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단발’도 아닌 ‘다발’ 골수종

2023. 10. 25.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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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한 해 1747명 새로 진단
평균 나이 69∼70세 고령층 많아
치료 발전 속도 빨라 진전 보여
무진행 생존 7년으로 늘어나

60대 후반쯤 되었을까? 딸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몸을 기대어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힘겹게 진료실로 들어온다. 입에서는 통증을 이기지 못하는 듯 신음이 배어 나온다. 직감적으로 다발골수종이다. 벌써 석 달째 허리통증으로 동네 의원 이곳저곳을 전전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허리디스크라고 들었고 나중에는 골다공증에 동반된 척추골절이 있다고 했다. 진통소염제를 비롯한 묘방에도 통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화장실을 가기도 버거워진 즈음 종합병원에서 혈액검사와 MRI 등의 검사를 하고 나서야 다발골수종과 같은 혈액암이 의심된다는 말을 들었다. 적지 않은 경우는 통증으로 앉지도 못해 이동용 침상에 누운 채 소변줄을 매달고 내원한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허리통증과 함께 잘 치료는 될 수 있는 것인지, 치료과정은 힘들지 않을지에 대한 걱정도 무너진 척추를 함께 짓누른다.

다발골수종이라니. 섬뜩한 병명이다. 다발이라니 무조건 전이라는 뜻 아닌가. 십중팔구는 처음 들어보는 병명에 어안이 벙벙하고 실감이 날 때쯤 두려움이 엄습한다. 1873년에 독일 의사가 한 환자를 부검하면서 골수에 8개의 종괴가 있는 것을 보고는 그렇게 명명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름과 달리 일부 환자를 제외하면 보통은 종괴를 동반하지 않는다. 주로는 재발을 거듭하면서 암세포에 많은 변화가 초래되었을 때 발생한다.
윤덕현 서울아산병원 카티센터장
이름도 생소한 다발골수종은 진짜 드문 병일까? 2020년 국내 통계를 보면 한 해 동안 1747명이 새로 진단되었다. 같은 해에 갑상선, 폐 대장암이 3만명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 발생한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는 적은 수일지 모른다. 그러나 혈액암 중에서는 림프종, 백혈병 다음으로 흔한 병이고 증가세가 매우 가파르다. 30년 전과 비교하면 20배, 최근 16년 전과 비교해도 4배가 늘었다. 우선은 진단기술의 발달에 기인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이전에는 병을 특정할 수 없어 그저 괴질이나 노환으로 치부했을 수도 있다. 다른 주요 이유는 고령화다. 다발골수종 환자의 평균 나이는 69∼70세이다. 다발골수종은 우리 몸에서 항체를 생성하는 형질세포가 암이 된 것으로 여러 유전자 돌연변이가 축적되어 발생한다. 그러나 꼭 고령 환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도 40세 전후의 젊은 환자를 최근에만도 여럿 치료했다. 이런 경우 젊은 사람의 암은 경과가 나쁘다는 속설 때문에 더 걱정이 많다. 그러나 젊다고 병의 경과가 더 나쁘지는 않다. 실제 문헌상 가장 오래된 1800년대의 보고 사례도 39세의 여성 환자였다.

다행히 치료의 발전속도가 가장 빠른 병 중 하나다. 10여년 전만 해도 여전히 대다수의 환자는 독성항암제로 인한 탈모를 각오해야 했으나 이제 다발골수종에서 구식 항암제의 입지는 매우 좁아졌다. 가장 중요한 치료제는 보르테조밉을 비롯한 프로테아좀 억제제와 레날리도마이드와 같은 면역조절제다. 이러한 치료제를 기반으로 한 유도치료를 수개월간 하고 나서 만 70세 미만인 경우 고용량항암치료 및 자가조혈모세포이식술을 시행한다. 매우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21세기에도 여전히 가장 중요한 치료 중 하나이다. 다만 여기에서 끝이 아니라 이후에는 레날리도마이드라는 경구치료제를 재발 방지를 위해 복용하게 된다. 이를 유지치료라 한다. 정리하면 유도치료후 조혈모세포이식, 이후 유지치료를 받는다. 이렇게 했을 때 최근 미국에서 시행된 연구 결과를 보면 무진행생존기간이 7년 정도가 된다. 환자분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 있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생존기간이 수년 정도였던 것과 비교하면 큰 진전이다. 설사 질병이 진행되어도 개선된 프로테아좀 억제제인 카필조립, 면역조절제인 포말리도마이드, 표적 항체치료제인 다라투무맵이 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중항체와 유전자 조작세포 치료제(카티세포치료)가 있다. 통상 3번 이상 질병이 악화한 경우 치료는 100명 중 30명 정도만 효과가 있지만 이런 신약은 60∼70여명 이상에서 효과를 보인다.

앞의 환자는 입원해서 신경차단술을 시행해서 급한 통증을 잡고 유도요법 후 모세포이식술을 시행받았다. 지금은 유지치료 요법으로 경구 치료를 하면서 병원을 잘 다니고 있다. 외래 진료실에서는 별로 불편한 점이 없으니 안부인사를 주고받는다. 마지막 질문은 회초밥을 먹어도 되느냐는 것이었고 맛있게 드시라 말씀드렸다. 모든 환자와 진료실에서 서로의 안부만 물으면 되는 그런 날이 오길 바란다.

윤덕현 서울아산병원 카티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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