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때 마을간 이념 싸움에 18명 이상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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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형님이 똑똑해서 마을 일을 다 하니 인민군이 들어와서 일을 시킨 거지 무슨 빨갱이겠어."
25일 오전 충남 아산시 염치읍 서원리 동막골에서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에 앞서 개토제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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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아랫마을 싸움에 중간마을 주민도 희생
“굴비 엮듯 줄줄이 묶여서 죽어 있어”
빨갱이들 죽은 곳이라고 ‘모스크바’로 불려
“큰 형님이 똑똑해서 마을 일을 다 하니 인민군이 들어와서 일을 시킨 거지 무슨 빨갱이겠어.”
25일 오전 충남 아산시 염치읍 서원리 동막골에서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에 앞서 개토제가 열렸다. 미주 진실화해평화모임, 김한기 천주교 원주교구 신부, 최태육 목사, 맹억호 아산유족회 회장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를 보면, 작은 개울 너머 산 쪽으로 작은 바위들이 삐쭉 삐죽 드러난 이곳에서 1950년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 신아무개씨의 처와 갓난아이, 민아무개, 박아무개씨 등 동막골 위·아랫동네 주민 최소 18명이 부역 혐의와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염치면자치대에 의해 학살당했다. 법적 절차는 없었다.
김세연(92·서원리)씨의 큰 형 광연(호적은 동연)씨도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 그는 둘째 형과 자신도 빨갱이 가족이라고 잡혔으나 죽기 직전에 탈출했다고 했다. 거지 행색으로 화를 면한 그는 한달여 뒤 시국이 다소 안정되자 동막골 학살 터에서 큰 형의 주검을 수습했다. 그는 이날 개토제에 참석하지 않았다. “아이 업고 죽은 엄마도 있었고, 사람들이 굴비 엮듯 줄줄이 묶여서 죽어 있었지.” 그는 송장구덩이에 가는 게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동네주민들은 동막골 골짜기를 ‘모스크바’라고 불렀다. 빨갱이들이 많이 죽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전쟁기 이 지역에서 좌익 활동이 활발했을까. 동막골 등 아산 일대 부역 혐의사건을 조사한 최태육 목사(전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관)는 “동막골 학살사건은 이념으로 갈라선 윗동네와 아랫동네의 보복 싸움에 김세연 어르신이 살던 중간마을도 희생됐다고 보는 게 맞다. 밝혀진 희생자는 윗동네·아랫동네 10명과 중간마을 8명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해자와 피해자, 그 후손들은 여전히 마을에 산다. 김세연씨는 “큰 형님댁은 아들들이 다 어려서 죽어 둘째 형님댁에서 양자를 보내 대를 이었다”며 “속마음이야 어떨지 몰라도…시국이 그랬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하고 다들 친구로 산다”고 동네 분위기를 전했다.
개토제를 마치고 참석자들은 학살 현장에서 희생자를 위로하는 기도를 했다. 장기평 미주 진실화해평화모임 대표는 “아픔을 치유하려면 진실을 밝히는 것이 선결 과제다. 정부는 진실을 밝혀 희생자와 유가족의 명예를 회복하게 하고 국가 공권력에 의한 학살에 대한 적절한 배보상을 해 이 땅에서 화해와 평화를 이뤄야 한다”고 밝혔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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