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타워] 박희병과 황현산, 그리고 선배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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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3월, 한국 고전문학 분야에서 손꼽히는 학자 박희병 서울대 교수의 강의가 줌으로 열렸다.
단군신화부터 김소월 시까지 한국 고전문학을 통사적으로 다루는 '한국고전문학사' 강의였다.
박 교수는 두 해 전 이뤄진 마지막 강의 내용을 정리하고 담아서 최근 세 권짜리 책 '한국고전문학사 강의'(돌베개)를 펴냈다.
강의와 번역, 저술을 통해 미래를 열려 한 박 교수와 황 선생의 모습에서 우리 시대 '선배' 또는 '어른'의 역할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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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3월, 한국 고전문학 분야에서 손꼽히는 학자 박희병 서울대 교수의 강의가 줌으로 열렸다. 단군신화부터 김소월 시까지 한국 고전문학을 통사적으로 다루는 ‘한국고전문학사’ 강의였다.
박 교수는 두 해 전 이뤄진 마지막 강의 내용을 정리하고 담아서 최근 세 권짜리 책 ‘한국고전문학사 강의’(돌베개)를 펴냈다. 강의록뿐 아니라 학생들과 주고받은 질문과 답변까지 담아 강의와 그 문제의식까지 생동감 있게 느끼도록 했다.
역시 두 해 전 겨울, 황일우 서울대 교수는 경기 포천 지현리에 위치한 아버지인 불문학자 고 황현산 선생의 작업실 컴퓨터를 정리하다가 파일 하나를 발견했다. 아래아한글 형식으로 정리된 파일 이름은 ‘악의 꽃(1) 번역 원고’. 현대시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샤를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을 완역한 원고였다.
최종 수정 시간은 황 선생 타계 직전인 2018년 7월1일 오전 8시 56분. 황 선생이 입원한 것은 그해 7월 중순이었고 곧이어 8월 8일 숨을 거뒀다는 점에서, 타계 직전까지 작업한 결과물이었다. 어느 날 “번역을 끝냈다”고 좋아했던 그의 마지막 역작이었다.
“죽음이 우리를 위로하고, 슬프다, 살게 하니,/ 그것은 인생의 목적이요, 유일한 희망/ 선약처럼 우리를 들어 올리고 우리를 취하게 하고,/ 우리에게 저녁 때까지 걸어갈 용구를 준다.”(‘가난뱅이들의 죽음’ 부문) 황 선생의 정확하고 정갈한 번역으로 보들레르의 ‘악의 꽃’ 완역판(난다)이 최근 출간됐다. 작고 5년 만이었다.
강의와 번역, 저술을 통해 미래를 열려 한 박 교수와 황 선생의 모습에서 우리 시대 ‘선배’ 또는 ‘어른’의 역할을 다시 생각한다. 한 사회에서 선배의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는 경험의 전수이고, 스스로 미래를 걸어감으로써 모범 또는 반면교사를 남겨주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이를 통해 집단 지식을 형성해 다른 종들과의 경쟁에서 승리, 현생 인류가 될 수 있었다고 하지 않던가. 후배이기도 하지만 선배이기도 한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은, 그리고 우리는 지금 각자 선배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황 선생이 2015년 9월14일 오전 5시37분 트위터에 올린 글이 계속 맴돈다.
“나 죽은 후에 미래가 어찌 되건 무슨 상관인가. 그러나 그 미래를 말하는 나는 살아 있지 않은가. 좋은 미래가 나 죽은 다음에야 온다고 해도 좋은 미래에 관해 꿈꾸고 말하는 것은 지금 나의 일이다. 그것은 좋은 책을 한 권 쓰고 있는 것과 같다.”
김용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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