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복의 백세시대 건강보감] 갈증해소와 주독(酒毒)에 좋은 배
올여름 무더운 날씨 덕택에 배가 맛있게 익었다. 시원하고 사각사각한 맛을 지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배는 우리나라 것이 맛이나 크기로서 세계 제일이다. 중국이나 미국에서도 배가 나지만 호리병 모양으로 크기도 작고 맛도 달지 않아 우리 것을 따를 수 없다. 서양 배 종류는 극히 적지만 대부분 사과 같은 새콤한 맛이 난다.
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수출하는 과일 중의 하나인데, 유럽이나 북미에서 유일하게 인기리에 잘 팔리는 한국산 과일이 배라고 하니, 우리 토양에는 큼직한 황토배가 어울리는 모양이다.
배에는 비타민 B1· B2가 풍부하나 사과산, 주석산, 구연산 등의 유기산은 많지 않아 신맛은 거의 없는 편이다. 배의 당분은 대부분 과당(果糖)의 형태로 존재하고 포도당은 적다. 그래서 사과나 딸기처럼 잼으로는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배의 사각사각한 느낌은 배에 오톨도톨한 석세포(石細胞)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석세포는 리그린과 펜토산이라는 성분 때문에 배의 세포막이 두터워져서 형성된다.
이 오톨도톨한 석세포가 좋은 작용도 한다. 흔히 "배 먹고 이 닦는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배의 석세포가 이의 구석구석을 닦아주는 효과도 있다. 또한 배가 흔히 변비에 좋다고 함은 석세포가 위장 관을 자극해 주기 때문이다. 한방에서 배의 성질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를 '하행유리'(下行流利)라고 한다. 아래로 잘 흐르게 한다는 뜻이다. 실제 배는 상기(上氣)된 기(氣)를 내려 주는 작용을 한다. 배를 한자어로 '리'(梨)라 하는 것도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梨' 글자를 둘로 나누면 '이로운(利) 나무(木)'가 된다. 몸에 이로운 과일이다.
조선 고종 때 혜암(惠庵) 황도연(黃道淵) 선생이 지은 '방약합편'(方藥合編)에 '배의 맛은 달고 주독을 잘 풀며, 갈증, 해수 ,번열, 목안의 가래 등을 없애준다'라고 기록돼 있다.
또, 16세기 중국 명나라 때 이시진(李時珍)이 펴낸 약학서인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배가 폐를 윤택하게 하고 심장을 시원하게 한다. 담(痰)을 치고 열을 내리는 작용이 있어, 열병으로 진액이 손상되어 가슴이 답답하고 갈증을 일으킬 때도 좋다. 그리고 약간의 진해(鎭咳)작용이 있어 해수병(咳嗽病)에도 쓰며 이뇨 작용이 있어 소변을 잘 나오게 하고, 창독(瘡毒)을 풀며 알코올 분해 작용을 도와 주독(酒毒)을 푸는데도 좋다'라고 쓰여져 있다.
민간에서는 배의 속을 파내고 꿀을 넣어서 고아서 기침이나 인후(咽喉)통에 걸리면 먹는다. 한방 처방에도 '이붕고'(梨硼膏)라고 하여 배 속에 꿀과 소량의 붕사(硼砂)를 넣고 조제한 처방도 있다. 이때 오미자나 맥문동, 도라지, 잔대, 둥굴레, 감초 등을 넣고 푹 고아서 마시면 좋은 효과가 있다. 배의 잎은 곽란으로 인한 복통과 설사에 걸렸을때 달여서 쓰며, 배의 껍질은 가슴이 답답한 번열(煩熱)에 쓸 수 있다.
배는 맛과 멋을 더해주는 요리 재료로 널리 이용되는 과일이다. 흔히 열병을 앓은 사람의 경우 그냥 죽을 쑤어 주기 보다는 배 즙을 넣어 죽을 만들어 먹이면 먹기도 훨씬 좋을 뿐더러 보양 효과도 있다. 이때 배죽은 잘 삭기 때문에 반드시 먹을만큼만 만들어야 한다.
배에는 단백질 분해 효소가 풍부하여 연육(軟肉) 효과가 있다. 육회나 갈비찜 같은 고기 요리에 배 즙을 넣으면 고기가 연해지고 맛이 부드러워짐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흔히 민간에서 소고기를 먹고 체했을 때 배 즙을 마신다. 뿐만 아니라 과일 중에서 비교적 칼로리가 낮은 편이어서 당뇨나 비만 환자가 먹기에도 적합한 과일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배는 찬 성질이 있으므로 변이 묽게 나오거나 산후에 몸이 허약해진 경우는 좋지 않다. 또 평소에 몸이 차서 추위를 많이 타거나, 아랫배나 손발이 차가운 사람은 많이 먹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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