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민] 아랫동네 오신 걸 환영합니다

골닷컴 2023. 10. 25.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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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시청 앞은 아수라장이었다.

석조전 앞에서 남자친구들은 여자친구들을 찍느라 안간힘을 썼다.

강원FC 선수들은 눈앞에 닥친 강등 위기를 극복해야 했다.

시청 앞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에서는 존재하는 거의 모든 것에 우울함이 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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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닷컴, 상암] 토요일 오후 시청 앞은 아수라장이었다. 좌우 진영 시위가 뜨거웠다. 경찰 병력은 바빴다. 외국인 노부부가 노점상과 태극기 가격을 흥정하고 있었다. 석조전 앞에서 남자친구들은 여자친구들을 찍느라 안간힘을 썼다. 나는 장욱진의 <소녀>를 멍하니 쳐다봤다. 옆에 있던 꼬마 아이가 나가고 싶다며 엄마를 보챘다. 각양각색.

24시간 후, 서울월드컵경기장도 많은 것으로 채워졌다. 홈팀 서포터즈가 준비한 플래카드들이 FC서울을 엄하게 꾸짖었다. 남은 5경기를 전부 패한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서울 선수들이 몸을 풀었다. 강원FC 선수들은 눈앞에 닥친 강등 위기를 극복해야 했다. 원정 서포터즈의 격문이 애절했다. 시청 앞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에서는 존재하는 거의 모든 것에 우울함이 배었다. 아랫동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전반전은 따분했다. 옆에 있던 동료는 연신 “재미없어”라고 툴툴댔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말을 대신 해줘 고마웠다. 이겨야 하는 강원은 전진하지 못했다. 솔직히 전진하지 않았다는 말이 더 정확했다. 플래카드의 엄중한 문구와 달리 홈 서포터즈는 열심히 응원했다. 부족한 동기부여, 꾸짖는 플래카드 문구, 열정적인 ‘서포팅’. 무엇 하나 어우러질 법한 구석이 없었다.

하프타임이 끝난 지 7분 만에 서울은 행운의 선제 득점을 기록했다. 나상호가 찬 프리킥이 수비벽에 굴절되어 강원의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서울 선수들이 셀러브레이션을 펼치는 앞에는 ‘이쯤되면 그게실력’이란 문구가 걸려 있었다. 플래카드가 제작되기 전에 나왔어야 했던 실력인 것 같다.


서울의 선제골은 강원을 깨웠다. 오스마르의 클리어링 실수가 가브리엘의 동점골로 연결되었다. 원정 서포터즈 쪽에서 “할 수 있어, 강원”이라는 콜이 나왔다. 정확히 4분 뒤에 서울은 상대에게 ‘가끔은 애써봤자 소용없는 일도 있다’는 인생의 쓴맛을 알려줬다. “골 넣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라는 지동원은 805일 만에 골맛을 봤다. 그리곤 두 손을 맞잡았다. 나상호의 선제골과 닮았다. 기쁨, 그리고 너무 늦음.

경기가 막판으로 갈수록 서울과 강원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인 서울은 막판까지 사력을 다했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강원은 정반대였다. ‘져도 그만’이라는 듯이 강원 선수들은 천천히 뛰면서 쉬운 패스도 연결하지 못했다. 사전 정보가 없는 팬이라면 저 팀이 강등권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것 같았다. 걸어도 될 서울은 뛰었고, 죽어라 뛰어야 할 강원은 걸었다.

경기 후, 윤정환 감독은 원정 팬들의 격노를 마주해야 했다. 윤 감독 역시 “화를 내실 만하다”라며 현실을 인정했다. 그는 경기력에 관해 “동기부여가 너무 넘쳐도 그럴 수 있다”라고 대답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지만, 후반전 강원 선수들의 몸짓은 과잉보다 결핍 쪽에 가까워 보였다. 의욕보다 포기, 절실함보다 느슨함. 선수들의 진심이 그 반대였기만 바랄 뿐이다.

강원이 강등 운명을 피하려면, 지금 겉모습과 실상이 전부 달라야 한다. 자포자기한 선수들처럼 보여도 알고 보면 누구보다 간절해야 한다. 이런 시국에 유튜브 입담을 뽐내는 대표이사라도 알고 보면 누구보다 치열하게 구단 업무를 돌봐야 한다. “어려운 팀에 와서 한꺼번에 바꾸기가 쉽지 않다”라고 말하는 감독이라도 알고 보면 결정적 순간에 외칠 마법 주문(익스펙토 페르토눔 같은)을 맹훈 중이어야 한다. 그러길 바란다.

글, 그림 = 홍재민
사진 =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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