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리뷰]'오픈 더 도어', 연극으로 보는 '꼬꼬무'

강효진 기자 2023. 10. 25.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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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픈 더 도어. 제공ㅣ컨텐츠랩비보

[스포티비뉴스=강효진 기자] 장항준 감독의 신작 '오픈 더 도어'가 인간의 심리를 깊이있게 담아내며 '리바운드'와는 또 다른 매력을 뽐냈다.

영화 '오픈 더 도어'(감독 장항준)는 미국 뉴저지 한인 세탁소 살인 사건 이후 7년, 비밀의 문을 열어버린 한 가족의 숨겨진 진실을 그린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다.

주연배우는 이순원, 서영주, 김수진, 강애심. 톱스타 라인업은 아니지만 여러 작품에서 봐왔던 낯익은 베테랑들이 열연을 펼쳤다. 특히 다양한 예능프로그램으로 대중에게 친숙한 장항준 감독의 본업 복귀작이자 방송인 송은이가 제작자로 나선 작품이기도 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지만 오래 전 일인데다 최근에 방송에서 구체적으로 다뤄진 바 없는 사건이다. 실화 원작의 단점인 '결말을 알고 보는' 느낌이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작품은 크게 다섯 개의 챕터로 나눠져 있다. 각 챕터마다 시간대와 장소, 등장 인물이 엇갈리지만, 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단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끔 배치했다.

첫 챕터는 이 작품의 뼈대가 된 단편 시나리오인 만큼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다. 관객은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두 남자가 술에 취해 나누는 대화를 통해 이들이 어떤 관계인지, 과거에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어떤 감정의 변화를 겪는지 추론해나가게 된다. 둘도 없이 가까웠던 두 사람은 1챕터 말미, 숨막히는 긴장감과 함께 서로를 죽이려고 하는 지경에 이른다.

다만 두 사람의 관계가 파국을 맞기까지 원테이크처럼 이어지는 대화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진다. 특히 술에 취해 발음이 꼬인 두 남자의 대사를 알아듣기 위한 과정이 피곤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다행히 후반부에서 중요한 정보들이 등장하면서 관객들이 집중력을 되찾을 기회를 준다.

이들의 대화에 따르면 절친한 형, 동생 사이였던 치훈(서영주)과 문석(이순원)은 현재 매형과 처남 관계. 이들 가족은 몇년 전 한인 세탁소 강도 살인 사건으로 엄마(강애심)를 잃고 여전히 힘겨워하고 있다. 설상가상 매형 문석은 치훈의 누나 윤주(김수진)를 때렸다는 이야기까지 등장한다. 술에 취해 "왜 착한 우리 누나를 때렸느냐"고 자신을 몰아세우는 치훈에게 문석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다음 챕터부터는 엄마의 죽음에 담긴 비밀을 차근차근 풀어나가며 범인이 누구인지, 왜 엄마를 죽였는지를 보여준다. 윤주와 치훈의 통화로만 이뤄진 챕터, 범인이 엄마를 죽이기로 결심한 과정을 담은 챕터, 실제 사건 당일 세탁소에서 일어난 일이 또 한 챕터, 마지막으로 사건 이전 행복했던 이들의 모습이 담겼다.

사건 시간 순서대로라면 마지막 5챕터가 가장 과거, 가장 처음에 나온 1챕터가 현재다. 영화를 보고 난 관객들이 5챕터까지 보고난 뒤 결국 다시 1챕터를 되새기며 여러 상념에 빠져들 수 있도록 구성했다.

챕터 별로 묶인 다섯 덩어리로 나뉘었지만 각각의 챕터가 거의 '한 신'에 가까울 만큼 공간 변화 없이 대화로만 풀어나가는 연극스러운 연출 방식을 선택했다. 장점이라면 밀도 높은 대화가 주는 섬세한 캐릭터 묘사다. 또 사건에 대한 '그림' 없이도 대사를 통해 복잡한 사건 정보가 바로 전달된다. 스크린을 통해 연극으로 보는 '꼬꼬무' 같달까.

다만 연극보다 자연스러운 구어체를 쓰다보니 더 현실감 있는 반면, 정보가 정제되지 않은 반복적인 대사와 캐릭터가 울고불고 짜증을 내는 상황이 반복되는 장면이 상당히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만큼 상황에 대한 몰입도가 높다는 것이기도 하니 관객 성향에 따라 장점 혹은 단점으로 갈릴 포인트다.

엔딩 역시 관객 선택에 따라 5챕터, 혹은 1챕터로 해석할 수 있는 지점이다. 5챕터가 끝나고 나면 매듭짓지 않은 1챕터가 떠오르면서 엔딩에 호불호가 있을 수 있겠지만 곱씹을 수록 해석의 자유에 묘미가 있다. 좋았던 시절에 대한 여운으로 막을 내리고 싶다면 5챕터, 과연 둘 중 누가 죽게될지 긴장감 속 스릴러 물에 손을 들어준다면 1챕터를 엔딩으로 삼을 수 있다. 장항준 감독은 1챕터의 생사가 드러나는 엔딩을 준비했었지만 본편엔 일부러 담지 않았다고. 관객에게 결말의 문고리를 쥐어준 셈이다.

최근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구성으로, 다양성 측면에서 인상적인 작품이다. 다만 쟁쟁한 상업영화들이 연이어 고꾸라지는 냉혹한 시장에서 실험적인 도전에 나선 '오픈 더 도어'가 관객들의 마음도 '오픈'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2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7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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