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은 과연 카카오의 SM 주식 대량매집 ‘목적’ 규명 가능할까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금융감독원에서 조사받은 가운데,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이 조만간 김 센터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카카오 법인에 대한 처벌까지 적극 검토한다고 공언한 만큼, 최악의 경우 카카오는 인터넷전문은행법에 따라 카카오뱅크의 대주주 자격도 잃을 수 있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놓였다.
이번 사건에서 금감원이 김 센터장과 앞서 구속된 배재현 투자총괄대표, 더 나아가 카카오 법인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카카오가 물량을 투입해 SM엔터테인먼트 주식을 대량 매집한 행위가 ‘하이브 공개매수 방해’에 목적을 둔 고의적인 시세 조종이었다는 점을 규명해야만 한다. 금감원은 이 점을 입증하고 김 센터장과 카카오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처벌할 수 있을까. 법조계에서는 “입증하기 쉽지 않은, 굉장히 미묘한 문제”라는 얘기가 나온다.
◇ 금감원 “카카오, 하이브 공개매수 방해하려 2400억원 들여 SM엔터 주가 부양”
26일 증권업계 및 법조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카카오가 지난 2월 하이브의 SM엔터 주식 공개매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SM엔터 주가를 공개매수 가격인 12만원보다 높은 수준으로 띄웠다고 의심한다.
당시 하이브는 이수만 전 SM엔터 총괄프로듀서의 지분 14.8%를 샀으며, 2월 10일에는 “주당 12만원에 일반 주주들의 주식을 공개매수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같은 달 28일 돌연 정체를 알 수 없는 ‘기타법인’이 SM엔터 주식을 108만주나 사들였고, 하이브는 즉시 금감원에 비정상적 주식 매입을 조사해달라는 진정서를 냈다. 이날 SM엔터 종가는 공개매수 가격보다 높은 12만7600원이었다.
하이브는 결국 SM엔터 주식 공개매수에 실패했고, 이번에는 카카오가 공개매수에 나섰다. 3월 7일 카카오는 SM엔터 주식을 15만원에 공개매수하겠다고 선언했으며 같은 달 28일 계열사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함께 지분 39.87%를 보유한 대주주가 됐다.
금감원이 김 센터장 등에게 적용한 혐의는 자본시장법 제176조 위반이다. 이 조항은 상장증권의 매매를 유인할 목적으로 매매가 성황을 이루는 것처럼 착각을 주거나 시세를 변동시키는 매매 행위, 상장증권 시세를 고정시키거나 안정시킬 목적의 일련의 매매 행위 등을 금지한다.
해당 혐의로 가장 먼저 구속된 인물은 배 대표다. 그가 2400여억원을 투입해 SM엔터 주가를 의도적으로 끌어올렸다는 게 금감원의 시각이다. 그뿐만 아니라 배 대표는 주식 대량보유 보고를 하지 않은 혐의도 받는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본인이나 특별관계자가 보유하는 주식의 합계가 발행주식 등의 5% 이상이 되면 그러한 사실을 5영업일 안에 금융위원회 등에 보고할 의무가 있다.
금감원이 김 센터장 등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려면 이들의 행위가 목적범(행위를 고의로 했을 뿐 아니라 어떤 목적이 있었다는 게 증명돼야 성립하는 범죄)이었다는 사실을 규명해야만 한다.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할 목적이 없었다면 카카오 입장에서도 SM엔터 주식을 굳이 비싼 값에 대량 매집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카카오는 SM 인수전이 계속되던 국면에서 오로지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식을 대량 매집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 하이브 공개매수 선언한 날부터 이미 주가 급등… “대항 공개매수 흔한 일”
법조계 관계자들은 대체로 금감원의 혐의 입증이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 피해자라고 볼 만한 사람이나 법인이 없는 만큼 형법이 아닌 자본시장법만 적용할 수 있는데, 카카오의 행위를 과연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으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장내매수인 만큼, 경영권 분쟁에 불이 붙어 주가가 많이 오른 와중에 개미들이 ‘웬 떡이냐’는 심리로 주식을 팔아 체결이 된 것이라면, 이걸 카카오의 의도적인 시세조종으로 볼 수 있겠냐”고 말했다.
하이브가 문제를 제기한 2월 28일 이전에 이미 SM엔터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른 상태였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금감원은 2월 28일 카카오가 주식을 대량 매수해 주가를 부양했다고 보지만, 카카오 주가는 그 이전부터 하이브 공개매수 단가인 12만원을 넘은 상태였다.
SM엔터의 주가 급등은 하이브가 공개매수를 선언한 2월 10일부터 시작됐다. 이날 종가는 11만4700원으로, 전날 종가(9만8500원) 대비 16%나 뛰었다. 16일에도 주가 급등이 있었다. 하루 만에 7.6%나 상승하며 12만원대에서 13만원대로 뛰어올랐다.
그래서 중요한 변수로 떠오른 게 2월 16일 사모펀드(PEF) 운용사 원아시아파트너스와 이 회사가 출자한 헬리오스1호유한회사의 주식 대량 매집이다. 금감원은 원아시아가 카카오와 공모해 12만원 이상으로 주가를 띄웠다고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카카오는 원아시아와 긴밀하게 움직일 정도의 관계가 아니며, 오히려 경쟁 관계였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금감원이 이 부분을 입증하려면 카카오 윗선에서 원아시아와 공모해 SM 주가 부양에 적극 관여했다는 증거를 찾아야만 한다.
이와 유사한 마땅한 판례가 없다는 점도 카카오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한쪽이 공개매수를 하면 다른 쪽에서 대항 공개매수를 하는 건 흔한 일이며, 이런 일로 고발된 선례 자체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다만 금감원이 카카오의 법률 자문 내용 중 유리한 증거를 찾았다면 상황이 금감원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금감원은 최근 카카오의 SM엔터 인수를 자문했던 법무법인 율촌을 압수수색했다.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는 “만약 그 과정에서 금감원이 ‘통정매매는 위험하니 장내에서 거래하라’는 등의 법률 자문 내용을 발견했다면, 이는 카카오의 목적범을 입증하는 데 유리한 증거가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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