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낙선 단체장들, 친명 완장 달고 ‘비명 지역구’ 사냥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최근 전직 기초단체장들이 대거 내년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이들은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총선 승리”를 외치며 친명 조직을 자처하고 있다. 상당수가 비명계 의원이 현역으로 있는 지역구 출마를 노리면서 또 하나의 친명·비명 간 대치 전선이 만들어지는 중이다.
민주당 기초단체장 출신 42명은 지난 18일 ‘풀뿌리 정치연대, 혁신과 도전’을 창립하고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9명, 경기 9명, 인천 6명, 부산 5명, 대전 3명 등이다. 이들은 “기초단체장 출신의 집단적 출마 선언은 한국 정치 역사상 최초”라며 “이 대표도 기초단체장(성남시장) 출신”이라고 했다. 이들 대부분은 작년 지방선거에서 낙선했다.
민주당 안에서는 “과거 의원과 지자체장은 상하 관계였는데 달라진 위상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분석과 함께, 이들이 보이는 노골적 친명 행보와 ‘비명 사냥’을 연상케 하는 출마 움직임이 당 분열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채현일 전 영등포구청장은 지난달 21일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자 자신의 SNS에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 과거 노무현을 탄핵소추했듯 오늘 이재명을 체포동의했다”고 썼다. 채 전 구청장은 영등포갑 지역에서 4선 김영주 의원을 상대로 출마 준비 중이다.
문석진 전 서대문구청장은 재선 김영호 의원의 서대문을에, 박성수 전 송파구청장은 송파병의 3선 남인순 의원 지역구에 출마할 예정이다. 문 전 구청장과 박 전 구청장은 지난달 이 대표의 단식 농성장에서 “우리가 함께 싸우겠다”는 손팻말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김선갑 전 광진구청장은 광진갑 3선 전혜숙 의원을 상대로 출마 준비 중이다. 도전을 받은 의원들의 공통점은 친명·비명으로 쪼개진 민주당 안에서 상대적으로 계파색이 옅거나 이낙연 전 대표 측과 가깝다는 점이다.
현재 강원도당위원장인 김우영 전 은평구청장은 2020년 출마했던 은평을 지역 재도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은평을 현역 의원은 비명에 속한 강병원 의원이다. 친명 강성 지지층은 강병원 의원이 이번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가결 투표를 한 게 틀림없다며 집단 공격을 하고 있다.
대전에서는 박정현 전 대덕구청장이 친이낙연계로 분류되는 초선 박영순 의원의 대덕 지역에 출마할 예정이다. 박 전 구청장은 최근 공석 상태인 당 지명직 최고위원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데, 이에 비명계에서는 “지도부 전체를 친명으로 채우겠다는 것이냐”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당 대변인을 지낸 황명선 전 논산시장은 논산·계룡·금산 지역에서 비명계 재선 김종민 의원과 경쟁하고 있다. 황 전 시장은 지난 2022년 충남도지사 출마를 선언하면서 ‘리틀 이재명’을 자처하며 “이재명이 걸어온 길을 황명선이 잇겠다”고 했었다. 반면 김 의원은 체포동의안 표결 이후 당 청원게시판에 김 의원 등 5인에 대한 징계 청원이 올라와 5만7000명 넘게 참여했다.
기초단체장 출신 42명이 친명을 자처하고 나선 건,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이 대승하면서 민주당에 유리한 지역구 거의 전부가 민주당 현역 의원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역 의원을 당내 경선에서 꺾기 위해 강성 지지층인 ‘개딸’에게 호소하는 친명 노선을 택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안에는 이미 원외 인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더민주혁신회의’가 대표적 친명 조직으로 활동 중이다. 더민주혁신회의의 강위원 사무총장은 지난달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가결표 던지는 의원은 끝까지 추적·색출해서 정치생명을 끊을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강 사무총장은 비명계 재선 송갑석 의원의 광주 서구갑 출마를 준비 중이다. 더민주혁신회의의 다른 인사들도 주로 개딸들이 ‘수박’으로 낙인찍은 비명 의원들 지역구를 노리고 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 대표와 가깝다는 인사가 ‘정치생명을 끊겠다’는 험악한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데 제지하거나 경고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며 “친명·비명 간 공천 경쟁을 당 지도부가 이대로 방관할 경우 나중에 돌이키기 어려운 수준의 비방전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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