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비극을 회고하는 방법 '오픈 더 도어'
'만능 재주꾼'이라 불리는 장항준 감독이 한 가족에 얽힌 비극을 돌아보는 방식으로 선택한 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플래시백'이다. '오픈 더 도어'는 비극적인 사건의 이면을 되짚어간 끝에 열게 된 문 앞에서 비로소 질문을 시작하게 만든다.
이른 새벽, 미국 뉴저지의 한 세탁소에서 총성이 울려 퍼진다. 살인 사건은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지만 범인이 잡히지 않은 채 서서히 잊힌다. 7년 후, 행복했던 가족의 과거를 추억하던 두 남자는 술을 마시던 중 숨겨진 비밀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 연출, 드라마 각본과 연출, 예능 출연까지 폭넓은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장항준 감독이 자신의 새 보금자리인 컨텝츠랩 비보 대표 송은이와 손잡고 신작 '오픈 더 도어'로 관객들 앞에 섰다. 전작인 스포츠 드라마 '리바운드'와 달리 '오픈 더 도어'는 '기억의 밤'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미스터리 영화다.
'오픈 더 도어'는 미국 시카고에서 실제 일어난 한국인 이민자의 살인 사건을 재구성했다. 제목 그대로 '문' '문을 연다'는 단어와 문장에 담긴 중의적인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영화는 정직하고 모범적인 발걸음으로 총 다섯 개 챕터로 구성된 72분 러닝타임 안에서 시간의 역순, 즉 챕터가 진행될수록 과거 이야기로 향하는 플래시백 구조의 길을 또박또박 걸어 나간다.
최종 비극의 시작으로 문을 연 영화는 비극의 순간과 가족 사이 분열을 그리다가 종장에 이르러서는 분열 이전 가족의 모습을 오롯이 담아낸다. 왜 평범한 한 가족이 최종 비극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는지 이유를 네 개 챕터를 통해 보여준 뒤 영화는 균열 이전 일상의 모습이라는 마지막 챕터로 가닿는다.
무엇이 그들을 분열로 이끌어 욕망에 휘둘린 채 결국 영화의 맨 처음 긴장 속에 놓일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 긴장을 유발한 비극적인 사건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는지 영화의 시간과 관객들의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 질문하게끔 유도한다. 즉, 영화는 엔딩을 맞았지만 영화가 던진 질문과 관객들의 고민은 엔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시작점에 놓이는 것이다.
'문을 열다'라는 표현은 영화 안에서 여러 가지 의미로 작동한다. 문자 그대로 '문을 연다'는 뜻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챕터마다 챕터가 가진 주제와 어우러져 저마다의 뜻으로 드러난다.
첫 챕터는 앞으로 벌어질 챕터의 문을 여는 동시에 문석(이순원)이 품어 온 비밀을 연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렇게 문석의 비밀이 열리며 그 비밀 속에 담긴 사연을 본격적으로 여는 게 두 번째 챕터다.
이후 문을 열다는 관용적인 표현은 결심을 의미하는 등 매 챕터 다른 의미를 갖고 관객들의 마음과 머릿속 문을 두드린다. 각 챕터 인물들의 모습과 그들의 이야기를 마주하며 어떤 생각의 문을 열어 질문을 던지며 비극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말이다.
영화의 저변에 깔린 기본적인 은유는 '문'으로도 대변될 수 있는 소통의 단절이다. 초창기 화목했던 가족을 비극으로 이끈 건 서로 문을 닫아버린 결과이기도 하다. 서로에게 문을 닫고, 일그러진 욕망으로의 문을 연 이들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의 문을 열게 된다. 그 문을 연 인물들에게 닥친 건 '비극'이라는 하나의 결말뿐이다. 영화의 마지막 챕터 주제는 행복이지만 그 행복이 결국 영화의 첫 챕터로 돌아가 비극으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걸 모두가 목격했다. 그렇기에 영화는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이러한 다섯 개의 챕터를 지나며 우리가 엿볼 수 있는 건 한인 이민자 가정의 무너진 아메리칸 드림이다. 누구나 성공을 꿈꾸며 낯선 땅의 문을 열고 발을 딛었지만, 누구에게나 꿈꿨던 성공을 내주지 않는 땅이 가진 그 어두운 이면이 영화 안에 조용히 녹아 있다.
제목에 충실한 노골적인 은유가 연신 등장하지만 잘 알려진 사건을 챕터 구성과 플래시백 구조를 통해 새롭게 접근하고자 한 감독의 실험정신이 엿보인다. 장항준 감독은 스토리텔러로서 쌓아온 역량을 '오픈 더 도어'에 담았고, 자신이 사랑한 스릴러로 표현했다.
컨텐츠랩 비보의 첫 영화가 '오픈 더 도어'라는 건 앞으로 주류의 길을 거부하고 최대한 색다른 시도와 도전을 통해 또 다른 길을 가겠다는 일종의 선언처럼 보인다. 영화 제작의 첫 문을 실험적으로 연 만큼 컨텐츠랩 비보의 다음 챕터 역시 전형성을 벗어난 시도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화의 소재가 된, 1993년 시카고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의 범인이자 희생자인 앤드류 서의 가족 이야기를 더욱 가까이서 마주하고 싶다면 다큐멘터리 '더 하우스 오브 서'(The House of Suh, 감독 아이리스 K. 심)를 추천한다.
이 다큐는 '오픈 더 도어'의 영화적 각색과 미스터리를 걷어낸 앤드류 서 사건에 담긴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관객 스스로 판단하고 되새겨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민자의 문화를 직접 경험한 감독이 만든 영화라는 점에서 오히려 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핸드류 서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72분 상영, 10월 25일 개봉,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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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zoo719@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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