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25년 中거주 탈북민도… 中, 강제 북송 시켰다
수감중 태어난 손주도 못보고 북송
9일 오후 7시 반. A 씨는 엄마에게서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엄마의 목소리는 떨렸다. 엄마는 북한을 탈출한 뒤 지린성 창바이현에서 25년간 살다 올해 4월 중국 공안의 불심 검문에 걸려 불법 체류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변방대 구류시설로 끌려갔다.
A 씨는 엄마가 수감돼 있던 5월 아이를 낳았다. ‘이게 마지막이 될 수 있겠다’는 불길함을 직감한 A 씨는 손주 얼굴이라도 보여주려고 면회를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엄마는 전화한 그날 북한으로 송환됐다.
40대인 엄마 김연화(가명) 씨는 1998년 열네 살 때 북한에서 탈출했다. 북한 전 지역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던 고난의 행군 시절, “배불리 먹게 해주겠다”는 탈북 브로커의 말에 속아 두만강을 건넜다. 배고파서 죽으나 도망치다 잡히나 매한가지란 생각에 가진 돈을 모두 브로커에게 줬다. 그런 김 씨를 기다린 건 50대가 다 된 중국인 남편. 인신매매였지만 그녀는 꾹 참고 가정에 최선을 다하며 정착했다. 탈북 이듬해인 1999년 딸 A 씨를 낳았다.
김 씨처럼 중국에서 체포돼 강제북송된 탈북민의 숫자는 이달 9일 약 500명을 포함해 올해만 62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봉쇄한 국경을 일부 열면서 중국의 강제북송이 재개된 것. 우리 정부는 김 씨처럼 중국 정부가 오랫동안 중국에서 살며 정착한 탈북민까지 북송하고 있는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20년 넘게 산 탈북민을 북송한다는 건 이제 중국에서 그들을 털어내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북송된 탈북민들은 조사 과정에서 고문·폭행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인권단체들이 지적했다.
中서 10년넘게 산 탈북여성들 올해 집단 북송… 아이와 생이별
中, 올해 620명 강제북송
탈북뒤 인신매매로 中남성에 팔려
아이 낳고 살다가 줄줄이 체포
中전역 수감 탈북민 2000명 추산
중국 동북 지역 소도시에 살던 30대 탈북민 최금순(가명) 씨는 2020년 이후 집 밖을 거의 못 나갔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중국 정부가 방역 통제를 위해 주민 불심 검문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탈북민은 검문에 걸리면 꼼짝없이 체포돼 북한으로 송환될 가능성이 컸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이웃이 생기면 방역 요원들이 최 씨의 집 현관문을 더 자주 두드렸다. 그때마다 최 씨는 어린 딸을 꼭 끌어안고 숨을 죽였다.
최 씨는 2015년 중국에 도착했다. 한국에 가고 싶어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 왔지만 나이 많은 중국인 남편에게 팔려갔다. 딸을 낳은 뒤엔 일단 위험 부담이 큰 한국행 대신 숨어 사는 길을 택했다. 딸 곁에서 살기 위해 최 씨는 철저히 신분을 숨기며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았다.
그렇게 죽은 듯 숨어 살던 최 씨가 올해 중국 공안에 검거된 뒤 이달 9일 대규모 강제 북송 당시 함께 송환돼 여덟 살 딸과 헤어졌다고 탈북 여성을 돕는 통일맘연합회의 김정아 대표가 밝혔다. 김 대표는 “중국 정부가 방역을 위해 집집마다 수색하는 과정에서 검거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올해 코로나19 방역이 완화돼 북-중 국경 봉쇄가 느슨해지자 중국이 탈북민을 강제 북송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최 씨처럼 중국에서 가정을 이뤄 살거나 십수 년 동안 생활해 정착한 탈북민조차 강제 북송하고 있어 “중국의 탈북민 송환 정책이 강경하게 바뀐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 中서 10년 이상 생활 탈북 여성 다수 북송
이들 대부분은 생활고로 북한을 탈출한 뒤 중국 남성에게 인신매매로 팔려 와 자식까지 낳고 길러온 여성들이었다.
탈북 후 중국에서 10여 년간 살아온 탈북 여성 8명은 올해 교회에서 성경 공부를 하다가 중국 공안에 붙잡혀 변방대 구류장에 구금됐다. 인신매매로 중국인 남성과 결혼한 이들도 대부분 아이를 기르는 엄마였다. 이들 중 일부는 수백만 원의 벌금을 내고 풀려났지만 벌금을 낼 돈이 없는 여성들은 구금돼 북송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한 대북 소식통은 “공안이 일부 여성을 풀어주면서 ‘한국과 연락해선 안 된다’고 여러 차례 요구했다”고 전했다.
올해 중국이 강제 북송한 탈북민 수는 62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권 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과 휴먼라이트워치(HRW)에 따르면 중국은 8월 29일(80명)과 9월 18일(40여 명), 탈북민을 태운 버스를 북한 신의주로 보냈다. 이후 항저우 아시안게임 폐막 직후인 이달 9일에도 탈북민 500여 명을 기습 북송했다. 이때 500여 명은 각각 중국의 단둥, 투먼, 훈춘, 창바이, 난핑 등 5곳 변방대를 거쳐 북송된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과 북한인권단체들은 코로나19 기간 체포돼 중국 전역의 감옥에 수감된 탈북민을 2000여 명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런 만큼 북송되는 탈북민 수는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 “올해 장기체류 탈북민 북송 재개”
국제사회는 “사선(死線)을 넘어온 탈북민을 강제 북송하지 말라”고 촉구하고 있지만 중국은 강제 북송을 단행 중이다. 중국 내 탈북 여성이 포함된 가족 해체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탈북민이 북한으로 송환되면 강제 구금은 물론이고 폭행, 고문 등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도 23일 제78차 유엔총회 제3위원회 회의에서 강제 북송된 탈북민이 고문, 성폭력, 적법 절차를 밟지 않은 살인 등에 노출될 가능성을 우려했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25일 전했다.
중국 정부는 탈북민을 불법 체류자로 보고 강제 북송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탈북민들은 박해 위험에 놓인 난민이라는 입장이다. 그런 만큼 중국이 강제 송환 금지 원칙도 준수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전환기정의워킹그룹 신희석 법률담당관은 “정부는 31일 유엔총회와 북한인권 결의안 작성 과정에서 중국의 탈북민 강제 송환 중단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탈북민들이 중국 내에서 ‘인도적 체류자’ 지위를 얻을 수 있도록 중국 정부에 요청하는 것도 방안으로 거론된다.
정부 소식통은 “중국이 장기 체류 중인 탈북민들까지 강제 북송한다는 건 탈북민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메시지일 수 있어 더 걱정”이라며 “우리 정부도 강제 북송 반대 목소리를 더 강하게 낼 방침”이라고 전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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