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정실인사도 부패다
‘아는 사람’ 찾는 윤 대통령 인사 특징
세금 탈루로 부자 된 그들 봐야 하나
이럴 바엔 인사청문회 차라리 없애길
1988년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부결 때는 이러지 않았다. 그때도 여소야대였고 신문에 ‘정권의 사법부 지배 구태에 제동’, ‘다루기 편한 사람 내세운 것부터 잘못’ 제목이 나온 것도 비슷하다. 그러나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부결 이틀 만에 신망 있는 이일규 전 대법원 판사를 새 후보자로 지명해 사태를 수습했다.
이균용 사태 때는 내내 불편했다. 아니, 장관 인사 청문회를 할 때마다 보수 정부에서 출세하는 사람들의 민낯을 보는 듯해 낯 뜨겁고 민망했다. 서울대 법대를 나온 엘리트 법관도 70억대 자산가가 될 순 있다. 그들은 개발독재 시절 정경유착 등으로 치부한 실력자나 재벌 일가도 아니다. 그런 시대는 지났다.
80학번 이균용은 공부 잘해 제 힘으로 출세했고, 결혼도 잘해 부를 일군 ‘특권 중산층’에 속한다. 특히 ‘사법’(시험 합격자 미혼 남성)들에게는 ‘노블레스’(상류층 미혼 여성)를 연결해주는 마담뚜가 숱하게 접근했다고 한다. 문제는 혼자 잘나서 그 자리에 올랐다고 믿는 대한민국 상위 10%의 ‘뉴 하이’ ‘뉴 리치’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커녕 공직자 윤리도, 준법의식이나 시민정신도 안 보였다는 것이다. 그나마 이균용은 국회 동의 없이는 임명될 수 없는 대법원장 후보자여서 거기서 끝났지만 윤석열 정부 내각엔 그 못지않은 장관들이 적지 않다.
물론 보수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임 대법원장 김명수는 강남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아들 부부를 관사에 불러들여 살면서 ‘관사 테크’를 시킨 것이 드러나 뻔뻔함엔 좌우 없음을 보여줬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딸의 입시 비리 등의 혐의로 1심 유죄 선고를 받음으로써 도덕성을 코에 걸었던 문재인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는 다르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수 국민이 윤 대통령이 내건 공정과 상식에 환호한 게 아니었던가.
인사 검증을 책임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이 모든 흠을 알고도 이균용을 인사청문회에 올린 것은 그가 대통령의 친구의 친구였기 때문일 터다. 윤 정부 인사의 또 다른 특징이 대통령의 초중고교 및 대학 동창, 검찰 특수통, 심지어 영부인의 측근 등 ‘아는 사람’이 많다는 거다. 문 정권이 좌파 이념으로 뭉친 이권 카르텔이었다면 윤 정부는 ‘윤석열과 친구들’이다. 첫 내각 19명 중 10명이 서울대, 그중 절반은 서울대 법대 출신이었으니 말이다.
윤 대통령은 “그럼 전 정권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 자부한 바 있다. 그럼 아는 사람을 쓰지 모르는 사람을 쓰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최근 ‘대통령 비서실장 791일’을 출간한 노태우의 비서실장 정해창은 노 대통령이 자기가 모르는 사람을 장관 등 요직에 많이 기용했다고 했다. 비서실에도 출신과 배경을 가리지 않고 한국 최고의 인재들을 썼다는 것이다. 36% 득표율로 취임한 그가 56.8%의 긍정 평가(미디어리서치)로 퇴임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용인술 덕분이라고 했다.
올 8월 갤럽 정책 분야별 평가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가장 못한다고 평가받는 것이 공직자 인사다. 잘했다는 응답이 달랑 19%, 북한 문제(40%)나 복지(37%), 외교(36%)에 비해 한참 뒤진다.
더 큰 문제는 공직에 아는 사람을 앉히는 연고주의, 정실인사가 국제투명성기구(TI)에선 뇌물, 공적자금의 횡령, 공직의 사적 이용, 국가포획과 함께 ‘부패’로 분류된다는 사실이다. 올 1월 TI가 발표한 2022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한국은 63점으로 180개 국가 중 31위다. 전년 대비 점수와 국가순위는 1점, 1등급 올랐지만 공직사회와 관련된 정치 부패 점수가 내려간 것은 심각하다.
우리나라가 산업화, 민주화를 이루고도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대의 ‘완전한 선진국’이 못 되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본다. 윤 대통령이 인사청문회에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는 사람들만 자꾸 세운다면 희망도, 체제 정당성도 주기 어렵다. 대한민국 상위 10%가 탈세, 탈루, 꼼수, 부모 찬스로 혼자 잘살겠다고 난리인데 어떤 청춘이 성실히 노력하며 살겠는가. 그럴 바에야 차라리 국민들 속 뒤집히지 않게 인사청문회를 없애는 게 낫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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