다, 느릴 것이다, 기술 중심이 아닐 것이다 등의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모두 틀렸다. 케이티는 풀스택(Full-Stack·앞단부터 뒷단까지 모두 개발 가능한 능력을 지칭하는 말)을 강조한다. 오픈소스 인공지능 모델을 써서 파인 튜닝(데이터에 맞춰 성능을 미세 조정하는 것)하면 빠른 효과를 낼 수 있지만, 그것이 과연 지속가능할까? 케이티는 이런 면을 보고 앞으로 인터넷·전기처럼 필수 요소가 될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있다.”

―에이아이투엑셀(AI2XL)연구소라는 이름이 특이하다.

“케이티에 합류하며 함께 이름을 지었다. 모두를 위한 인공지능이라는 뜻도 있고, 크다(엑스라지)는 뜻도 있다. 인공지능 연구조직에만 200명이 넘는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대학원들이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어 인력 상황도 좋은 편이다.”

―인공지능 분야에서 케이티의 강점은 뭔가?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답시고 도시의 모든 것을 새로 바꿀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기존 ‘레거시(과거의 유산)’에 인공지능 기술을 통합(integration)해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케이티는 사회 인프라부터 제도까지 구조를 바꾸는 데도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레거시와의 통합도 가장 잘 할 수 있는 기업이다. 케이티가 호텔 등 기존 건물에 로봇 기술을 적용하는 시도를 해왔는데, 그렇게 레거시와의 통합이 이뤄져야 한다.

인공지능이 더욱 더 일상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기간망 수준으로 깔려야 하는데, 케이티는 경험과 노하우, 기술이 있다. 오는 31일 발표할 초거대 인공지능 ‘믿음’이 그 시작이다. 딥러닝(컴퓨터가 스스로 외부 데이터를 조합·분석해 학습하는 기술) 창시자 제프리 힌튼 교수가 설립한 캐나다 벡터 연구소와도 기술 고도화, 비투비(B2B·기업 대 기업) 사업 모델 개발 등에 관해 협력하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가 열린 것을 보니 어떤가?

“인공지능은 맨 처음에 기술적 허들을 넘어야 하지만, 그 다음에는 경제적 도전을 받게 된다. 그 사업에 경제성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 단계를 넘어도 국가의 정책이나 제도적으로 무엇은 가능하고, 무엇은 해도 되고, 무엇을 허용하고, 무엇을 권장하고, 이런 것들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때문에 입법 등에 대해 자문해야 하는 일이 늘어간다. 잘 정리해서 세상에 보다 영향력(임팩트) 있는 서비스가 실제로 사용되길 바란다.”

―인공지능 모델이 실제 매출도 올릴까?

“나는 산업경영을 부전공으로 하기도 해서 어떤 문제를 경제적 가치로 생각하는 게 편한 사람이다. 기업에 몸담고 연구개발(R&D)을 하는 입장에서 지속가능하려면 매출이 나야 한다. 케이티로 이직할 때 이유를 묻는 이들에게 나는 ‘인공지능 연구개발이 지속가능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곤 했다. 케이티에 온 뒤 인공지능 기술의 사업화 뿐 아니라 정부에 자문을 하는 등 막연했던 일들을 더 구체화하고 있다.

이직 첫 날 케이티 화장실에서 본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문구가 엄청 인상적이었는데, 일을 하면서 점점 더 와닿는다. 케이티에는 사명감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곳 융합기술원도 33년 된 역사깊은 연구원이다. 처음 융합기술원에 왔을 때 인공지능 뿐 아니라 양자기술, 가상현실(VR), 생체칩까지 참으로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케이티와 같은 기업이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도 앞서서 투자해왔기에 지금 국가 차원의 인공지능 전략을 세울 수 있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 케이티는 초거대 인공지능 ‘믿음’을 공식 발표도 하기 전인 지난 20일 태국 수출 소식을 알려왔다)

배순민 소장이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케이티융합기술원 자신의 사무실에서 한겨레를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케이티 제공

―‘믿음’ 출시 이후에는 어떤 세상이 올까?

“인공지능 분야는 그야말로 ‘아! 이제 정말 인공지능이 쓸 수 있는 수준이네’ 하는 정도가 된 셈이다. 이제 뭔가 해볼 수 있겠다, 강력한 무기가 하나 생겼구나, 싶게 된거다. 그 무기로 회를 썰지, 스테이크를 썰지 그게 문제다. 이 도구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이 재료로 어떤 요리를 할지 정해나가는 때다.”

―나름의 리더십 원칙이 있다면?

“학교 졸업 뒤 첫 사회생활이 삼성테크윈 로봇사업부 에이아이(AI)개발팀장이었으니 시작부터 리더를 해야 했다. 때문에 리더십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내게 리더십이란 ‘무엇을 안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함께 일하는 것의 핵심은 ‘권한의 위임’이다. 다른 이의 일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역량이 부족하다고 의심을 하게 되면 일을 맡기기 힘들어진다. 권한을 위임하고 그에게 충분한 정보와 권한, 필요한 리소스를 줘야 한다.”

―추천하고 싶은 인공지능 파워피플은?

“김진형 카이스트 명예교수(전산학부)와 장병탁 서울대 교수(컴퓨터공학)를 추천한다. 우리나라 인공지능의 기틀을 세우신 분들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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