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 평론하는 마음
어느 젊은 시인의 시집 해설을 쓰고 있다. 시집이나 소설집 말미에 실려 해당 책의 방향성을 소개해주고 책에 묶인 각각의 작품이 지니는 의미를 살펴주는 짤막한 글을 본 적이 있을 테다. 이러한 종류의 글을 해설이라고 부르는데, 주로 문학평론가들이 쓴다. 작품론이나 리뷰, 주제가 있는 평론을 쓰는 일보다 해설을 쓰는 일이 언제나 더 어렵게 느껴진다. 여러 저자의 글이 한 권의 책에 함께 묶이는 여타의 글과 달리, 해설은 한 권의 책에 딱 한 편만 실리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해설을 잘 쓰지 못하면, 한 작가의 책을 망치게 되리라는 부담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해설 청탁을 받아두고 압박감에 시달리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내게 해설을 부탁한 시인을 사석에서 만난 적이 있다. 나는 좀 어색하게 “해설을 잘 써드려야 할 텐데요”라고 말했다. 시인은 그런 부담은 버리라고, 아무렇게나 써주셔도 다 좋다고 답해주었다. 나는 반신반의하며 “그래도 완성도가 높은 해설이 좋지 않나요?”라고 물었다. “다른 작가들은 어떨지 몰라도 전 이렇게 생각해요. 해설 써주시는 평론가 선생님께서 제 글을 제일 먼저, 그것도 엄청 열심히 읽어주시는 거잖아요. 저는 제 시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살펴주는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그게 다거든요.” 단순한 말이지만 온기를 지녀서인지, 그 한마디에 나를 누르던 부담이 녹아 사라졌다. 나는 어떤 글이든 온 마음을 다해 열심히 읽는 사람이니까.
이번에 의뢰받은 시집을 살피며 내가 한 일들은 참으로 단순하다. 슬픈 구절을 만날 때마다 참지 못하고 울기, 단정한 문장들에 줄 치며 너무 좋다고 혼자 말하기, 갈피를 잡지 못해 ‘작가의 말’을 몇개씩 준비한 시인의 마음들을 빠짐없이 응원해주기. 훗날 이 시집을 함께 읽을 맑은 얼굴들을 떠올리며 그들의 해사한 마음을 가늠해보기.
한때 나는 작품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슬픈 구절을 읽을 때면 오열하고 마는 내가 평론가로서 자질이 부족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이 해석의 대상으로 삼은 소설 작품들을 읽으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이소연 평론가의 <애도 불능 시대의 리얼리즘>이라는 글을 읽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어쩌면 무엇이든 스미기 쉬운, 잘 흘러넘치는 액체 상태의 인간이기 때문에, 타자의 아픔과 이를 담아내려는 작가의 노력에 누구보다 먼저 감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작품에 관해 쓰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추측하게 됐다. 그렇다면 평론가는 내게 천직인 셈이다.
어떤 이들은 평론가란 작품을 냉정하게 평가하며 그것들 간의 위계를 정하여 줄 세우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 생각에 평론가는 애호가에 가깝다. 자기가 비평하는 분야의 대상을 몹시 사랑하는, 그래서 몇번이고 이를 다시 들여다보고 곱씹어 보며 좋은 부분들을 남들과 나누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람들 말이다. 논리와 이성, 비평적 고찰로 무장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작품 앞에서 무너지고 쏟아지기를 반복하는 것 또한 평론가의 일이다. 찢긴 마음의 잔해를 그러모아 어떤 방식으로 작품의 빈자리에 덧입혀 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까 항상 고민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책에 쓰인 누군가의 말을 공들여 읽어주고 그것을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려 하는 사람은 모두 평론가라고 말해볼 수도 있겠다. “어느 나라에서는 남의 말을 시라고 한다 누가 혼잣말로 추워, 라고 말해도 온갖 비평가들이 담요를 들고 곁으로 다가와 모닥불을 피우고 귀를 기울여준다고.” 고명재 시인이 쓴 시 구절처럼, 추위에 떠는 이의 혼잣말을 외로이 두지 않는 사람, 그것이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도록 곁에서 다독여주는 사람, 그런 사람은 이미 평론가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읽고 느끼고 사랑하는 일까지 모두 평론가의 일이라니, 어쩐지 행복해진다.
성현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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