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흘러온 시간, 다가올 시간
시간은 흐른다. 대부분의 사람이 작은 마당이 있는 주택에 살던 시절이 있었다. 도시의 주거환경을 주도해 온 아파트는 1970년대 중반부터 주택공사(LH 전신)의 5층짜리 주공아파트가 대단위로 건설되면서 본격화되었다. 1980년대 12~15층의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가 건설되기 시작했고 주택보급률이 70%가 안 되던 당시 1988년부터 추진했던 주택 200만 호 건설에 따라 1990년대 들어서 25층으로 고층화된 3만여 호의 해운대신도시가 건설되었다. 그즈음 5층 주공아파트를 비롯해 단독주택 등 저층 주택단지들은 25층 전후의 아파트로 재건축·재개발도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센텀시티를 시작으로 40층이 넘는 아파트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후 마린시티의 80층에 이르는 초고층 주상복합 빌딩이 건설되었다. 이제 신규 개발가용지를 찾기 어렵고 웬만한 저층의 노후 주택단지들은 재건축·재개발의 도시정비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물론 주거여건 개선과 함께 초고층의 양적 확대가 동반되었다.
지금까지 변화 과정을 적용한다면 앞으로 주택건설은 100~200층 규모의 메가톤급 주거빌딩이 건설되어야 하겠지만 390만이던 인구가 30년 만에 330만 명으로 감소한 사실을 놓고 보면, 한마디로 불가능하다. 심지어 통계청은 2040년 부산의 인구를 290만 명으로 추계했고 2040 부산도시기본계획도 350만 명으로 설정하지 않는가. 앞으로 부산의 주거여건은 어떻게 진화할까? 어떤 전략을 준비해야 할까?
늦은 결혼과 비혼의 비율이 높아지고 아이 없는 부부가 많아지고 돌봄이 어려운 산모들이 찾던 산후조리원은 산후 케어를 위해 으레 찾는 공간이 되었다. 그 많던 결혼식장은 장례식장으로 바뀌었고, 자녀에 의존하던 노후는 다양하게 늘어나는 실버타운으로 옮아가고 있다. 146만 호의 주택, 주택보급률 102%, 75%가 아파트·연립주택 등의 공동주택인 부산의 주거여건은 저성장과 고령화, 기후위기와 에너지 문제, 수도권 초집중과 양극화 심화, 팬데믹과 같은 예측불허의 재난 등의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2030엑스포 유치 가능성이나 보행중심의 15분도시 정책도 유관하다. 몇 가지만 짚어보자.
첫째, 그러는 사이 아파트 단지들은 30~40년 나이를 먹는다. 리모델링 도시정비사업 등의 조치가 필요하지만 과거 재건축은 재산증대라는 등식이 아니며 오히려 자기부담 비율이 점점 더 높아져 선택의 고민이 깊어질 것이다. 이제는 재건축 대상 연한의 의미가 바뀌어야 한다. 30년이면 재건축 가능한 것이 아니라 30년 동안은 무탈하게 거주하되 30년이 되면 노후관로 등의 설비를 수선·정비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처럼 장수명을 위한 설비 수선이 용이하도록 설계하면 인센티브를 지원해야 한다. 더 이상 재건축·재개발이 오래된 아파트의 목표가 아니며 노후화를 방치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주택의 가치가 더 이상 자산이 아닌 사용의 개념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빌라왕 사태는 안전하고 편안하게 주택을 선택하고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을 선호하게 만들었다. 전세는 사라지고 월세, 임대주택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임대주택사업과 도시재생사업을 위해 조직된 일본 국토교통성 소관의 법인인 UR(urban renaissance)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사업처럼 조성과정에서의 지원이 아니라 일본 전국 70만여 호를 조성(매입)뿐만 관리하고 운영한다. 주택임대뿐만 아니라 의료복지와 육아돌봄, 환경과 녹지 등 커뮤니티 중심을 만들어 주거의 질을 높이는 사업도 포함하며, 단지별 사무소를 두어 주민과 소통하고 신뢰를 구축하고 있다.
셋째, 이제 아파트단지 개발은 중장기 수요와 연계해 신중히 계획해야 하며, 다만 역세권 중심의 콤팩트시티 계획이 필요하다. 부산의 주요 역세권은 대부분 도시와 지역의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 단독기능이다. 개발 자체가 불가능한 곳도 있지만, 북항재개발과 원도심 노후주거단지를 실상 단절시키고 있는 부산역, 10코어와 같은 주요 도시중심과 교통거점, 청년이 모이는 대학가 등의 역세권을 중심으로 복합용도의 개발을 검토하고 계획하고 이를 중심으로 15분 도시의 생활권을 조성한다면 청년주거와 도시인프라의 효율적인 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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