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민족과 박애"… '자원봉사' 고집하는 피부과 의사

최영찬 기자 2023. 10. 26.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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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현 고려대의료원 사회공헌사업실장(안암병원 피부과 교수) "수어통역 진료동반 시범사업, 성과 내서 안착시킬 것"
안효현 고려대의료원 사회공헌사업실장이 국내 의료기관에서 처음으로 농통역사를 고용해 시작한 수어통역 서비스가 지속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사진=장동규 기자
"우리는 소금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안효현 고려대의료원 사회공헌사업실장(안암병원 피부과 교수)의 일성이다. 사회공헌사업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빛'보다 현장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소금'과 같다는 것이다. 사회공헌사업실은 고려대의료원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사업을 구상하고 추진하는 역할을 맡는 조직이다.

고려대의료원은 지난 2월 국내 의료기관 중 가장 먼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보고서를 발간했다. 의료기관으로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에 앞장서고 있다.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의 코스피(유가증권시장) 상장사는 ESG 정보 공시의무가 발생하는 것과 달리 의료기관에는 아직 이러한 의무가 없지만 고려대의료원은 가장 먼저 ESG 경영 실천을 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의료기관 첫 ESG 보고서 발간… 수어통역 서비스 첫선


고려대의료원의 부속병원 중 하나인 안암병원은 지난달 1일부터 농아인(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진료예약 시스템과 수어통역 진료동반 서비스를 시작했다. 비청각장애인인 수어통역사와 농아인 통역사 농통역사를 고용한 것인데 의료원 자체적으로 예산을 편성해 고용했다. 한국농아인협회에 따르면 의료기관에서 농통역사를 고용한 의료기관은 안암병원이 처음이다. 농통역사는 농아인 고유의 농식 수화를 사용해 농아인과 소통한다.

이번 수어통역 서비스 사업은 고려대의료원 자체 예산으로 6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실시하는 시범사업이지만 의료기관에서 수어통역 서비스 수요는 꾸준하다는 게 안 교수의 설명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표정이나 입 모양을 통한 소통이 어려웠던 점도 수어통역 서비스가 시작된 배경으로 꼽힌다.

안 실장은 수어통역 서비스 수요는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수어를 직접 배우지 않는 한 정확한 소통이 쉽지 않다"며 "50대 이상 농아인 환자의 경우 필담으로 의사소통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어통역사와 농통역사는 단순히 농아인의 말을 번역해 주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병원예약 접수, 의료진의 진료·검사·처치, 환자의 약 처방 등을 돕는 역할을 한다"며 "의학 용어에 대한 이해가 있는 통역사를 채용해 전문성도 높였다"고 덧붙였다.

그는 6개월 동안 실시하는 수어통역 시범서비스가 성과를 내서 이후에도 이어지길 바란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고려대의료원은 지난 7월1~15일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세계농아인연맹(WFD) 주최로 열린 제19회 세계농아인대회에 공식 의료지원 후원기관으로도 참여해 농아인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보였다.



'민족과 박애' 정신 잇는다


고려대 의학도서관 1층 한쪽에 의과대학의 역사가 전시돼 있다. 고려대 의과대학은 1928년 9월 의료선교사 로제타 셔우드 홀 여사가 설립한 여성의료인 양성 학교 조선여자의학강습소를 뿌리로 두고 있다. 당시 설립이념이 '민족애'와 '소외된 이를 위한 박애정신'이었다.

안 실장은 사회공헌사업 자체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쓰는 활동이기 때문에 항상 고민이 많다면서 민족과 박애 정신이 고려대의료원의 근간인 만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에 소홀함이 없을 것으로 봤다.

그는 "2021년 5월 사회공헌사업본부(현 사회공헌사업실)가 출범해 역사가 길지 않지만 의료원장을 포함한 리더십이 항상 민족·박애 정신을 생각하고 있고 법인 정관에도 포함돼 있는 만큼 사회공헌사업실의 역할은 지속 강화될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의료기관 중 처음으로 ESG 보고서를 발간했는데 매년 내놓으며 ESG 경영 실천 변화를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고려대의료원은 사회적 책임 외에 탄소중립 실현에도 힘쓰고 있다. 안 실장은 "병원에서 나오는 쓰레기가 모두 의료폐기물은 아니어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감염병 대유행)으로 인해 보류한 의료폐기물 분리배출 사업을 재개해 친환경적인 의료기관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월 고려대의료원이 발간한 ESG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살펴보면 안암·구로·안산병원에 이어 새로 건립할 제4병원은 의료폐기물을 자체 처리할 수 있는 멸균분쇄시설을 구축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기존 의료기관에서 나오는 의료폐기물은 경북 경주, 안강, 고령 등에 있는 의료폐기물 소각장으로 보내진다.



"자원봉사주의 문화 확산하길"


안 실장은 개원하는 일반과 의사들이 가장 많은 분야인 피부과 의사다. 2003년 안암병원 피부과 전임의로 일하기 시작한 이후 20년 동안 개원 유혹을 많이 받았으나 학술 연구와 환자를 향한 봉사심이 대학에 남게 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4월 고려대의료원의 요청에 사회공헌사업실장을 맡은 것은 평소 봉사활동을 많이 해 온 경험에서 비롯했다는 귀띔이다. 그는 "기독교인으로서 몽골, 라오스, 캄보디아, 필리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선교사들과 봉사활동을 수차례 했다"며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인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프로젝트명은 그럴싸한데 실제 내용은 그렇지 못한 것을 판별할 수 있는 안목이 생겼다는 것이다.

끝으로 안 실장은 의료원에 자원봉사주의(volunteerism)가 스며들기를 바란다는 바람도 전했다. 봉사자들에게 일정 정도의 명분이나 혜택을 제공해 이들이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데 전념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안효현 고려대학교의료원 사회공헌사업실장(안암병원 피부과 교수) 프로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학사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피부과학전공 석·박사 ▲국가보훈처 보훈심사위원회 전문위원 ▲대한피부과학회 고시위원회 간사 ▲대한피부연구학회 무임소이사 ▲대한여드름주사학회 총무이사

최영찬 기자 0chan11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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