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조선의 바이올린 천재 계정식의 금의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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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율성 이념논쟁'이 한창이다.
"동경 신전구 조선기독교청년회 기숙사에 유(留)하는 젊은 천재 음악가 계정식(18) 군은 오랫동안 간절히 바라던 독일 유학이 실현되어 오는 10월에 세계 음악계의 조종(祖宗)이 되는 백림(伯林; 베를린)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는 그곳 음악학교에 입학하여 3~4년 동안 연구할 터이라 한다. 그는 평양 계리 86번지에 본적을 두고 그의 부친은 예수교회 목사인데 그는 이미 9살 되었을 때에 외국인 음악회에 출석하여 독창(獨唱)을 하여 열석(列席)한 외국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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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세부터 음악에 특별한 재주 나타내 고별 연주회 마치고 드디어 독일유학길 10여년 만의 공부 끝에 박사 학위 취득 美 음악학교서 교수활동… 친일은 오명
'정율성 이념논쟁'이 한창이다. 정율성은 한국이 낳은 천재 음악가이자 중국 3대 음악가로 꼽힌다. 100년 전 또 한 명의 천재 음악가가 있었다. 그 이름은 계정식(桂貞植)이다. 그는 바이올린으로 '식민지 조선'의 존재를 널리 세계에 알렸다. 그를 찾아 100년 전으로 떠나보자.
1923년 7월 10일자 동아일보에 '천재 음악가 계정식(桂貞植)군 독일 유학'이란 제목의 기사가 보인다. "동경 신전구 조선기독교청년회 기숙사에 유(留)하는 젊은 천재 음악가 계정식(18) 군은 오랫동안 간절히 바라던 독일 유학이 실현되어 오는 10월에 세계 음악계의 조종(祖宗)이 되는 백림(伯林; 베를린)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는 그곳 음악학교에 입학하여 3~4년 동안 연구할 터이라 한다. 그는 평양 계리 86번지에 본적을 두고 그의 부친은 예수교회 목사인데 그는 이미 9살 되었을 때에 외국인 음악회에 출석하여 독창(獨唱)을 하여 열석(列席)한 외국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더라."
그해 9월 29일자 동아일보에 후속 기사가 게재됐다. "음악에 천재(天才)를 가진 계정식 군은 이번 음악을 연구하기 위하여 독일에 유학케 되어 일간 출발할 모양인데, 평양시의 일반 청년과 기타 유지는 계 군의 음악을 한번 듣기를 원하여 지난 15일에 고별 음악회를 개최하고자 하였으나 경찰 당국의 금한 바 되어 마침내 개최치 못하였는데, 계 군의 출발할 예정이 점점 가까워져 오므로 당국의 양해를 얻어 오늘 29일 오후 8시부터 평양부 내 제일관에서 오랫동안 기대하던 계 군의 고별 음악회가 개최될 터인데 대성황을 예상하며 더욱이 계 군 이외에도 다수한 명류(名流) 음악가들이 응원할 터이므로 평양에서 처음 보는 장관을 이루리라더라."
계정식은 독일 유학 길에 경성에 도착했는데 역시 경성에서도 고별 음악회를 열게 된다. 그 장면을 보자. "지난 13일에 경성에 도착하였으므로, 이것을 기회로 하여 고별 음악회 개최가 있으리라는데, 계정식 군은 원적을 평양에 둔 당년 19세의 청년으로 그가 8~9세 어릴 때부터 음악에 대한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하며, 그 후에 평양 숭실대학 교수 '라이너' 씨에게 성악(聲樂)과 바이올린을 배웠으며, 17세 때에는 일본 궁내성 양악사 다충량(多忠良) 씨에게 2년 반 동안을 학습하였고, 또 우에노(上野)음악학원 교수인 독일인 '크론' 씨에게 개인 교수를 받다가 이번에 크론 교수의 추천으로 독일 백림(伯林)에 유학하게 된 것이라더라." (1923년 10월 16일자 조선일보)
드디어 1923년 10월 19일 경성에서 계정식의 고별 연주회가 열리게 된다. "바이올린의 선수로 천재의 이름을 듣는 계정식 군의 연주회를 경성에서 연다 함은 기보(旣報)와 같거니와, 계 군의 음악회는 오늘 19일 오후 8시 경성공회당에서 개최하게 되었으며, 푸스 양과 뿌쓰 여사, 스미스 목사 등의 유수한 제씨가 출연하여 각기 묘기를 발휘할 터이라 한 즉, 오늘의 음악회는 매우 취미가 있을 것이며 입장료는 1원 50전, 1원, 50전의 3종이며 곡목은 아래와 같더라. (1923년 10월 19일자 동아일보)
이 고별 연주회의 상황은 10월 21일자 동아일보에 '만장(滿場)을 감동시킨 계정식 군의 묘기'라는 제하의 기사에 자세히 실려 있다. "19일 밤 경성공회당에서 열린 계정식 군의 연주회는 매우 성황을 이루었다. 출연한 이는 일류 음악가였으나 계(桂) 군의 묘기는 그 중에서도 우뚝 뛰어나서 곱게 고요하게 부드럽게 풀리는 실끝 같이 쏟아지는, 폭포같이 굴러 나오는 음률에는 만장의 청중이 극도로 감동되어 최후의 한 곡조를 연주하고 날 때에는, 잠시동안 장래에 청중도 없고 연주자도 없는 형편이었다."
이렇게 고별 연주회를 마치고 드디어 독일 유학 길을 떠난 계정식은 10여 년 만의 공부 끝에 드디어 박사 학위를 따게 된다. "일찍이 소년 시대부터 바욜린의 천재라고 찬하(讚賀)를 받던 평양 출생 계정식 씨는 지난 1923년경에 독일 유학의 길을 떠나 이역풍상(異域風霜) 10여 년 간에 음악을 전공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계 씨의 백씨(伯氏)인 평양부 내 동양치과의원 원장 계이식(桂利植)씨한테 온 소식을 들으면 작년에 독일 국립 '울쓰불꾸' 대학을 졸업하고 만 1년간 논문 준비로 있었는데, 지난 6월에 논문이 통과되어 음악 박사의 명예스러운 학위를 얻었다 한다. 그리고 오는 8월에는 독일을 떠나 구주(歐洲) 각지와 미국 각지를 순회한 후 본국에 돌아올 예정이라고 한다." (1932년 7월 28일자 동아일보)
마침내 그는 조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했다. 1932년 9월 15일자 동아일보는 '독일 음악 박사 계정식 군 귀국'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이를 전했다. "조선이 낳은 세계 악단의 큰 존재인 음악 박사 계정식 군. 그는 예술의 절정을 걸으면서도 잊지 못한 것은 고국의 산천, 그 중에도 이 천재를 낳아서 기르는 어머니인 미(美)의 도시, 예술의 도시, 역사의 도시인 평양(平壤)을 그리워 마침내 11월 중에는 귀국하리라는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돌아보면 그가 떠나면서 평양에서 송별 독주회를 한 것이 이미 11년 전, 그 후 독일 국립음악대학에 적을 둔 이 천재 악인(樂人)의 한번 긋고 튀기는 바요린 줄은 세계 악단을 놀래키고 세계의 팬을 도취시킨 것이었다. (후략)"
계정식은 독일 유학 12년 만에 명 연주자의 명성과 박사 학위를 자랑하며 1935년 3월 9일 경성역에 도착했다. 조선 음악계가 총출동해 환영식을 열었다. 귀국 이후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1961년 미국으로 이주해 뉴욕 부르클린 음악학교 등에서 교수 활동을 하다가 1974년 10월 현지에서 사망했다.
하지만 그 역시 친일에서 자유로울수 없었다. 지난 2009년 11월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확정 발표한 1005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는 그의 이름이 들어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계정식의 일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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