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
몇해 전부터 물리학자들과의 만남이 잦아지고 있다. 계기는 포항공대 내에 위치한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의 과학문화위원회 일을 맡게 되면서였다. 물론 그곳에서 내가 맡은 바는 물리학적 지식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대중과학 및 과학 커뮤니케이션 분야 일이지만, 아무래도 이전에 비해 물리학자들과의 접촉 빈도가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물리학과의 직접적 인연은 대학교 때 들었던 일반물리학이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새롭게 접한 물리학자들의 세계는 낯설고도 신선했다. 그러다보니 이토록 쟁쟁한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혼자만 물리학 문외한으로 있는 것도 멋쩍어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물리학자들의 저서를 들춰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곧 깨달았다. 왜 한창 과학자의 꿈을 키우던 학창 시절, 유독 물리학과는 친해지지 못했는지 말이다.
한마디로 물리학은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양자물리는 모순투성이처럼 느껴졌다. 양자물리에 대한 가장 대중적인 예시로 알려진 ‘슈뢰딩거의 고양이’조차도 말이다. 상자 속 고양이의 생사를 겉에서만 봐선 대번에 알기는 어렵다. 애초에 상자란 내부가 차단된 공간이니까. 하지만 그 ‘알 수 없음’의 이유가 단지 감춰져 있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고양이가 삶과 죽음의 중첩 상태에 놓여 있어 결정될 수가 없다는 사실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게다가 생사는 내가 상자를 여는 순간까지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도. 물론 ‘슈뢰딩거의 고양이’ 예시는 일종의 사고 실험이며, 양자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현실의 거시 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데, 이것을 계속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때 우연히 만난 한 권의 책이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저자는 “양자물리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이해할 수 없다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며 이해할 수 없다고 알지 못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을 쉽게 받아들이고 알아내는 존재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아이들은 처음부터 언어의 구조와 문법을 이해하고 말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그저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외워서 따라 할 뿐이다. 하지만 단어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가 부족해도, 아이는 말을 배울 수 있고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 저자는 ‘이해를 못해도 아는 것은 가능하며, 때로는 그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니 자연에서 양자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상태로만 존재해야 할 필요성도 없다. 이미 양자는 그런 상태로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은 양자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니 양자물리에서 이야기하는 개념이 좀 더 수월하게 읽혔다.
세상에는 도저히 나의 상식과 신념과 가치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차고 넘친다. 마음을 한껏 열고 이들을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이때 우리는 그 대상에 이해불가라는 딱지를 붙여서 이들을 눈앞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리곤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사라지진 않기에 자주 눈에 거슬리고, 이 불편함은 혐오를 넘어 종종 심각한 충돌로 이어지기도 한다. 첫아이가 사춘기에 들어섰을 때,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아이를 이해하려 노력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실망이 쌓이면서 관계는 파국으로 이어지는 듯싶었다. 이해하려는 노력이 커질수록 상처도 커졌다. 관계가 좋아진 건 오히려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길 포기한 이후였다. 지금 아이가 과도기를 지나고 있음을 인정한 뒤 아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파악하려 다가가려고 시도한 이후에 말이다.
때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양자물리를 대할 때처럼 그저 인정하고 알아가려 시도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이해하려는 부담감이 덜어지면, 오히려 새로운 돌파구가 보일 때도 있는 법이니까.
이은희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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