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판 MZ’는 긴장도 즐기Z
‘경험을 무기로’ 앞세웠던 가을 야구
올 PS 초반 주도한 NC에는 남 얘기
01년생 두산 최승용 등 Z세대 활약
선배 고우석 리드한 포수 김형준
“국가대항전 AG보다는 덜 긴장”
김주원도 흥분 대신 차분함 장착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가을야구를 할 때면 흔히 보는 풍경이 있었다. 포스트시즌이 한창일 때, 라커룸에서 더그아웃으로 통하는 진입로에 이른바 긴장감 조절에 도움이 되는 ‘음료수’ 여러 병이 놓여 있곤 했다. 지나치게 떨리는 선수는 오가다 자유롭게 마시라는 신호였다.
그때 가을야구는, 큰 경기 경험이 아예 없거나 부족한 젊은 선수들에게는 입시만큼 무거운 무대였다.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도움을 받으려는 선수들도 있었다. 그라운드와 관중석 분위기에 미디어의 집중도까지 모든 것이 다른 포스트시즌은 ‘경험’이 우선시되는 무대로 여겨졌다.
올해 가을야구 시작은 많이 다르다. 포스트시즌 경험으로는 내세울 것이 별로 없는 젊은 선수들이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올해 포스트시즌 초반 흐름을 주도하는 NC는 김형준(1999년생), 김주원(2002년생), 김영규(2000년생), 서호철(1996년생) 등 젊은 선수들의 거침 없는 활약에 힘을 받고 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탈락한 두산에서도 마운드 붕괴 속에 가장 돋보인 선수는 가을야구 경험이 한 시즌뿐인 2001년생 좌완 최승용이었다.
이들은 요즘 젊은 세대를 통칭하는 ‘MZ세대’ 가운데서도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생한 ‘Z세대’에 가깝다. 대개는 집단보다는 개인 행복에 큰 가치를 두고 소유보다는 공유에 익숙한 성향을 보이는데, 프로야구에서라면 외부 환경 변화에 따른 시선을 덜 의식하고 자기 것을 해낼 수 있는 강점이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NC의 젊은 선수들은 큰 경기 활약에도 인터뷰를 할 때면 들떠 있는 표정이 아니다. 공수에서 알찬 활약을 하는 유격수 김주원은 “긴장이 조금 더 되지만, 그만큼 더 집중된다”고 했고, 3경기에서 홈런 3방을 터뜨린 김형준은 “국가대항전이던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비해 덜 긴장된다”고도 했다. 김형준은 대만과의 아시안게임 결승전 9회에 맞은 위기에서도 침착하게 타석의 타자 움직임을 읽으며 본인 계산으로 선배 투수 고우석(LG)을 리드했던 포수. 가을야구에서도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NC 백종덕 홍보팀장은 “요즘에는 (긴장 조절을 위해) 드링크 같은 것을 마시는 선수는 보지 못했다”며 “우리 선수들의 경우 평균 연령은 젊지만, 그에 비해 프로 경험이 짧지 않은 선수들이 많은 점도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레전드급’ 선수들도 어린 시절 데뷔전 또는 큰 경기 기억을 더듬을 때면 “다리가 땅 위에 마치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공을 던졌다”고 회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경험으로 하나씩 마운드에 뿌리를 내린 선수들이다.
MZ세대에게는 ‘경험’의 무게가 조금은 달리 나타나고 있다. 큰 무대에 오를 때면 심장이 뛸 수밖에 없지만 필요한 만큼만 뛰는 것 같기도 하다.
‘디펜딩 챔피언’으로 경험이 무기인 SSG가 가을야구에서 고전하고 있는 것도 젊은 세대들의 움직임과 일정 부분 대비되는 대목이다. 올 가을야구는 여러 각도에서 익숙함의 범위를 벗어나 진행되고 있다.
안승호 선임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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