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정해진 혁신안, 여권 지도부 ‘수용’ 여부에 성패

정대연 기자 2023. 10. 25.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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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여야, 위기마다 혁신위로 반전 시도…내용보다 ‘받아들이냐’가 관건
불이익 감수하는 리더십 보여야 성공…과거 여당선 대부분 용두사미

“이미 혁신안은 다 나와 있다. 중요한 건 당 지도부가 혁신안을 수용하느냐 여부다.”(국민의힘 관계자)

여야는 선거 패배, 지지율 하락 등 위기에 처하면 혁신기구를 만들어 반전을 시도해왔다. 혁신위원회를 출범시키지 않은 당대표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성공한 혁신위라고 평가받는 경우는 드물다. 성공과 실패는 혁신안 내용보다 지도부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혁신안을 수용하느냐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위기 모면용 혁신위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당대표 및 주류가 정치적 생명 보전을 위해 ‘친위 혁신위’를 꾸린 경우는 모조리 실패했다. 올해 더불어민주당 ‘김은경 혁신위’는 당대표 선출 시 대의원 투표 배제를 골자로 하는 혁신안을 내놨다가 비이재명계 의원들의 극심한 반발을 샀다. 김은경 혁신위는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비판 속에 위원장이 ‘노인 폄하’ 등 설화에 휘말리면서 조기에 문을 닫았다. 1호 혁신안인 이 대표 체포동의안 당론 가결은 의원들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민주당 계열 정당에선 이 밖에도 2017년 ‘최재성 혁신위’가 현역 의원 경선 의무화, 비례대표 상향식 공천 등을 내놨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지난해 송영길 대표 시절 출범한 ‘장경태 혁신위’는 3선 초과 동일 지역구 출마 금지, 의원 면책·불체포특권 제한, 위성정당 창당 방지 등 굵직한 개혁 방안을 검토만 한 채 최종안을 발표조차 하지 못했다.

보수정당의 혁신위도 실패를 반복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대책으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014년 출범시킨 ‘김문수 혁신위’는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도입, 국회의원 세비 동결·무노동 무임금 원칙 적용 등을 내놨지만 친박근혜계 반발로 채택되지 않았다. 의원 면책특권 폐지 등을 발표한 2018년 ‘김용태 혁신위’도 실패했다.

지난해 6·1 지방선거 승리 직후 이준석 대표가 띄운 최재형 혁신위는 6개월간의 활동 끝에 공천관리위원회 기능 일부 윤리위원회 이관, 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PPAT) 확대 및 공천 부적격 기준 강화, 온라인 당원투표제 도입, 국회의원 정기평가제 도입 등 혁신안을 내놨다.

하지만 이 전 대표가 당 징계로 쫓겨나고 지도부가 계속 바뀌면서 유명무실해졌다. 특히 친윤석열계는 이 전 대표가 자신들을 밀어내기 위한 방편으로 공천 관련 혁신안 도입을 밀어붙였다며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최재형 의원은 25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경험해보니 아무리 좋은 혁신안이 나와도 (당 지도부가) 안 받으면 무용지물”이라고 밝혔다.

‘용산 눈치’ 보다간 실패 전철…결국 ‘공천 혁신’ 결단이 핵심

혁신위 성공의 법칙

2005년 홍준표·2015년 김상곤
당시 주류 반발 컸던 룰 제시
총선·대선 승리의 기반이 돼
“기존안 관철시키는 게 관건”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혁신위도 있다. 공통점은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당대표가 본인의 불이익을 무릅쓰고 혁신안을 수용했다는 점이다. 또한 야당 시절 위기 극복을 위해 혁신위를 출범시킨 사정이 있었다.

2005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비주류였던 홍준표 의원에게 혁신위 전권을 부여했다. 홍 위원장은 대선 1년6개월 전 당권·대권 분리, 대선·광역단체장 후보 선출 시 당원 외 국민 의사 50% 반영을 골자로 하는 혁신안을 내놨다.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꼽히던 박 대표에게 불리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박 대표는 친박계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격 수용했다. 박 대표는 2007년 대선 당내 경선에서 자신이 수용한 룰에 의해 이명박 후보에게 패했지만 2012년 결국 대권을 거머쥐었다.

2015년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4·29 재·보궐선거 참패 후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에게 혁신위원장을 맡겼다. 김 위원장은 현역 의원 평가 하위 20% 교체, 총선 경선 선거인단 100% 일반 국민으로 구성, 계파 갈등 해소를 위한 사무총장제 폐지, 재·보선 원인 제공 시 무공천 등 혁신안을 만들었고, 문 대표는 이를 수용했다. 이듬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한 새정치연합은 패배가 예상되던 총선에서 승리했다.

최근 거론되는 정당 개혁 방안들은 앞서 활동한 혁신위들도 내놓은 것이 대부분이다. 정치권에서는 이제 더 새로운 혁신안이 나오기 어려울 만큼 이미 많은 혁신안이 나왔다는 평가가 많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국민의힘이 띄운 ‘인요한 혁신위’를 두고 “거창한 혁신안을 만드는 것보다, 기존 혁신안을 관철하는 게 성공 조건”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25일 “공천관리위원회가 출범하기 전 두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완전히 새로운 혁신안을 만들기란 불가능하다”며 “이미 나온 혁신안 중 파급력이 큰 2~3개만 내놓으면 된다”고 말했다. 김기현 대표가 당장의 불리함을 감수하고서라도 혁신안, 특히 공천 관련 제안을 수용하느냐가 혁신위와 당의 성패를 좌우할 거란 얘기다.

여당에서 성공한 혁신위가 없는 것은 “눈치 볼 곳이 많아서”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현직 대통령이 있는 상황에서 당대표가 혁신을 추진할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요한 혁신위가 여당 혁신위 중 최초로 성과를 남기기 위해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태도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혁신위 성공을 위해서는 수직적 당·대통령실 관계, 공천 시 용산 대통령실 입김 방지가 핵심”이라고 밝혔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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