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손쉽게 돈 벌며 예금 이자 덜 주려 꼼수까지 쓰는 은행들
국내 1위 KB금융지주의 올 3분기까지 누적 당기순이익이 4조3704억원으로 창립 이래 최대를 기록했다. 작년보다 8.2% 더 늘었다. 신한·하나·우리금융도 작년 못지않은 실적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무슨 큰 혁신을 이뤄 어렵게 거둔 실적이 아니다. 땅 짚고 헤엄치기식 이자 장사의 결과다. 경기 침체에다 고금리로 기업과 가계가 고통받고 있는 속에서도 은행과 금융회사들은 ‘편한 장사’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올 상반기 전체 은행들이 대출로 벌어들인 이자 이익은 29조4000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2.2%나 늘었다. 이자 수익에서 각종 비용을 뺀 당기순이익은 작년 상반기보다 44% 늘어난 14조1000억원에 달했다. 금리 상승기에 예금 금리는 천천히 올리고 대출 금리를 더 빠르게 올리는 식으로 예대마진(예금·대출 금리 차이) 폭리를 거둔 것이다. 이렇게 손쉽게 번 돈으로 자기들끼리 돈 잔치를 벌였다. 지난해 5대 시중은행의 성과급은 1조3823억원으로, 2021년 성과급 총액(1조19억원)보다 35% 늘었다.
예금에 지급되는 이자 비용을 줄이려 장단기 금리를 거꾸로 설계하는 꼼수까지 서슴지 않는다. 예금의 만기가 길수록 금리가 높아지는 것이 상식인데 최근 은행권에선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를 6개월 만기 예금보다 낮게 설정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KB국민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은 연 4.05%로, 6개월 정기예금 금리 연4.08%보다 낮다. NH농협은행도 1년 만기보다 높은 6개월 만기 예금 상품이 나왔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의 6개월 만기와 1년 만기 정기예금은 금리가 같다. 금융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이례적인 금리 역전이다.
이 같은 꼼수는 1년 만기 예금의 금리를 더 적게 올려 고객들에게 6개월짜리 초단기 예금으로 가입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앞으로 금리 하락을 예상해 그에 따른 리스크를 고객에게 전가시키고 예금 이자 지급 부담을 덜겠다는 것이다. 외환 위기 때 국민 세금으로 회생한 은행들이 국민의 고금리 고통을 덜어주기는커녕 과점에 따른 우월적 지위를 활용해 이익 극대화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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