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농업 중단, 말이 되나요
[똑똑! 한국사회]
[똑똑! 한국사회] 원혜덕 | 평화나무농장 농부
우리 논에서 이루어지던 북방농업이 있다.
이루어지던이라고 과거형으로 말한 것은 5년 기한인 이 프로젝트가 4년째인 올해를 끝으로 중단되기 때문이다. 농촌진흥청 유기농업과에서 기획하여 진행하는 연구로 자원이 부족한 북한에서 화학비료나 유기질 비료 대신 풋거름 작물을 이용하여 벼를 재배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목표다. 풋거름은 논이나 밭에서 키운 녹색작물의 줄기와 잎을 그대로 그 땅의 거름으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북한 쌀의 70%가 황해도에서 나오는데 휴전선에서 멀지 않은 이곳 포천 우리 논에서 실험한 결과를 황해도 지역 논농사에 적용할 수 있다고 해서 시작한 지 4년이 되었다. 첫해 가을, 남편이 벼를 수확하자마자 연구팀이 와서 논을 구획짓고 각 7개 품종의 호밀과 헤어리베치 씨앗을 뿌렸다. 사실 호밀은 추위에 강해 어느 종자를 뿌려도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공기 중 질소를 고정하는 콩과식물인 헤어리베치가 관건이라고 했다. 7가지 헤어리베치 중에 겨울 추위를 견뎌낼 수 있는 품종을 찾아내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헤어리베치 몇 종류가 겨울을 잘 났는데, 그중 한 품종이 특별히 푸르게 자랐다.
그다음은 호밀과 이 헤어리베치 두가지 풋거름만으로 벼 수확량이 제대로 나오는지, 부족하다면 거름을 어느 만큼 주어야 하는지 알아보는 연구였다. 논을 10구획으로 나누어 가을에 풋거름을 길러내고 이듬해 모내기 전에 갈아엎어 풋거름으로 썼다. 비교 구간은 풋거름과 퇴비의 종류와 양을 다르게 했다. 연구팀은 해마다 여러차례 농장을 찾아 호밀과 헤어리베치의 성장 상태를 측정하고 기록했다. 벼를 수확할 때도 역시 구획마다 일정량을 수확하여 이삭의 숫자와 크기, 무게, 이삭에 달린 낟알의 개수와 무게 등을 일일이 파악했다.
생각지 못했던 손님들도 있었다. 한번은 네 나라 사람이 팀을 이뤄 찾아왔다. 북한 농촌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고 당시 우리나라 한 대학 초빙연구위원으로 있던 미국인 제임스는 앞으로 북한 농업의 최고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폴란드인 에바 제임스가 우리 농장을 방문한다는 말에 관심이 있어서 따라왔다고. 뉴질랜드인 나이젤은 본래 엔지니어인데 어찌하다 보니 북한에서 환자들에게 채소를 공급해줄 유리하우스를 병원 옆에 지어주고 있더라고 했다. 18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자신이 가진 기술을 제3세계를 위해 쓰기를 바라셨다는 말도 했다. 독일 정부가 후원하는 재단에서 농업과 숲, 철새 보호 등 생태 프로젝트를 맡아 일한다는 독일인 펠릭스도 북한을 여러번 방문했다고 했다.
이들에게 점심도 지어주고 이른 봄이라 벼는 없지만 우리 논을 보고 돌아와 둘러앉아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며 오후 시간을 함께 보냈다. 북한 농촌에 갖는 관심과 염려로 모두 한마음이었던 기억이 난다.
홍콩 비정부기구(NGO)에서 일하며 북한 농촌을 돕고 있던 한 홍콩 사람도 우리 집을 찾아와 1주일 동안 머문 적이 있다. 북한과 가까운 남한 농가에 와서 농사 현장을 보면 자기가 하는 일에 도움이 되겠기에 휴가를 내고 왔다고 했다. 그는 여러해에 걸쳐 북한 농촌지역 관개시설 개보수를 돕고, 수확을 많이 낼 수 있는 종자를 마련해주고, 척박해진 땅의 비옥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의논하는 등의 일을 한다고 했다. 3~4년 동안 한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일을 마치면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같은 프로젝트를 다시 진행했는데,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는 압록강변 한 마을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농진청 유기농업과에서 진행하던 이 북방농업 프로젝트의 내년도 마지막 연구개발(R&D) 예산을 정부가 삭감했다. 책임연구자는 4년간 진행해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고, 애초 계획대로 한해만 더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텐데 하며 아쉬워했다. 외국에서도 북한의 농업을 도우려 애쓰는데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던 연구를 이렇게 중단시키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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