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들이 물에 들어가는 걸 걱정하던 사람들만 처벌받았다”
고 채수근 상병과 함께 급류에 휩쓸렸다 구조된 ‘생존 해병’이 전역 다음 날인 10월25일, 임성근 해병대 제1사단장을 업무상과실치상죄로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소한다고, 군인권센터가 밝혔다.
채 상병의 상급자인 ‘생존 해병’은 경북 예천 내성천 호우 피해 실종자 수색 당시인 지난 7월19일, 후임자인 채수근 상병 및 동기(당시 병장)와 함께 실종자 수색을 진행하던 중 급류에 휩쓸렸다. 그와 동기는 거센 물살로 떠내려가다 가까스로 구조되었으나 채 상병은 그러지 못했다.
“누구 하나 믿고 따르기 어려웠다”
‘생존 해병’의 입장문에 따르면, 7월19일의 실종자 수색이 “보여주기식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으나 “위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내성천으로) 들어갔”다. “‘이러다 사고 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이미 많았지만” “결국 사고가 났”다.
채 상병이 숨진 뒤엔 “누구 하나 믿고 따르기 어려웠”다. 영결식에 참석한 정치인들은 “홍보 사진을 찍으러 온 건지 친목 모임에 온 건지 조문을 온 건지 구분하기 어려웠”고, “장군들”은 “정치인들 곁을 따라다니기 바빴”다. 기자들은 “특종 취재라도 나온 마냥 슬퍼하는 해병들을 밀치고 다니며 짜증을”냈다. 사단장은 “사고 이후로 단 한 번도 우리를 찾아오지 않았”다.
‘생존 장병’은 “보여주기식 작전을 하다가 부하를 잃었는데 잘못을 회피하기에 급급한 윗사람들을 보며 끈끈한 전우애란 다 말뿐인 거란 걸 알았”다. 그가 본 대한민국은 “사단장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수근이와 저희가 겪은 일을 책임져야 할 윗사람들은 책임지지 않고, 현장에서 해병들이 물에 들어가는 것을 걱정하던 사람들만 처벌받”는 나라였다. 박정훈 수사단장에게 “이해할 수 없을 일들이 벌어지는 것”도 봤다.
책임지지 않는 “윗사람들”에 분노
이런 “꼬리 자르기”를 보면서 분노를 느꼈지만 일개 병사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게 되었지만, “군병원이나 부대에서 하는 상담은 받고 싶지 않았”다. “상담하거나 진료 본 내용이 사단장에게 보고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생존 장병’은 자신과 전우들이 “겪을 필요 없었던 피해”와 채 상병의 “돌이킬 수 없는 피해”에 대해 정당한 책임을 묻기 위해 임성근 사단장을 업무상과실치상죄로 고소하기로 결정했다.
군인권센터는 ‘생존 해병’이 같은 비극의 반복을 막으려면 사고 책임의 분명한 규명이 필요하고 채 상병 사망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임성근 사단장의 고소를 결심했다며, “당사자가 사고 전후의 상황을 직접 수사기관에 밝힐 수 있게 된 만큼 공수처의 성역 없는 수사가 신속하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라고 당부했다.
이하는 〈해병대 고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 생존 해병 입장문〉 전문
필승! 해병대 제1사단 포병여단 제7포병대대에서 복무하였고, 2023년 10월 24일 자로 만기 전역을 명받은 해병입니다. 저는 오늘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업무상과실치상죄로 고소합니다.
저는 2023년 7월 17일부터 19일까지 경상북도 예천군에서 진행된 호우피해복구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이미 언론에 많이 알려진 것처럼 7월 19일 사랑하는 후임 고 채수근 상병, 동기 B병장과 함께 실종자 수색을 진행하던 중 급류에 휩쓸리는 사고를 겪었습니다.
밤마다 쉽게 잠들기 어려운 날들을 보냈습니다. 거센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떠내려가며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순간, 그 와중에 점점 시야에서 멀어져가던 수근이의 모습이 꿈에 자꾸 나타났습니다.
여전히 수근이를 지키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미안했던 마음에 물에서 건져지자마자 모래사장을 따라 무작정 수근이가 떠내려간 방향으로 뛰어갔던 것 같습니다. 수근이 부모님께 당시의 상황과 죄송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습니다. 저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사고 다음 날 한번 뵙기는 했었습니다. 간부님들이 수근이 부모님을 만나야 한다며 집합을 시켰습니다. 생존 병사들과 수근이 부모님이 따로 만나는 면담 자리인 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지휘관, 간부님들이 다 같이 있었습니다. 쉽게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이후로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누구 하나 믿고 따르기 어려웠습니다. 영결식 날엔 홍보 사진을 찍으러 온 건지 친목 모임에 온 건지 조문을 온 건지 구분하기 어려웠던 정치인들을 보았습니다. 어떤 정치인의 수행원은 비 맞고 도열 해 있는 해병에게 자기가 들고 있던 의원 우산을 좀 들어달라고 하더니 유가족과 인사하는 의원 사진을 찍는다고 유가족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정치인들 곁을 따라다니기에 바빴던 사단장 같은 장군들도 보았습니다. 특종 취재라도 나온 마냥 슬퍼하는 해병들을 밀치고 다니며 짜증을 내던 기자들도 있었습니다. 사고를 겪은 해병들을 위로한다고 찾아왔던 사령관님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다시 정상적으로 임무 수행을 해야 한다는 말을 했고, 사단장님은 사고 이후로 단 한 번도 우리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다들 자기 일에만 관심이 있을 뿐, 수근이와 우리가 겪었던 일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실종자 수색 기간 내내 부대 분위기가 어땠는지 저희는 압니다. 사단장님이 화가 많이 났다고 그랬고, 간부님들은 다들 압박감을 느끼는 듯 보였습니다. 물에 들어가라는 지시도, 안전엔 관심 없이 복장과 군인 자세만 강조하는 지시들도 사실 별로 놀랍지 않았습니다. 평소 부대에서도 사단장님이 보여주던 전형적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물속에서 실종자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다들 알고 있었지만, 위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들어갔습니다. 수색이 보여주기식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러다 사고 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이미 많았습니다. 그러다 결국 사고가 났습니다.
수근이 영결식 이후 대대장님이 보직 해임되었습니다.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은 책임질 것이라고 약속하며 저희들을 챙겨주던 중대장님도 얼마 전 다른 분으로 교체되었습니다. 이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꼬리 자르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병사인 저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힘들었지만 군병원이나 부대에서 하는 상담은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상담하거나 진료 본 내용이 사단장에게 보고될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든 책임을 피하려는 사단장님의 입김이 닿는 곳에다 제가 겪은 일을 믿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1년 6개월 전, 부모님의 만류에도 제 의지로 해병대의 길을 택했습니다. 복무하는 동안에도 해병대라는 자부심이 컸습니다. 주변 친구들에게도 해병대 입대를 권유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제가 자랑스럽게 여겼던 해병대는 허상이었을까요? 3개월 간 너무 많이 실망했습니다. 보여주기식 작전을 하다가 부하를 잃었는데 잘못을 회피하기에 급급한 윗사람들을 보며 끈끈한 전우애란 다 말뿐인 거란 걸 알았습니다.
언론에서 연일 박정훈 수사단장님이 겪고 있는 일과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걸 봤습니다. 사단장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수근이와 저희가 겪은 일을 책임져야 할 윗사람들은 책임지지 않고, 현장에서 해병들이 물에 들어가는 것을 걱정하던 사람들만 처벌받게 되는 과정도 보고 있습니다. 전역을 앞두고 지긋지긋한 시간을 보내며 많이 고민했습니다. 사고의 당사자로서 사고의 전말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입니다.
이제 저와 제 전우들이 겪을 필요 없었던 피해와 세상을 떠난 수근이의 돌이킬 수 없는 피해에 대해 정당한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업무상과실치상죄로 공수처에 고소합니다. 저희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정당한 지시를 받고 작전을 하다가 사망하거나 다친 것이 아닙니다. 사단장과 같은 사람들이 자기 업적을 쌓기 위해 불필요하고 무리한 지시를 했기 때문입니다. 윗사람들은 늘 그런 유혹에 빠집니다. 책임을 묻지 않으면 같은 피해가 반복될 것입니다. 그래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곧 수근이를 만나러 현충원을 찾아 가볼 생각입니다. 수근이 앞에서 우리나라가 당당한 나라일 수 있기를, 해병대가 떳떳할 수 있는 조직이기를 바랍니다. 저도 그런 사람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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