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목선과 목탄차의 나라

이하원 논설위원 2023. 10. 25.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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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 4명이 강원도 속초 인근 해상을 통해 귀순한 24일 해경 선박이 이들이 타고온 소형 목선을 인근 군부대로 예인하고 있다. 2023.10.24/뉴스1 ⓒ News1 윤왕근 기자

2019년 12월 일본 니가타현 사도(佐渡)섬 해안에 선수(船首)만 남은 북한 배가 떠내려왔다. 거무튀튀한 형체에 북한식 한글이 쓰여 있는 뱃머리 안에선 북한 주민 시신 7구가 발견됐다. 일부는 백골(白骨)화가 진행 중이었다. 오랫동안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굶어 죽은 것이다. 일본에서는 2010년대 중반부터 매년 이 같은 ‘백골선(白骨船)’이 끊임없이 발견돼 보도되고 있다.

일러스트=이철원

▶ 24일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북한 목선도 풍랑을 만났거나 해류를 잘못 탔다면 백골선이 됐을지도 모른다. 북한에서 굶주린 일가족 4명을 태우고 사선(死線)을 넘은 배는 길이 7.5m에 불과했다. 경운기에 쓰는 작은 엔진을 달고 있을 뿐, 아무런 항법 장치도 없었다. 사실상 뗏목과 다를 바 없는 나뭇조각에 운명을 맡긴 것이다. 이 배에 타고 있던 북한 여성은 우리 어민의 배를 보고 “한국 배는 참 좋다”고 했다 한다.

▶북한이 과거 시대에 머무는 것은 목선뿐만 아니다. 북한은 1990년대 후반부터 연료난이 심각해지자 기존 화물차량을 목탄차로 개조해 쓰고 있다. 주로 지방에서 군인 및 주민 수송용으로 많이 사용한다. 나무를 태워서 생기는 가스를 이용해 움직이는 목탄차는 최고 속도가 시속 50~60km. 한 탈북자는 “언덕길이 나타나면 탑승자들이 내려서 민다”고 했다. 북한의 산 대부분이 민둥산이 된 이유 중 하나가 목탄차라는 분석도 있다.

▶북한의 도로는 도로라고 부르기도 힘들다. 북한 도로 총연장은 한국의 약 4분의 1 수준이라고 하나 대부분 왕복 2차선이고, 무엇보다 포장률이 10%도 안 된다. 한국 사람은 차를 타도 그 길을 30분도 못 갈 것이라고 한다. 철도와 도로가 엉망이어서 200km 가는 데 3~4일이 걸린다. 여행자유도 없어 먼 지역에 사는 부모, 자식은 사실상 이산가족과 다름없다. 부모 사망 소식을 듣고 집에 도착하면 장례식이 끝났다고 한다. 고속도로는 특수 계층만 이용한다. ‘평양의 영어 선생님’의 저자 수키 김은 평양과 묘향산 간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차를 한 대도 보지 못했다고 썼다.

▶뗏목 같은 목선과 목탄차는 이제 아프리카에서도 보기 쉽지 않다. 북한 체제가 뒤를 향해 달리는 것은 김정은이 핵·미사일에만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체제를 고발한 뮤지컬 ‘요덕 스토리’에 기독교의 주기도문을 패러디해 절규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남조선에만 가지 마시고 이곳 공화국(북한)에도 찾아오소서.” 김정은 일가를 제외한 우리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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