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일자리 급증…‘N잡러’ 환상은 금물
임금노동자 26만명 줄고, 특고·플랫폼 종사자 38만명 늘어
‘경제적 자유 속 부업’ ‘청년세대들 N잡 선호’ 현실과는 달라
비임금노동 780만명 추산…‘N잡 시대’ 맞는 사회보장 필요
‘자유롭게 일감을 선택’ ‘MZ세대 선호’ ‘자아실현’ ‘경제적 자유’…. 사람들이 ‘N잡러’(다중취업자)에 관해 쉽게 갖는 인식이다. 이 같은 인식과 달리, 실제 N잡러 노동시장은 급속도로 열악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노동자는 가파르게 줄고,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 등 고용·노동조건이 열악한 ‘근로기준법 바깥’ 노동자가 대폭 늘었다. 플랫폼 경제의 확산 속에 ‘쪼개지고 녹아내리는’ 오늘날 노동의 현주소다.
2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이 근로복지공단에서 받은 ‘최근 10년 산재보험 복수가입자(다중취업자) 현황’을 보면, 2014년부터 2023년 7월까지 산재보험 복수가입자 중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임금노동자)는 26만5000여명 줄고 특고·플랫폼노동자 등 노무제공자(비임금노동자)는 38만5000여명 늘었다. 산재보험은 여러 곳에서 일하면 각각의 사업장에서 가입을 해 다중취업자 현황을 쉽게 살필 수 있다.
구체적으로 산재보험 복수가입자 중 근로기준법상 임금노동자는 매해 6월 말 기준으로 2014년 77만748명에서 2017년 82만448명으로 한동안 비슷한 규모를 유지했다. 플랫폼 업체에서 일하지 않고 근로기준법상 근로계약만 맺은 경우다.
임금노동자 복수가입자는 플랫폼 경제가 급속도로 확산한 2018년 72만9602명으로 줄었다. 이어 2019년 70만8195명, 2021년 64만3472명, 2023년 50만5469명으로 계속 감소했다. 전체 가입자 중 비중은 2014년 6.6%에서 9년 만에 3.4%로 줄었다.
특고·플랫폼노동자 등 비임금노동자 복수가입자는 매해 6월 말 기준 2014년 2704명에서 2017년 4782명, 2019년 5927명으로 완만하게 늘었다. 플랫폼 경제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고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6월 1만515명으로 전년 대비 2배로 급증했다. 비임금노동자 복수가입자는 2021년 6월 2만4967명으로 또 2배 늘더니, 2022년 6월 10만8309명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2023년 7월에는 산재보험 가입요건 중 ‘전속성’(한 사업장에 종속돼 노무를 제공하는지 여부)이 폐지되면서 38만7999명으로 폭증했다.
전체 비임금노동자 가입자 중 복수가입자의 비중은 2014년 6월 6.3%에서 2023년 7월 38.9%로 훌쩍 뛰었다. 아직 일부 직종의 특고·플랫폼노동자들만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비임금노동자 다중취업자 규모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비임금노동자 다중취업자 규모는 노동시장이 특고·플랫폼 등 상대적으로 열악한 일자리 위주로 재편되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비임금노동자는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고 일부 직종을 제외하면 고용보험 등 사회안전망에서도 소외된다. 반면 사측은 정식 근로계약에 따르는 여러 의무와 책임을 피할 수 있다. 현재 비임금노동자는 통계에 따라 최대 780만명 이상까지로 추산된다.
N잡러가 ‘안정된 직장을 가지며 부업 삼아 플랫폼노동을 한다’는 인식도 사실과 달랐다. 2023년 7월 말 기준으로 2개 사업장에서 산재보험에 가입한 비임금노동자의 가입자격을 보면, ‘2곳 모두 비임금노동자’가 23만1171명으로 ‘1곳 임금노동자+1곳 비임금노동자’(10만2352명)의 2배 이상이었다. 대다수는 정식 근로계약을 맺은 직장 없이 플랫폼노동을 주업으로 삼아 여러 플랫폼을 돌며 일한다는 뜻이다.
‘청년세대가 N잡러를 선호한다’는 인식도 틀렸다. 2023년 6월 기준 임금노동자 복수가입자는 ‘60대 이상’이 12만8788명(25.5%)으로 가장 많았다. ‘50대’가 11만7383명(23.2%)으로 뒤를 이었다. ‘20대’는 3만5672명(7.1%)에 그친다. 2023년 7월 특고·플랫폼 비임금노동자 중에서는 ‘50대’가 11만4601명(29.5%), ‘40대’가 11만3840명(29.3%)이었다. 이들 대다수가 남성으로, 플랫폼노동을 주업으로 삼은 이들 중 대부분이 핵심 가구소득원이라는 방증이다. ‘20대’는 2만8940명(7.5%)뿐이었다.
특고·플랫폼 다중취업자가 늘어나는 현실에 맞춰 새로운 사회보장 정책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노동계는 잦은 실직·이직으로 인한 소득단절을 막고 일정 소득을 보장하는 ‘부분실업급여’ 도입을 주장한다. 현재 고용보험 제도는 특고·플랫폼노동자가 모든 플랫폼에서 완전히 실직하거나, 부분실업 전 3개월 수입이 전년 동기 대비 30% 적은 경우에만 실업급여를 지급한다.
이 의원은 “현재 국회에 계류된 ‘일하는 사람 기본법’ 제정안을 속히 통과시켜 특고·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의 기본적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현재 복수의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산재를 모두 보상하는 것처럼, ‘N잡 시대’에는 복수의 사업장에서 겪는 실직·소득단절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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