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풍경, 책 밖의 이야기] 편집자에게 건네는 ‘영감과 섬광’
상반기와 하반기가 끝날 즈음이면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책을 선물한다. 지금 일하는 출판사에서 보낸 시간이 2년 반 남짓이니 그간 네 차례에 걸쳐 다섯 권의 책을 나누었다. 출판사라는 공간에서 책이라는 물건을 만들고 알리는 데에 영감과 도움이 될 만한, 때로는 즐거움과 뿌듯함이 될 만한 책이 보이면 후보 목록에 올려두고 앞서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최근에는 세 권의 책이 차례로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첫째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기획한 <박물관의 글쓰기>인데, 박물관을 찾아오는 관람객에게 전달되는 다양한 글을 어떻게 친절하고 정확하게 구성하고 정리할 수 있을지, 그간의 고민과 실천 그리고 방법을 담아낸 책이다. 이 책이 향하는 독자는 박물관에서 일하는 학예연구사이지만 읽는 사람을 염두에 둔 글의 전달이라는 점에서 동료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다. 특히 과거에는 설명이 주요 과제였는데 최근에는 일방향 전달이 아니라 관람객에게 말을 거는, 그리하여 관람객의 마음에 와닿는 글을 지향한다는 점에서도 밑줄 그을 대목이 여럿이었다. “재미있는 글은 관람객이 끝까지 읽어낼 수 있는 글이다”라니, 출판사 회의 시간에도 매번 되새기는 말씀이겠다.
두 번째 후보는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수석 레이아웃 아티스트인 스킴온웨스트(김성영)의 책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영상 연출법 101>이다. 활동 영역과 다루는 매체는 다르지만, 통상 책과 글보다 빠른 속도와 큰 규모로 이뤄지는 영상 영역에서 어떻게 보는 이의 관심을 끌고 집중을 이어가는지 궁금한 마음에 펼쳐보았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빛과 이로 인해 생기는 그림자부터 책상 위에 놓인 연필과 스탠드의 방향까지 화면 안에 펼쳐지는 모든 선을 메인 피사체에 집중시키는 디테일에 고개를 끄덕였고, 마지막 꼭지에 나오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영상을 만들지 말라”며 “모든 콘텐츠 제작은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할 때’와 ‘내 비전을 관철시켜야 할 때’ 사이의 밸런스 게임”이라는 대목에선 저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하이파이브를 건넸다.
현재 시점 마지막 후보는 가수 장필순의 노래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를 비롯해 다양한 포크 음악에서 작사가이자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한 조동희의 책 <작사의 시대>다. 그는 자신의 삶을 작사하여 노래로 만들어 보는 작사 수업을 진행하는데, 음절과 발음 등 작사에 필요한 기술 이해에 앞서 영감을 받는다는 것, 노래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 감정을 싣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기 삶과 실제 가사를 바탕으로 전한다. 여기에 더해 쉬운 말로 낯설게 표현하고, 시대를 타지 않지만 시대정신을 담고, 디테일은 살리되 군더더기는 없애야 한다는 작사 원칙에 이르면, 동료들과 숱하게 나눈 좋은 글의 기준이 자연스레 겹쳐 보인다.
이렇게 후보작을 만지작거릴 때면 종종 반대 방향의 가능성을 떠올리곤 한다. 책이 아닌 콘텐츠 영역에서 일하는 누군가가 책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서 이렇듯 영감을 얻고 도움을 받아 동료들과 나누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말이다. 근래 편집자의 경험을 담은 책이 꾸준히 나오고 있고, 편집자의 일을 소개하며 편집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도 여럿이니, 분명 어딘가에서는 이런 교류와 확장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편집자와 편집자의 일이 더욱 적극적으로 드러날 필요가 있다면, 그 이유는 출판 안에서의 공감과 이해를 넘어, 오히려 이 반대 방향에서 고려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네 번째 후보를 기다려본다.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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