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구찌뽕
‘가을 기분’ 내보려고 마당에 몽골 텐트를 쳤다. 나보단 개와 고양이가 주로 드나든다만 쳐다보는 것만으로 이미 가을 냄새와 가을밤과 국화 향기로 충만해. 녹차 마시는 모임이 마침 내 산골 집 차례여서 벗들이 찾아왔어. 다회의 회주인 금강 스님을 비롯 원년 멤버들이 고작 나 포함 다섯인데, 다들 모이기란 하늘의 별 따기. 이번에도 누구 한 사람 빠졌다. 나도 가끔 빠지곤 하는데 ‘뒷담화’가 장난이 아니어서 최소 열흘은 귀가 간지러워. 손님들 흩어져 주무시고, 새벽에 텐트에 살짝 들어가 구절초 꽃향기를 가까이서 맡다가 눈을 감았다.
이번 다회엔 객이 구찌뽕으로 만든 차를 맛보기로 가져와 그야말로 초토화. 향이 진하고, 게다가 효능도 만병통치 수준이라 벌어진 턱을 괴어야 했다. 순하고 수수한 맛을 가까이하며 사는 우리로선 감당하기 센 맛이나 한 번쯤 일탈이야 뭐 어때.
뽕뽕뽕 연예인 마약사건 얘기들과 구찌와 같은 명품 구매용 해외 순방을 즐기는 누구들로 세상이 어지럽고 시끄러워라. 이런 구찌와 뽕의 세계에서 조물주가 낮고 천한 자들에게 선물한 이 조그만 열매 구찌뽕을 찬찬히 바라보며 음미해보는 날들이다.
마약 하면 ‘구약 신약 다음이 마약’이라서 구찌뽕에 가끔 빠져도 괜찮아. 붉은 열매는 씹어서 먹고, 다인이 차로 만든 열매는 뜨거운 물에 달여서 음미. 속으로 뜨겁고 붉어지는 거 같다.
“해도 잠든 밤하늘에 작은 별들이 소근대는 너와 나를 흉보는가봐. 설레이며 말못하는 나의 마음을 용기없는 못난이라 놀리는가봐. 미소짓는 그 입술이 하도 예뻐서 입맞추고 싶지마는 자신이 없어….” 딕 훼밀리의 옛 노래를 수줍게 불러본다. 염치도 없이 드세고 뻔뻔한 세상에서 수줍은 못난이의 노래. 못난이 구찌뽕 열매 두어 알을 끓는 물에 쏙. 챙겨먹은 것도 없이 고작 찻물로 물배를 채운다. 많이들 먹어 대고, 많이들 쌓아두고, 많이들 떵떵거리는 세상에서 이도 과분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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