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더 도어’ 장항준 감독 “격의 없는 송은이 덕에 제작 완주, 처음엔 웬떡인가 싶었다”[SS인터뷰]
[스포츠서울 |함상범 기자]1991년부터 시작된 장항준 감독과 송은이 대표의 우정이 영화 ‘오픈 더 도어’로 결실을 보았다. 돈독한 선후배 관계에서 영화 제작자와 감독으로 만나 의미 있는 독립영화를 만들었다.
2000년대 초반 멀티플렉스가 태동한 후 역대 최악의 불황이고, 친분이 깊은 배우 이선균이 마약 투약 의혹으로 모든 이슈를 잡아먹고 있는 상황에 개봉을 앞두고 있어 부담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영화의 본질을 전한다”는 차원에서 아무리 자부심이 있더라도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을 텐데도 장 감독과 송 대표는 여느 예능에서 그랬던 것처럼 활기찬 에너지를 전달했다. ‘인생을 여름방학처럼’이라는 신조로 살며 위기를 늘 웃음으로 극복했듯, 작금의 상황도 쉬이 이겨내겠다는 긍정이 엿보였다.
장항준 감독과 송은이 대표는 25일 서울 마포구 소재의 콘텐츠랩 비보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진행했다.
장 감독은 “개인적으로 제가 한 작품이 대체로 흥행했다. 연패를 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개봉에 응했다. 2년 전에 촬영하고 후반작업이 다소 길어졌다. 요즘 영화계가 많이 힘들어서 사실 쫄리고 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오픈 더 도어’는 1993년 미국 시카고 한인사회에서 발생한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약 25만 달러 때문에 동거남에게 어머니 살인을 교사한 누나, 뒤늦게 어머니를 죽인 강도가 누나의 동거남이라는 걸 안 남동생이 그를 죽인 사건이다.
장 감독은 후배 감독을 통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단편영화로 만들기 위해 시나리오도 직접 썼다. 이후 술자리에서 송 대표에게 보여주면서 본격적으로 영화 작업에 착수했다.
“제작비 때문에 무대를 한국으로 바꾸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있었죠. 그래도 바꾸지 않았던 건 미국 교민 사회만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에요. 한국 사회와는 질적으로 다른 가족과의 유대감이 있는데, 그 안에서 보이는 균열을 담고 싶었어요. 송 대표가 시나리오를 재밌게 읽어서, 웬 떡인가 하며 작업을 시작했죠.”
숱한 예능에서 큰 웃음을 전달해왔던 장 감독의 이미지와 달리 영화는 굉장히 진지하고 예술성이 있다. 특히 결과부터 원인으로 흘러가는 역방향의 시간 배열이 오히려 더 큰 여운을 남긴다. 다소 불친절하지만 결과적으로 잔상이 깊다.
“자본주의적 탐욕이 있는 사건이에요. 누구에게나 있는 욕망이죠. 그 욕망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파멸로 향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욕망 때문에 가장 소중한 사람을 버린 비극적인 사건이라서 흥미로웠어요.”
수많은 제작자와 일해온 장 감독은 ‘오픈 더 도어’로 데뷔한 송 대표와 첫 작업을 했다. 여러 난관이 있을 법도 하고 의견 충돌도 잦을 수 있는데, 격의 없는 소통으로 더 편했다고 했다.
“제가 주요 배경이 되는 집을 세트로 짓자고 했어요. 그러면 제작비가 늘어납니다. 세트를 제안하니까 송 대표가 ‘그거 꼭 해야 해?’라고 묻더군요. 저는 ‘할 수 있다면 해야 해’라고 했어요. 제작자와 감독 사이에는 긴장 관계가 있고, 자존심 싸움을 하다 마음이 상할 수 있는데 오히려 격의 없이 소통해서 일이 잘 풀렸죠. 앞으로 또 호흡을 맞춰보고 싶어요.”
예능에서 늘 재밌고 유쾌한 대화를 큰 웃음을 보여주는 장항준 감독은 스릴러 장르와 맞닿아 있다. 공전의 히트를 한 SBS ‘싸인’도 장르물이고, 영화 ‘기억의 밤’도 스릴러다. ‘리바운드’는 코미디와 스포츠가 골고루 섞여 있다. 이번 ‘오픈 더 도어’ 역시 장르는 스릴러에 가깝다.
많은 사람이 그가 스릴러 장르의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에 놀랄 수 있지만, 오랜 구력이 담긴 영역이기도 하다.
장 감독은 “영화공부를 하면서 장르는 수단이고 목적일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싸인’을 기획했을 때 너무 생소하다며 반응이 좋지 않았다. 요즘에는 로맨틱 코미디인데 살인사건이 나고 그런다. 이후에 ‘기억의 밤’도 스릴러였다. 제게 장르물은 낯선 선택은 아니다. 방송에서 귀여운 이미지가 있지만 새로운 도전이라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영화 ‘박봉곤 가출사건’의 극본을 맡았고, ‘라이터를 켜라’로 데뷔해 수많은 작품에 참여한 장항준 감독은 전에 없는 불황에 놀란 기색을 보였다. 실제로 그는 영화 ‘리바운드’ 첫 날 스코어를 보고 울었다고도 했다. 주위의 호평에 비해 실망스러운 스코어가 나왔기 때문이다.
“비오는 날이었는데, 울고 말았어요. 제가 기억하고 있는 영화계는 르네상스였죠. 지속적으로 발전했고 결국 눈부신 산업적 성장을 일궈냈어요. 전 세계가 부러워할만한 위상을 갖췄죠. 팬데믹을 거치면서 위축됐고, 극장도 위기입니다. 그럼에도 창작자들은 계속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언제나 춘궁기는 있으니까요 . 오롯이 영화가 좋은 사람들이 남아 오늘날까지 영화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는 한국영화의 가능성과 부활을 굳게 믿는다고 했다. 걱정도 크지만 예술성 있는 작품을 만들며 의미를 다지고 있다. 어쩌면 이런 과정들이 후배 영화인들을 위한 선배 영화인의 역할이기도 하다.
“한국영화가 정말 위기여서 제작도 꺼리고 있는 상황이죠. 영화 개봉도 쉽지 않아요. 이러다 산업자체의 기반이 무너져 영화학도의 미래가 날아가는 것 아닌가 걱정도 됩니다. 올해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가 다섯 편 뿐이라고 합니다. 충격적인 상황이죠. 아시아의 중심이었는데. 분명 그래도 잘 이겨낼 거라 믿어요. 이런 좋지 않은 환경에서 예술성 있는 작품을 만든 것 자체가 의미가 있으니까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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