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의 체인지] 尹대통령 '반성' 모드, 민주당 '민생'도 화답하라

김병헌 2023. 10. 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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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메시지 ‘변화’ ‘소통’ ‘민생’ 핵심 키워드
이재명 민주당대표도 민생 강조, 실천적 지혜 따라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반성은 자신의 상태나 행동을 스스로 돌아보는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성찰은 과거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나로 거듭나 완성(完成)에 이르게 한다. 상대의 입장을 자신에게 적용하여, 자신을 성찰하고 남을 배려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인 것이다. 나의 생각과 느낌이 공감을 갖게 되고 다른 이에게까지 확대되어 더 넓은 자아를 가지게 된다. 변화, 혁신의 시작이다.

그래서인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반성과 성찰에 대한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명언들이 적지않다. "반성하는 자가 서있는 땅은 가장 훌륭한 성자(聖者)가 서 있는 땅보다 거룩하다.(탈무드)"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소크라테스)" "잘못한 것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공자)" "가장 큰 잘못은 아무 잘못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토마스 칼라일)" "재를 털어내야 숯불이 더 빛난다.(한국속담)"

얼마 전부터 윤석열 대통령도 시간날 때마다 ‘반성’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행사 등에서 보였던 ‘공산주의’나 ‘반국가세력’ 등의 이념적 단어들은 사라졌다. 지난 18일 오전 참모들과의 회의에서는 "국민은 왕이다. 늘 옳다"는 표현을 하며 "어떠한 비판에도 변명하지 말고 분골쇄신하라"고 주문했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브리핑에서 이 같은 지시를 전하며 "윤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민생 현장으로 더 들어가 챙겨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이념을 강조하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추구하는 가치와 이념이 국민에게 충분히 전달됐다고 생각한다"며 "이젠 물가 등 국민들의 어려움을 정조준한 이야기를 꺼내 놓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같은 날 경찰의날 기념식에서의 대통령 발언도 안전·민생·치안과 같이 국민의 삶과 밀접한 단어들이 주를 이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남용희 기자

대통령의 ‘반성’은 전날인 17일 모습을 드러낸다. 90여명이 참석한 국민통합위원회(위원장 김한길) 만찬에서 "국민통합위원회의 활동과 정책 제언은 저에게도 많은 통찰을 줬다고 확신한다"며 "이것이 얼마나 정책집행으로 이어졌는지 돌이켜보고 반성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통합은 전문성만 갖고 되는 게 아니라 어려움을 공감해야 한다"며 "위원회의 다양한 정책 제언을 당과 내각에서 꼼꼼하게 읽어달라"고 당부한다.

윤 대통령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후 낸 메시지는 이처럼 ‘변화’ ‘소통’ ‘민생’으로 요약된다. 향후 윤 대통령 일정이나 메시지도 이러한 키워드가 최우선 순위로 반영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보궐선거 패배가 시발점이 됐다는 게 여권 내 대체적인 시각이다. 대통령실도 부인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반성’을 언급한 것과 관련해 "민심은 천심이고, 국민은 왕이라는 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해달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 변화의 키워드 중심에는 ‘소통’이 있다고 강조한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결국 국정 기조는 바꿀 생각은 없다는 속내를 드러내 보인 레토릭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진정성이 담긴 자성과 성찰을 하고 있다고 믿어보자. 그렇다면 녹록치 않은 여야 정치상황이지만 직접 국민 앞에서 반성했다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잘못은 책임 있는 사람에게 딱 물어야 한다"고 말했듯 참모의 입을 통하지 않고 국민에게 직접 밝혔다면 야권의 비아냥이나 비판은 적을 것이다.

다소의 아쉬움은 있지만 이제는 늦게나마 민생 숙제를 놓고 반성과 변화를 통해 풀어나가야 할 시간이다. ‘국민 우선’ ‘민생 먼저’ 기조를 증명해야 한다. 민생을 중심으로 한 소통과 타협의 정치를 변화와 혁신을 차근차근 보여 줘야한다는 한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 23일 임명된 인요한(64) 국민의힘 혁신위원장도 "와이프(배우자)와 아이만 빼고 다 바꿔야 할 것 같다"며 당의 대대적인 쇄신을 예고했다. 생각은 달라도 미워하지 않는 통합을 강조했다. 김기현 대표로부터 ‘혁신의 전권’을 부여받았다고 확언하지만 민생으로 가는 혁신의 앞길은 순탄하지는 않아 보인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지난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남용희 기자

행정부의 변화도 변화이지만 ‘김기현 체제 시즌2’의 성공여부도 내년 총선을 논하기에 앞서 민생의 성패와도 무관치 않다. 당내 혁신 못지않게 체감할 수 있는 민생 어젠다 발굴, 이재명 민주당과의 통합 정치 행보 추진 여부가 주요과제로 여겨진다. 내년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여야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는 구체적 사안에서 국민 눈높이의 ‘비판 수용’ 적정 합의여부가 시험대다. 25일 대통령실이 민주당의 대통령 여야대표 3자 회담 제안 거부로 여야 민생 협치는 회의적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세종실록’에 보면 재위 31년(1449년)세종은 "옛 사람들은 큰 일을 당하게 되면, 반드시 두려움과 같은 엄중한 마음을 지니고, 동시에 지혜를 짜내 일을 성사시키라고 했다(고인당대사 필운임사이구 호모이성/古人當大事 必云臨事而懼 好謀而成)"며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주목되는 지점은 ‘일에 임해서 두려워하는 것’만을 말한 것이 아니라 ‘일을 도모해 성공하는 것’을 강조한 대목이다. 지금 여야 대치가 첨예한 우리 정치권이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다.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정치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정치적 리더십의 요소는 윤리적 덕성(arete)과 프로네시스(phronesis)즉 실천적 지혜"라고 했다. 윤리적 덕성 없이 실천적 지혜는 불가능하다는 애기다. 우리는 윤리적 덕성이 사라진 선택적 진영논리와 말의 성찬(盛饌)을 수 없이 보고 있다. 대통령의 ‘반성’을 계기로 민생이 실천적 지혜로 승화했으면 하는 마음이 앞선다. 지난 23일 당무에 복귀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민생에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의도와 목적이 서로 달라도 지금은 ‘꿩 잡는게 매’다. 국내 경제 현실이 말해준다. 윤 대통령이 순방에서 귀국하는 26일이 여야가 협치하는 ‘실천적 민생’의 첫날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bienn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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