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작가 시블리 “가로등의 희미한 빛처럼 세상에 흔적 남기는 게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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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에 대한) 해석은 독자의 몫입니다. 저는 계속 글을 쓸 뿐입니다."
"어쩌면 단어들이 이런 것일지 모릅니다. 그것들은 아무리 작더라도 가로등에서 뿜어져 나온 이 희미한 빛처럼 세상에 어떤 흔적을 남길 수 있습니다. 비참함의 진부함 앞에서 글쓰기의 소명은, 다시 한번 가로등을 켜는 사람의 그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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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전쟁뒤 獨문학상 수상식 취소
“해석은 독자 몫… 난 계속 글 쓸 것”
팔레스타인 작가 아다니아 시블리(49)는 최근 독일 프랑크푸르트 리트프롬협회가 그의 시상식을 취소한 데 대해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글쓰기는 계속된다”고 단호히 말했다.
시블리는 1949년 이스라엘 군인들의 팔레스타인 소녀 집단강간·살해 사건을 다룬 장편소설 ‘사소한 일(Minor Detail·2017년)’로 올해 리트프롬협회가 주관하는 ‘리베라투어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예정대로라면 20일(현지 시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시상식이 열려야 했지만, 주최 측은 일방적으로 시상식을 취소했다.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여파로 일각에서 그의 작품에 대해 ‘반(反)유대주의’라는 비판이 나온 탓이다. 시상식 취소에 대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아니 에르노, 올가 토카르추크를 비롯해 1000명이 넘는 작가가 도서전 주최 측에 항의해 논쟁이 벌어졌다.
시블리는 경기 파주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서 25일 열린 ‘DMZ평화문학축전’에 참석해 ‘전쟁·여성·평화’를 주제로 한 포럼에서 “글쓰기의 소명”에 대해 이야기했다. 작가로서 독일 베를린에 살며 고향에서 벌어지는 전쟁 앞에 패배감을 느꼈던 순간을 털어놓기도 했다.
“베를린에서 저는 글 쓰는 행위를 둘러싸고 있는 고립을 더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세계가 계속해서 무너지는 동안 홀로 앉아 글을 쓰는 것 말이죠.”
결국 그는 팔레스타인으로 향했다. 시블리는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의 비르제이트대 초빙교수 자리를 수락한 이유에 대해 “팔레스타인이라는 현실과 만나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했다. 그는 “무감각한 채로 세계가 멸망하는 것을 마주했다”고 고백했다. 대학 밖의 폭력은 강의실뿐 아니라 그의 일상을 침범했다. 2014년 7월 어느 날, 친구가 안전을 위해 전해준 비상용 휴대전화로 이스라엘군이 공습경보 전화를 건 것. 그는 “전화 버튼 하나만 누르면 그쪽(이스라엘군)에 상황을 다시 물어볼 수 있었는데, 온몸이 마비되고 얼어붙어 말을 할 수조차 없었다”고 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그날 이후 그에게 ‘나는 왜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해 12월 베를린의 집에 머물 때였다. 새벽 1시 반경 어둠 속에서 깨어난 그는 벽면에 드리운 거대한 정육면체 그림자를 마주했다. 당시를 떠올린 시블리는 “거리 가로등에서 흘러나온 희미한 빛이 유리창 주변에 놓였던 책더미를 비춰 벽면에 거대한 그림자를 만든 것이었다”며 “그 희미한 빛이 그 방에 몰래 조용히 그 흔적을 남긴 까닭은 내게 글쓰기를 다시 배우라는 교훈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어쩌면 단어들이 이런 것일지 모릅니다. 그것들은 아무리 작더라도 가로등에서 뿜어져 나온 이 희미한 빛처럼 세상에 어떤 흔적을 남길 수 있습니다. 비참함의 진부함 앞에서 글쓰기의 소명은, 다시 한번 가로등을 켜는 사람의 그것과 같습니다.”
파주=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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