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문학, 전쟁의 해악 치유하는 해독제… 평화의 길 열어”

파주=이소연 기자 2023. 10. 2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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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나 시, 연극이 역사의 흐름을 멈출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환상일 겁니다. 학살, 노예무역, 세계대전. 그 어느 것도 문학으로 막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저는 예술과 문학이 문화 제국주의와 전쟁의 해악에 대한 해독제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기 파주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서 24일 개막한 'DMZ평화문학축전'의 기조연설을 맡은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83)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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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 2人 ‘DMZ평화문학축전’ 기조연설
지한파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 “韓문학, 전쟁유산 ‘恨의 감정’ 간직”
우크라 작가 알렉시예비치… “우크라 보호가 모두를 보호하는 일”

“소설이나 시, 연극이 역사의 흐름을 멈출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환상일 겁니다. 학살, 노예무역, 세계대전…. 그 어느 것도 문학으로 막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저는 예술과 문학이 문화 제국주의와 전쟁의 해악에 대한 해독제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작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는 24일 개막한 ‘DMZ평화문학축전’ 기조연설에서 “전쟁은 우리가 지구상 어디에 있든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말했다. 경기문화재단 제공
경기 파주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서 24일 개막한 ‘DMZ평화문학축전’의 기조연설을 맡은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83)가 말했다. ‘문학이 평화를 위해 일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24∼26일 열리는 이번 축전은 올해 정전 70주년을 맞아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처음 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니스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르 클레지오는 “나는 전쟁이 가져온 끝없는 굶주림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아이였던 그에게 전쟁은 ‘외출 금지’ ‘큰 소리로 말하지 않기’ ‘창문 밖을 보지 않기’ 등 금지의 언어로 다가왔다. 폭격이 시작되면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몇 시간을 숨어 있어야 했다. 그렇지만 그는 “암울했던 시절 외할머니의 이야기 덕분에 나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며 이야기가 지닌 힘을 강조했다.

“외할머니는 저희 형제들을 위해 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원숭이 ‘자코’는 어떤 위기 상황도 민첩하게 빠져나가곤 했죠. 외할머니의 목소리 덕분에 슬픔과 분노, 심지어 배고픔까지 잊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문학에 대해선 “잔혹한 전쟁의 유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평했다. 6·25전쟁이라는 비극적인 현대사에서 비롯된 어두운 상상력을 통해 ‘한(恨)’의 감정을 작가와 독자가 공유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은 어쩌면 치유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문학은 평화를 향한 멀고도 험난한 길을 열어가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지한파 작가로도 유명한 그는 신작 ‘아이와 전쟁’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을 겪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전쟁이 남긴 폭력의 잔해를 기록했다. 이 작품은 또 다른 신작 ‘브르타뉴의 노래’와 묶어 ‘브르타뉴의 노래·아이와 전쟁’(책세상)으로 10일 국내에 출간됐다.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우크라이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24일 ‘DMZ평화문학축전’ 개막식에서 “전 세계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문화재단 제공
이날 르 클레지오와 함께 기조연설자로 나선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우크라이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75)는 “우크라이나를 보호하는 것이 바로 우리 모두를 보호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푸틴은 2022년 2월 24일 밤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면적인 전쟁을 시작했고 전쟁은 1년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는 항복하지 않는다”고 힘줘 말했다.

벨라루스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알렉시예비치는 역사의 현장에서 만난 관련자들의 목소리를 인터뷰로 풀어낸 작품을 써왔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보여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와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다룬 ‘체르노빌의 목소리’가 대표작이다.

한국 문인을 대표해 기조연설자로 나선 현기영 소설가는 “(작가는) 전쟁에 대한 집단기억이 망각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망각에 저항하는 파수꾼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 출신인 현 소설가는 제주도4·3사건을 다룬 장편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창비)와 중편소설 ‘순이삼촌’(창비) 등을 펴냈다. 이번 행사에는 해외 작가 12명과 한국 작가 43명이 참여했다.

파주=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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