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K-컬처 활로 모색 아니라, 위태로운 예술 생태계 활력 되길
[왜냐면] 이광석 |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인간 삶의 존재 기반이 급변하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자. 코로나19 팬데믹의 기나긴 세월에서 이제 간신히 벗어난 듯 보였으나, 또 다른 기후 재난의 징후들에 더 불안한 형국이다. 기술도 무서우리만치 폭주한다. 지능 정보화 기술의 파고가 한꺼번에 몰려든다. 최근 챗지피티, 미드저니 등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우리 사회가 한바탕 들썩였으나 불확실한 창작의 미래로 크게 불안하다.
예술가로 먹고사는 삶은 어떠한가? 자본주의 경기 침체까지 지속하면서 그늘을 더욱 짙게 한다. 대부분의 창·제작 활동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저임금 예술노동이 됐다. 예술가는 이렇듯 이중 삼중의 순탄치 않은 정세 변화와 삶의 조건에 놓여 있다. 예술가의 자리에서 오늘의 불안정한 정세는 양가적이다. 안팎으로 위기 상황에 내몰린 생존 현실이 비관과 우울을 드리우지만, 그 불안의 심연이 창작의 생명력을 더 타오르게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창작자의 ‘헝그리 정신’을 미덕으로 삼자는 말은 아니다. 그 어느 시절보다 동시대 예술의 지속가능성과 물적 기틀을 담보하기 위한 공적인 창·제작 지원이 긴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25일 ‘예술 특화 종합지원 플랫폼’ 아트코리아랩이 개관했다. 새로운 예술 지원 플랫폼이 녹록지 않은 예술가들의 상황에 가뭄의 단비와 같을지 주목받고 있다. 정부가 지원하는 아트코리아랩의 설립 취지를 보면 ‘새로운 예술 실험과 시장 확산을 돕고, 창작자의 네트워킹 및 비즈니스 유통을 지원하고, 예술현장의 미래 쟁점을 찾아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한다고 적고 있다. 예술에 특화된 공공 플랫폼을 허브로 삼아 창·제작 활동의 안정적 재생산과 예술 비즈니스와의 연계를 이뤄보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예술가 대부분이 불안정한 삶의 조건에 있다는 점에서 공공 플랫폼이 예술가들의 숨통을 틔우는 거점 공간이 되길 기대하며, 아트코리아랩이 명실공히 ‘예술 종합지원 플랫폼’으로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몇 가지 지점을 짚고자 한다.
먼저, 관계 기관은 예술 지원에 인색하지 않되 입주 예술가와 예술 기업에 대한 성과 목표나 수행성 평가를 양적 측정치로만 환원하는 방식을 탈피했으면 좋겠다. 보다 자유롭고 다양한 주제 의식에 기댄 미적 실험과 예술의 특수한 토양을 인정한다면 실패를 관용하는 지원과 질적 평가 방식이 이뤄졌으면 싶다.
다음으로, 선정된 입주 작가와 예술 기업은 물론이고, 다수의 불안정한 작가군과 일반 시민까지 공공 플랫폼의 혜택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개방된 연계 프로그램을 좀 더 많이 기획했으면 한다. 아트코리아랩은 장비, 스튜디오, 공유오피스 등 창작 실험 지원과 교육, 창업, 워크숍, 컨설팅, 시제품 제작 시설 등 네트워킹 및 유통 지원 등 다각도의 서비스를 지원하겠다고 한다. 다만 플랫폼의 잠재력이 이들 서비스 지원뿐만 아니라 공간 안팎에 존재하는 창·제작 자원과 사람을 연계하는 활력에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예술계나 학계는 아트코리아랩 개관을 계기 삼아 ‘예술 커먼즈’적 가치 확산을 적극적으로 고민했으면 한다. ‘예술 커먼즈’는 특정 예술 자원을 자율적으로 공동 생산하고 관리하는 호혜적 풀뿌리 결사체라 할 수 있다. 아트코리아랩과 같은 정부 지원의 공공 플랫폼 조성만이 아니라, 다양한 형식과 내용을 가진 ‘예술 커먼즈’적 가치 지향을 지닌 예술 공동체들의 성장을 독려하고 당장의 위기 현실을 타개하는 현장 실천과 실험이 폭넓게 이뤄지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덧붙여, 우리 사회와 예술계 내부에 깊게 내재한 과도한 기술주의로의 쏠림 현상을 경계했으면 좋겠다. 창·제작 독려 수단으로서의 첨단 기술에 집중된 훈련이나 매체 교육은 첨단 기술의 격변기에 쉬 철 지난 것이 될 공산이 크다. 동시대 기술의 감을 따라가면서도, 손상된 사회 결속을 보강하려는 사회미학적이고 성찰적인 감수성을 배양하는 일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
아트코리아랩이 공을 들이는 ‘기후위기 대응’ 과제도 예술적 상상력이 꼭 필요한 미래 지속가능성 영역으로 보고 장기적으로 지원 범위의 확장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이로부터 창·제작 예술을 매개로 해 인간, 기술과 생태의 공존을 도모하기 위한 다양한 미적 방법론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공공 예술 플랫폼의 개관이 단순히 케이(K)-컬처 예술 시장의 활로 모색을 위한 고안만이 아니라, 위태로운 예술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예술 커먼즈’적 자립과 연대의 방법을 안내할 긍정적인 기폭제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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